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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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의 부제는 '추방당한 자의 시선'.
자신이 '디아스포라'인 저자가 다른 디아스포라들을 바라보며 쓴 일종의 기행문.
이 기행문은 매우 우울하고 착찹한, 그런 기행문이다.
특히나 1장과 2장을 읽을 때는 정말 그 우울함에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저 감상적인 우울함이 아니라 현실에서 우러나오는 우울함이랄까.
정작 그 우울함을 되뇌이는 사람은 아주 무감정해보이는 그런.
그리고 그 우울함 뒤에는 '국가'와 '민족'과 '전쟁'이라는 음침한 것들이 흐물거리고 있다.
 
책 자체도 매우 깔끔하지만, 정성들인 것이 드러나는 깔끔한 번역 덕에 더 인상 깊게 본 책이다.
인상 깊은 구절이라기 보다는... 이 책의 서문은 꼭 읽기를 권하고 싶다.
왜 서경식이라는 사람이 디아스포라일 수 밖에 없었는지,
왜 일본에 있는 조선인의 국적이 3가지일 수 밖에 없었는지.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한번쯤 시간을 내서 읽어보길 권한다.
 
세상엔 분명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할 것들이 있다.
그래야만 '무지로 인한 폭력'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며
그저 어깨를 으쓱거리며 '몰랐어요'라고 말하는 가식을 범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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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정제 이산의 책 17
미야자키 이치사다 지음, 차혜원 옮김 / 이산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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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 세미나 덕분에 읽게 된 일본인이 지은 중국사 관련 책.
 
이 책은 1950년에 출판된 책으로 한국에는 2001년에야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내용은 제목대로 청의 황제였던 옹정제의 치세에 대한 내용.
중국의 황제는 저자가 '전제군주'가 아닌 '독재군주'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듯이
그 절대권력이 조선은 물론 서양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특히 옹정제는 그의 선왕이었던 강희제와는 다르게 유래를 찾기 힘든 '독재군주'였다.
 
여기서 '독재군주'는 그 어휘가 풍기는 부정적인 뉘앙스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그 나름대로의 소명과 책임을 바탕으로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강력한 독재를 실시했던 것이다.
옹정제의 말을 직접 빌리면 간단히 설명이 되려나.
 
'천하가 다스려지고 다스려지지 않고는 나 하나의 책임, 이 한몸을 위해 천하를 고생시키는 일은 하지 않으리'
 
그는 자신의 이런 신념을 지키기 위해 자신과 신료들에게 모두 엄격했고
항상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며 누구보다도 부단히 일하고 애쓰고 생각했다.
그 모습을 이치사다는 '주비유지'라는 텍스트를 통해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주비유지'는 간단히 말하면 옹정제와 232명의 관료가 주고 받은 서간문을 출판한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독재군주 옹정제를 찬양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인가?
이상한 이야기일지는 모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이 책의 번역자가 번역 후기에서 적고 있듯이 이 책이 처음 출판된 시기는
중국의 사회주의가 나름의 기대를 받으며 사회를 구축해나가던 시기이다.
이러한 시기에 필자는 책을 마무리하며 아주 단정적으로 이야기한다.
 
이보다 더 애도할 일은 눈물이 흐를 만큼 선의에 넘치는 그의 정치가 독재군주제라는 형태를 띠고 있었기 때문에 보답이 의외로 적었을 뿐 아니라 예기치 않게 역효과까지 안은 점일 것이다. 생각건대 중국에서 수천 년 동안 전제군주제가 지속되어 온 것은 군주제가 어느 정도의 유연성을 갖고서 시대의 진보에 적응하며 발달해 온 덕분일 것이다. 만일 군주제가 아무 이상도 없이 완전히 자의적이고 무원칙하게 움직였다거나 딱딱한 껍질처럼 고정된 채 백성을 억압하기만 하였다면 아무리 참을성 많은 중국 민중이라도 이를 타도하고 새로운 정치양식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역사에서는 이른바 명군(名君)이라는 존재가 나타나 끊임없이 군주제의 이상과 실행방법을 고쳐 나갔고, 따라서 대중으로부터 무언의 신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옹정제의 독재정치는 그야말로 그 정점에 위치한다. 이렇게 해서 독재제를 신뢰하게 된 민중은 독재제가 아니면 다스려질 수 없도록 틀지워지는 것이다. 이것은 중국 민중에게는 참으로 슬픈 일이다. 이 점에서 말하자면 옹정제의 정치는 그야말로 선의에 넘치는 '악의의 정치'라고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선의에 넘친 악의의 비극은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며, 지금도 거대한 역사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선의에 넘치는 '악의의 정치'. 그리고 그것의 현재진행.
그것을 꿰뚫어보고 있는 학자의 예리한 통찰력이 빛나는 부분이다.
정말 간만에 읽게 된 명저. 비록 전문서적은 아니지만 그 이상의 통찰력을 보여준다.
책은 어렵게 쓴다고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보여주는 역작이다.
이 책이 1950년에 출판된 사실을, 난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다.
(그리고 이 책은 분량이 많지도 않을뿐더러 재미있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 책은 중국사 관련 책을 꾸준히 내고 있는 '이산' 출판사에서 나온 책인데
번역자인 차혜원씨의 성의 있는 '옮긴이의 말'도 인상 깊었다.
그 중에서 한 구절이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게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다.
번역자가 소개하는 필자와 관련된 에피소드.
 
  미야자키는 1949년부터 교토 대학 내에 옹정주비유지 연구반을 만들어 '주비유지'의 윤독을 시작하였고 수업교재로도 활용한다. 이때부터 구어체와 속어가 섞여 난해하기 그지없는 '주비유지'는 오랜 시간에 걸쳐 연구반에 의해 완전히 독해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단순히 읽는 데만 그친 것이 아니라 고유명사와 법제상의 술어(術語), 지방풍속에 이르기까지 주요한 어휘를 카드에 채록하는 색인작업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40여 년간 매주 거의 빠짐없이 윤독회가 이루어졌는데, 모두 99명의 인원이 참가하였던 대사업이었다.
  '주비유지'의 윤독회가 수백회 거듭되면서 연구원들 사이에는 이렇게 반복되는 작업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빠른 결론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 대하여 연구반의 또 다른 기둥이었던 아베 다케오라는 학자는 이렇게 일축하였다고 한다. "이런 일을 해나가는 일, 그게 바로 학문이라는 겁니다"라고.
 
"이런 일을 해나가는 일, 그게 바로 학문이라는 겁니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먼저 걸어간, 국적과 시대가 다른 한 선배의 말은 지금 내게도 유효한 말이다.
천천히 꾸준하게, 그러나 꼼꼼히 날카롭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글쓰는 재주나 시간, 아이디어 따위가 아니라, 그저 '정직한 노력'일 뿐이다.
적어도 역사가에겐 그렇다. 저 말을 평생 잊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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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 - CJK - 죽은자를 위한 미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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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진중권의 글. 개인적으로 진중권의 글을 좋아하는 편이라 역시 재미있게 읽었다.
절판되어 있는 상태라 참고서 전문 사이트;;에서 어렵게 구한 이 책은 전쟁에 관한 에세이다.
그가 지적하고 있는 '한미동맹교'는 정말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정신병적 증세다.
침략전쟁에 제 나라의 국군을 파병하는데에 아무런 도덕적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회.
그게 바로 대한민국이다.
 
한미관계의 우호증진을 위해? 웃기지 마라.
미국이 단물을 느끼지 못한다면 주저없이 버릴 카드일 뿐이고,
또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북한을 공격해 한반도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도 있다.
 
경제적 압박이 두려워서? 웃기지 마라.
그래, 파병 좀 했더니 나아진게 있는가? 맨날 바닥바닥 얘기하면서 뭐가 그리 또 무서운겐가?
오호라, 좀 모아둔 게 있는 모양이구나. 나불대는 것과는 달리.
 
북한 빨갱이들이 언제든 밀려올까 그리도 두려워하는 자들이 제일 잘 나불댄다.
'일본하고 한 판 뜨지 뭐!', '북한에 미사일 확 쏴버려서 눌러버려야 해!'
대체, 전쟁을 뭐라고 생각하는 건가?
당신은 서명만 하고 성명만 발표하는, 저 바다 건너 오만한 제국의 제왕이 아니다.
너무 게임을 많이 해서 그런건가, 아니면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건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남벌', '한반도' 따위를 보면서 자위를 할만큼
전쟁이 그리 만만해 보이는가?
 
그렇게도 파병을 하고 싶은가? 그럼 헌법부터 고칠 일이다. "대한민국은 침략전쟁을 부인한다. 단, 미국이 요구할 때는 예외로 한다." 한미동맹이 아무리 중요해도 그것이 대한민국 헌법의 위에 올 수는 없는 일. 설사 이제까지는 그랬다 하더라도 지금부터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것인가? "반미 좀 하면 어떠냐"고 말하던 노무현 씨가 순식간에 얼굴을 바꾸더니 지금은 "친미 좀 하면 어떠냐"고 말한다. "이제까지는 한미관계가 일방적이었으나 이제는 긴장을 도입하겠다"고 기세 좋게 포효하던 그가, 베트남 전쟁 이후 가장 화끈한 규모의 파병을 결정했다. 그의 말대로 이쯤되면 '막 가자는 거'다.
 
'반미 좀 하면 어떠냐' 이 말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졌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 말 자체에 커다란 문제가 들어있던 것이다. 사실 노무현 씨는 말을 바꾼 게 아니다.
노무현 씨에게 '반미'는 '좀' 해도 되고 안해도 그만인 것, 그거였다.
'파병 좀 하면 어떠냐'는 그의 생각을 실천으로 옮긴 것 뿐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국군들은 이 침략전쟁에 경쟁하여 참여했다.
일부는 경력을 위해, 일부는 '사나이'다운 경험을 위하여.
또 언론은 아무런 쓸데도 없는 정보, 침략전쟁의 용병 모집 경쟁률을 친절하게 보도해주고
(전쟁의 실상에 대한 보도는 전혀하지도 않는다!)
한 은행은 자랑스런 태극기를 보여주며 이라크 파병 용병들을 광고에 등장시킨다.
 
용병. 그렇다. 그의 가족이나 당사자가 날 보고 욕할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정말 가난에 밀려 그 살육의 현장에 가게 되었다면, 진심으로 사과한다.
그러나 당신의 화려한 경력을 위해 경쟁을 뚫고 이라크에서 총을 잡고 있다면
당신이 나에게 사과해야 한다. 당신은 세금을 먹고 사는 국군이 아닌가?
대한민국의 직업 군인이 배우는 기초적인 내용 정도는 나도 안다. 당신은 국군이 아니다.
 
우리의 근거 없는 공포와, 부끄러움과 수치를 모르는 이 무식함.
여전히 '파병 중'인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하단 말인가.
김규항의 말을 빌리면 '오늘 전쟁을 반대하는 것만이 내일 전쟁을 거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좀 아쉬웠던 것은 이 책이 양장본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책의 의도가 반전을 위한 것이고, 또 책의 분량이 그리 많지 않다면. 그리고 내용도 에세이에 가깝다면.
양장본보다는 페이퍼 북처럼 책을 내고 가격을 조금이라도 낮추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그런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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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리지 - 한국 풍수지리학의 원전
이중환 지음, 이익성 옮김 / 을유문화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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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을 보자!'라는 올해 하반기의 모토;;의 첫 발걸음.

이중환의 택리지는 교과서에도 언급이 될만큼 널리 알려진 책이다. 그 이름만은.

그러나 내용이 지리에 관련된 것이라는 정도가 알려졌을 뿐 어떤 내용인지 잘 알려져있진 않다.

 

이 책은 서문과 발문, 총론을 제외하면 사민총론四民總論, 팔도총론八道總論, 복거총론卜居總論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사민총론은 사농공상 네가지 백성에 대한 짧은 글이고

팔도총론은 말그대로 조선 전국 팔도의 특산물이나 살만한 곳 특이사항에 대한 글이다.

핵심은 복거총론에 담겨있다고 볼 수 있는데, 복거 총론은 다시 지리, 생리, 인심, 산수로 나뉜다.

특히 주목해서 봐야할 부분은 '인심'조다.

이 인심조에서 당쟁 때문에 정계에서 밀려나 귀양을 가고 방랑을 해야했던 이중환의 견해가 드러난다.

복잡한 당쟁의 역사가 짧지만 핵심적으로 담겨 있으며, 상당히 객관적으로 씌여졌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당시 영조에 의해 행해지던 탕평책에 대한 비판이다.

 

...성난 기운으로 피나게 싸우던 버릇은 전보다 비록 적어졌으나, 옛 습속에다 약하고 게으르고 부드럽고 매끄러운 새로운 병통이 보태졌다. 그 마음은 진실로 다르면서도, 입에 올릴 때는 모두 섞임 없는 한빛이었다. 매번 공적 좌석에 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 이야기가 조정일에 이르면, 서로 모나게 말하지 않으려 하고 대답하기가 곤란하면 문득 우스갯소리로 우물쭈물 넘겨 버린다. 이런 까닭에 의관을 갖춘 자가 모인 자리에는 오직 당에 웃음 소리만 가득 들릴 뿐이고, 정사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이익만 도모하여, 실상 나랏일을 걱정하는 사람은 적다. 관직을 매우 가볍게 여기고 관청을 주막처럼 생각한다. 재상은 중용을 지킴으로써 어질다 하고, 삼사는 말을 아니하는 것으로써 고상하다 하며, 외관은 청렴하고 검소한 것을 못난이라 하여, 종말에는 점점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렸다...

 

이 비판 속에서 조선 후기 무너져가는 정치적/사상적 기반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의 삶 속에서도 여전히 생각해볼만한 성찰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인심조와 총론을 제외하고는 흥미진진하진 않다;;

그래서 다른 부분은 좀 빨리 읽어나갔고 인심조는 3번 정도 정독을 했는데

인심조는 나중에 다시 읽어봐야할 듯 싶다.

 

을유문화사에서 2002년 개정판을 낸 것인데, 원문도 수록하고 있고 가격도 저렴해서 좋다.

방점도 찍혀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그건 과욕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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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불온한가 - B급 좌파 김규항, 진보의 거처를 묻다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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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파'라는 책을 냈던 김규항의 신간. (그래봐야 작년에 나온 책이지만;;)
이 책은 'B급 좌파'와 마찬가지로 김규항이 여러저러한 곳에 실었던 글들과
자신의 블로그에 일기처럼 적었던 사는 이야기들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사실 이럴 땐 정말 부럽기도 하다. '사는 이야기'가 책이 될 수 있다니!)
 
책 중간에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글은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쨌든 이 책은 나를 무척이나 불편하게 했다.
'B급 좌파'를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르게 말이다.
 
그가 정의하는 '노선'에 의하면 나라는 인간은 절대 좌파가 아니며 진보도 아니다.
끽해야 중도 우파 정도 일까?;; (뭐.. 이렇게 정의하는 것 자체를 탐탁치 않아하지만;)
하지만 타인에 의해 내가 그렇게 정의되는 그 자체가 나를 불편하게 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 저자는 나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 없이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을 뿐이니까.
 
정작 나를 그토록 불편하게 했던 것은 나 자신 때문이다.
김규항은 스스로 인텔리(비꼬는 듯한 뉘앙스의)나 논평가가 아닌듯한 어조를 띄지만
내가 보기에(물론 내가 보기에 그렇다는 거다.) 그는 인텔리이며 논평가다.
때문에 그의 글들이 아니꼽게 보일 수도 있다. 정작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는 알 수 없으니까.
그런데 중요한 건, 김규항이 어떤 인간인지,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게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질문이다.
어느 순간 그의 말이 옳다라고 느끼는 지점에서 왜 나는 그의 실제 생활을 궁금해 했던 걸까.
'그래 나도 못하는 거, 너는 얼마나 잘 하고 있냐?'라는 그런 생억지?...
솔직히 완전히 부인을 못하겠다.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까지 내내 불편했던 것이리라.
 
전쟁에 반대한다면 반대한다고 외치면 될 일이다.
자본이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외치면 될 일이다.
전쟁에 반대한다는 사람의 말,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그러는 너는 어떻게 사는데?'라는 질문은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어떻게 사는가? 어떻게 살아왔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정작 중요한 것은 그러한 질문들이다.
 
'오늘 전쟁을 반대하는 것만이 내일 전쟁을 거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중립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사람이 제 이념대로 순정하게 찍는 것, 그래서 한국 정치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한국인들의 이념적 스펙트럼과 일치시키는 것이 가장 바람직 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모든 폭력은 모두 다르며 폭력을 반대하는 일은 그 다름을 세심하게 따지는 일에서 출발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9. 11을
 
'단지 '오랜 일방적 가해자가 당한, 뒤늦은 최초의 보복'이다'
 
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책을 덮는 순간, 그와 나 사이의 설득의 게임은 끝났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던 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더 이상 무슨 변명이 필요한가?
 
간만에 불편함을 느끼고 싶거나, 혹은 평소 느끼기 힘든 어이 없음이나 극도의 짜증을 느끼고 싶다면
바로 이 책을 권한다.
불편함이든, 어이 없음이든, 짜증이든, 혹은 강한 긍정이든.
그것이 바로 나의 모습임에는 틀림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나'는 행동하는 '나'와 일치하는가?...
 

어쨌거나 그가 딸, 아들을 키워가는 모습을 보면서는,
저것이 이상형은 아니더라도 저런 식으로 함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강하게 했다.
그리고 이건 또 딴 얘기지만, 책... 제발 좀 이렇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가격이 조금 올라도 좋다.
두툼하고도 노릇한 재생지에 인쇄된 가벼운 책. 나는 이런 책을 원한다.
양장본을 좋아하긴 하지만 둘 중 하나 택하라면 주저 없이 재생지로 만든 이 책을 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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