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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정제 ㅣ 이산의 책 17
미야자키 이치사다 지음, 차혜원 옮김 / 이산 / 2001년 1월
평점 :
학회 세미나 덕분에 읽게 된 일본인이 지은 중국사 관련 책.
이 책은 1950년에 출판된 책으로 한국에는 2001년에야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내용은 제목대로 청의 황제였던 옹정제의 치세에 대한 내용.
중국의 황제는 저자가 '전제군주'가 아닌 '독재군주'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듯이
그 절대권력이 조선은 물론 서양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특히 옹정제는 그의 선왕이었던 강희제와는 다르게 유래를 찾기 힘든 '독재군주'였다.
여기서 '독재군주'는 그 어휘가 풍기는 부정적인 뉘앙스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그 나름대로의 소명과 책임을 바탕으로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강력한 독재를 실시했던 것이다.
옹정제의 말을 직접 빌리면 간단히 설명이 되려나.
'천하가 다스려지고 다스려지지 않고는 나 하나의 책임, 이 한몸을 위해 천하를 고생시키는 일은 하지 않으리'
그는 자신의 이런 신념을 지키기 위해 자신과 신료들에게 모두 엄격했고
항상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며 누구보다도 부단히 일하고 애쓰고 생각했다.
그 모습을 이치사다는 '주비유지'라는 텍스트를 통해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주비유지'는 간단히 말하면 옹정제와 232명의 관료가 주고 받은 서간문을 출판한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독재군주 옹정제를 찬양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인가?
이상한 이야기일지는 모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이 책의 번역자가 번역 후기에서 적고 있듯이 이 책이 처음 출판된 시기는
중국의 사회주의가 나름의 기대를 받으며 사회를 구축해나가던 시기이다.
이러한 시기에 필자는 책을 마무리하며 아주 단정적으로 이야기한다.
이보다 더 애도할 일은 눈물이 흐를 만큼 선의에 넘치는 그의 정치가 독재군주제라는 형태를 띠고 있었기 때문에 보답이 의외로 적었을 뿐 아니라 예기치 않게 역효과까지 안은 점일 것이다. 생각건대 중국에서 수천 년 동안 전제군주제가 지속되어 온 것은 군주제가 어느 정도의 유연성을 갖고서 시대의 진보에 적응하며 발달해 온 덕분일 것이다. 만일 군주제가 아무 이상도 없이 완전히 자의적이고 무원칙하게 움직였다거나 딱딱한 껍질처럼 고정된 채 백성을 억압하기만 하였다면 아무리 참을성 많은 중국 민중이라도 이를 타도하고 새로운 정치양식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역사에서는 이른바 명군(名君)이라는 존재가 나타나 끊임없이 군주제의 이상과 실행방법을 고쳐 나갔고, 따라서 대중으로부터 무언의 신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옹정제의 독재정치는 그야말로 그 정점에 위치한다. 이렇게 해서 독재제를 신뢰하게 된 민중은 독재제가 아니면 다스려질 수 없도록 틀지워지는 것이다. 이것은 중국 민중에게는 참으로 슬픈 일이다. 이 점에서 말하자면 옹정제의 정치는 그야말로 선의에 넘치는 '악의의 정치'라고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선의에 넘친 악의의 비극은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며, 지금도 거대한 역사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선의에 넘치는 '악의의 정치'. 그리고 그것의 현재진행.
그것을 꿰뚫어보고 있는 학자의 예리한 통찰력이 빛나는 부분이다.
정말 간만에 읽게 된 명저. 비록 전문서적은 아니지만 그 이상의 통찰력을 보여준다.
책은 어렵게 쓴다고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보여주는 역작이다.
이 책이 1950년에 출판된 사실을, 난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다.
(그리고 이 책은 분량이 많지도 않을뿐더러 재미있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 책은 중국사 관련 책을 꾸준히 내고 있는 '이산' 출판사에서 나온 책인데
번역자인 차혜원씨의 성의 있는 '옮긴이의 말'도 인상 깊었다.
그 중에서 한 구절이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게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다.
번역자가 소개하는 필자와 관련된 에피소드.
미야자키는 1949년부터 교토 대학 내에 옹정주비유지 연구반을 만들어 '주비유지'의 윤독을 시작하였고 수업교재로도 활용한다. 이때부터 구어체와 속어가 섞여 난해하기 그지없는 '주비유지'는 오랜 시간에 걸쳐 연구반에 의해 완전히 독해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단순히 읽는 데만 그친 것이 아니라 고유명사와 법제상의 술어(術語), 지방풍속에 이르기까지 주요한 어휘를 카드에 채록하는 색인작업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40여 년간 매주 거의 빠짐없이 윤독회가 이루어졌는데, 모두 99명의 인원이 참가하였던 대사업이었다.
'주비유지'의 윤독회가 수백회 거듭되면서 연구원들 사이에는 이렇게 반복되는 작업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빠른 결론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 대하여 연구반의 또 다른 기둥이었던 아베 다케오라는 학자는 이렇게 일축하였다고 한다. "이런 일을 해나가는 일, 그게 바로 학문이라는 겁니다"라고.
"이런 일을 해나가는 일, 그게 바로 학문이라는 겁니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먼저 걸어간, 국적과 시대가 다른 한 선배의 말은 지금 내게도 유효한 말이다.
천천히 꾸준하게, 그러나 꼼꼼히 날카롭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글쓰는 재주나 시간, 아이디어 따위가 아니라, 그저 '정직한 노력'일 뿐이다.
적어도 역사가에겐 그렇다. 저 말을 평생 잊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