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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 - CJK - 죽은자를 위한 미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5월
평점 :
오랜만에 읽는 진중권의 글. 개인적으로 진중권의 글을 좋아하는 편이라 역시 재미있게 읽었다.
절판되어 있는 상태라 참고서 전문 사이트;;에서 어렵게 구한 이 책은 전쟁에 관한 에세이다.
그가 지적하고 있는 '한미동맹교'는 정말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정신병적 증세다.
침략전쟁에 제 나라의 국군을 파병하는데에 아무런 도덕적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회.
그게 바로 대한민국이다.
한미관계의 우호증진을 위해? 웃기지 마라.
미국이 단물을 느끼지 못한다면 주저없이 버릴 카드일 뿐이고,
또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북한을 공격해 한반도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도 있다.
경제적 압박이 두려워서? 웃기지 마라.
그래, 파병 좀 했더니 나아진게 있는가? 맨날 바닥바닥 얘기하면서 뭐가 그리 또 무서운겐가?
오호라, 좀 모아둔 게 있는 모양이구나. 나불대는 것과는 달리.
북한 빨갱이들이 언제든 밀려올까 그리도 두려워하는 자들이 제일 잘 나불댄다.
'일본하고 한 판 뜨지 뭐!', '북한에 미사일 확 쏴버려서 눌러버려야 해!'
대체, 전쟁을 뭐라고 생각하는 건가?
당신은 서명만 하고 성명만 발표하는, 저 바다 건너 오만한 제국의 제왕이 아니다.
너무 게임을 많이 해서 그런건가, 아니면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건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남벌', '한반도' 따위를 보면서 자위를 할만큼
전쟁이 그리 만만해 보이는가?
그렇게도 파병을 하고 싶은가? 그럼 헌법부터 고칠 일이다. "대한민국은 침략전쟁을 부인한다. 단, 미국이 요구할 때는 예외로 한다." 한미동맹이 아무리 중요해도 그것이 대한민국 헌법의 위에 올 수는 없는 일. 설사 이제까지는 그랬다 하더라도 지금부터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것인가? "반미 좀 하면 어떠냐"고 말하던 노무현 씨가 순식간에 얼굴을 바꾸더니 지금은 "친미 좀 하면 어떠냐"고 말한다. "이제까지는 한미관계가 일방적이었으나 이제는 긴장을 도입하겠다"고 기세 좋게 포효하던 그가, 베트남 전쟁 이후 가장 화끈한 규모의 파병을 결정했다. 그의 말대로 이쯤되면 '막 가자는 거'다.
'반미 좀 하면 어떠냐' 이 말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졌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 말 자체에 커다란 문제가 들어있던 것이다. 사실 노무현 씨는 말을 바꾼 게 아니다.
노무현 씨에게 '반미'는 '좀' 해도 되고 안해도 그만인 것, 그거였다.
'파병 좀 하면 어떠냐'는 그의 생각을 실천으로 옮긴 것 뿐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국군들은 이 침략전쟁에 경쟁하여 참여했다.
일부는 경력을 위해, 일부는 '사나이'다운 경험을 위하여.
또 언론은 아무런 쓸데도 없는 정보, 침략전쟁의 용병 모집 경쟁률을 친절하게 보도해주고
(전쟁의 실상에 대한 보도는 전혀하지도 않는다!)
한 은행은 자랑스런 태극기를 보여주며 이라크 파병 용병들을 광고에 등장시킨다.
용병. 그렇다. 그의 가족이나 당사자가 날 보고 욕할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정말 가난에 밀려 그 살육의 현장에 가게 되었다면, 진심으로 사과한다.
그러나 당신의 화려한 경력을 위해 경쟁을 뚫고 이라크에서 총을 잡고 있다면
당신이 나에게 사과해야 한다. 당신은 세금을 먹고 사는 국군이 아닌가?
대한민국의 직업 군인이 배우는 기초적인 내용 정도는 나도 안다. 당신은 국군이 아니다.
우리의 근거 없는 공포와, 부끄러움과 수치를 모르는 이 무식함.
여전히 '파병 중'인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하단 말인가.
김규항의 말을 빌리면 '오늘 전쟁을 반대하는 것만이 내일 전쟁을 거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좀 아쉬웠던 것은 이 책이 양장본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책의 의도가 반전을 위한 것이고, 또 책의 분량이 그리 많지 않다면. 그리고 내용도 에세이에 가깝다면.
양장본보다는 페이퍼 북처럼 책을 내고 가격을 조금이라도 낮추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그런 아쉬움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