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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로 건너가는 법
김민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9월
평점 :
"나를 키우는 것을 나의 본업으로 삼자는 다짐"(9쪽)
먹고살자면, 일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 운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또 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일과 자아실현이 일치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 또한 녹녹치 않다는 걸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먹고산다'는 말에서 느껴지는 그 끈적함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할 것 같다. 대체 왜 이런 걸까? 내가 선택한 일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대체 누가 태어나자마자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렸을 적 하고 싶은 일을 업으로 삼고 산다는 말인가?(어렸을 때 하고 싶었던 일을 지금 하라고 하면 행복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다. 바로 '내 일'이 아닌 걸(정확하게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내 일이 아니잖아." 얼마나 쉬운 말이며 편한 말인가. 직장인들 치고 '내 일'이 많은 건 상상조차 하기 싫을 테니까. 하지만 이건 어떤가? '내 일'처럼 느껴지지도 않는 일을 평생해야 한다면? 세상에, 이 또한 끔찍하기 그지 없다. 기계적으로 하면 되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흥미도 없고 의지도 없으며 동의조차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드물다. 다들 경험이 있을 테니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이 괴로운 경험은 대부분 위에서 떨어지는 '오더' 때문이라는 것도 다들 잘 알고 있을 터. 그렇다면 그 '오더'는 누가 내리는가? 다름 아닌, '사수'(난 이 말을 정말 싫어하지만), 상사, 팀장.
이 책을 쉽게 말하자면, 좋은 팀장이 되는 법, 아니, 좋은 팀을 만드는 법, 아니, 좋은 팀을 만들어서 일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법, 아니, 일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 행복한 나의 삶을 꾸리는 방법에 관한 책이다. 좀 신기한 건, 팀원을 관리하는 팀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변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통 이런 책이라면, 골치아픈 직원에게는 어떻게 대처해야하고, 까다로운 임원에게는 어떻게 대처해야하고... 라고 이야기하기 마련. 하지만 이 책은 변수를 이야기하기보다는 상수를 이야기한다. '나'라는 상수. 어떤 직장에 가든 나는 존재하고(아, 슬프게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나는 상수다. (이 표현은 수학적으로야 틀린 말이겠지만) 작가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변수를 논하기보다는 상수를 어떻게 빌드업할 것인가에 집중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완벽한 상수 만들기에 관한 책인가? 또 신기하게도, 그렇지도 않다. 완벽한 팀장이 되어라!, 라고 외치기 보다는 "완전한 자아는 완벽한 자아가 아니다"(79쪽)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찌하라는 것인가? 다양한 이야기가 책 속에 있지만, 결국은 이것인듯 하다. "팀장이여, 팀원이 되어라."
생각해보면, '우리 팀'을 밥먹듯 이야기하는 팀장들 중에 자신을 '팀 로스터'에 올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우리가 욕하는 팀장은 대부분 그런 팀장이다. (이해도 되지 않는) 오더를 내리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그런 팀장. 그러면서도 팀에 대한 불만은 가장 큰, 그리고 그 불만을 가장 큰 목소리로 매일 이야기하는 그런 팀장. 그렇기에 우리는 팀과 '안전'을 쉽게 연결짓지 못한다. '위험' 때문에 욕하지만, '안전'을 최상의 가치로 꼽지도 못했던 것이다.
팀원은 팀 안에서 안전해야 하니까. (82쪽)
나는 우리 팀이 안전해서 좋다. 우리 팀이 안전하다는 사실이 나를 안전하게 만들어줘서 안심이다. (88쪽)
이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 책이 일종의 노하우를 이야기하는 '실용 에세이'면서도 '나'라는 주어만큼이나 '우리'라는 주어를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라는 주어와 '우리'라는 주어를 가려서 써야 하는 자리가 바로 상사의 자리다. '나'라는 주어를 쓰면서 스스로의 책임을 다하고, '우리'라는 주어를 쓰면서 모두에게 이 일의 책임을 나눠주는 일. 바로 그 일을 하라고 회사에서 팀장에게는 조금이나마 월급을 더 주는 것이니 말이다. (134쪽)
우리는 패배의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처럼, 승리의 이유도 알지 못한다. 패배할 때와 마찬가지로 승리할 때에도 우리는 최선의 공을 던졌으니까. 다만 우리가 그 시간을 보내며 우리를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만을, 단단히 결속된 우리 사이에 패배감이 앉을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만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201쪽)
그간 사적인 에세이를 써왔던 작가가 낸 신간으로는 조금 의아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0년도 더 전에 '회의'를 이야기했던 작가가 '우리 팀'을 이야기하는 건, 어쩌면 그리 어색한 맥락이 아닐지도. 게다가 (혹은 당연히) 우리 팀에 뼈와 살을 갈아넣으라는 메세지로 치닫는 것이 아니라, '취향'을 이야기했던 작가답게 결국은 현재의 '내 일'을 통해 내일의 '내 일'로 건너가는 법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소소한 에피소드와 개성 있는 디자인과 삽화는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