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전 - 한국현대사를 온몸으로 헤쳐온 여덟 인생
김서령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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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앞서간 사람의 발자국이 우리들의 가장 훌륭한 교과서가 된다.'

 

저자의 말처럼 이 책에 등장하는 아홉 여성의 삶은 나를 그리고 나를 둘러싼 역사를 돌아보게끔 한다.

 

빨치산 할머니와 위안부 할버니, 팔로군 출신 할머니를 지나 춤꾼 이선옥 할머니와 명성황후의 한을 풀려 혼신을 다한 이영숙 할머니의 삶을 읽으면서 가장 처음 들었던 생각은 이들이 전부 '한국현대사를 온몸으로 헤쳐온 여덟인생'(이 책의 부제)이라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었다. 빨치산과 위안부, 팔로군의 삶보다 춤꾼, 고아원 선생들은 훨씬 '개인적'으로 느껴졌으니까.

 

그러나 나는 다시금 반성하며 생각했다. 역사와 동떨어진 개인적 삶이 어디 존재하는가. 춤꾼이라 해서, 종가집 며느리라 해서 어찌 현대사를 온몸으로 헤쳐오지 않았겠는가. 나는 아직도 내가 늘 비판하던 주류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의 삶을 하나하나 진심으로 만져 살펴보고 또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리고 그 '개인적'인 삶에서 역사적 맥락을 읽어내는 것. 그것이 내가 보고 싶던 역사가 아니던가.

 

이 책이 더욱 의미를 가지는 것은 (당연히) 여자의 삶, 우리 할머니들의 삶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저자의 서문에서처럼 '같은 시대 같은 나라 같은 성별로 태어났다는 것이야 말로 운명을 결정하는 핵심요소'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정작 나야말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거의 알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의 삶도 당신들께서 가끔 이야기해주시는 것 말고는 알지 못한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사료보다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 더 급선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이해하는 첩경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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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광인일기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5
루쉰 지음, 정석원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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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예전에 처음 읽었을 때는 '아Q정전'이 대표작이라 그것에 치중해서 봤었는데
이번엔 오히려 '광인일기'에 관심이 갔다.
당시 루쉰 선생이 그런 의도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 소설은 현재 다른 맥락에서 읽을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광인일기'는 말 그대로 미친 자의 일기다. 주변 사람들이 다 자신을 잡아먹으려 한다는 생각을 하는.
그저 미친자의 일기로 볼 수도 있고, 당시 봉건도덕을 비판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이 아름다운 무한경쟁 시대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이 글이 다른 맥락으로 읽혔다.
 
......무려 4천 년 동안이나 늘 사람을 잡아먹던 곳, 나 역시 그곳에서 오랜 세월 동안 함께해왔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4천 년 간이나 사람을 잡아먹은 경력을 가진 나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진정한 사람을 만나기가 이다지도 어려운가!
  아직도 사람 고기를 못 먹어본 어린이가 있을까?
  아이들을 구하라......
 
'미친 자'의 일기가 이리도 섬뜩하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얼마나 덜 섬뜩한가.
 
그래도 역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은 '고향'.
드디어 사람에게서 20년만의 고향을 찾은 것 같았던 주인공에게
'주인님....'이라는 한 마디. 현실의 벽이 차갑게 부딪혀 오지만 30년 전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주인공은 생각한다.
 
  나는 희망을 생각하게 되자 갑자기 무서워졌다. 룬투가 향로와 촛대를 요구할 때 나는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나는 그가 아직도 우상을 숭배하고 있으며 한시도 잊지 않고 있구나 하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말하는 희망이라는 것 역시 나 스스로가 만들어낸 우상이 아닐까? 다른 점이라면 그의 희망은 절박한 것인데 비해 나의 희망은 막연하고 아득한 것이라는 점뿐이다.
  몽롱한 가운데 눈 앞에는 해변가의 푸르른 모래밭이 떠올랐다. 짙은 남색 하늘에 바퀴처럼 둥근 황금의 보름달이 떠 있다. 나는 생각해보았다. 희망은 본디 있다고 할 것도 아니고 또 없다고 할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원래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서 저절로 생겨난 것처럼.
 
번역자에 따라 약간씩은 다르지만, 어쨌든 이 구절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어두움 속에서 담담하게 희망의 부재를 이야기하는 저 구절.
그러나 '희망은 반드시 있다'라는 말보다도 저 구절이 더 와닿고, 또 내게 힘을 준다.
희망의 원동력은 '부재'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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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Holiday - 지상에서의 휴가
미나가와 미나코 지음, 홍익출판사 편집부 옮김 / 홍익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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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제가 '지상으로 함께 휴가를 떠난 천사와 악마의 이야기'.
이 제목으로 나는 어떤 기대를 했던 것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우연히 손에 든 이 책.
두께와 분량과는 상관 없이 내게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주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런 말들을 '일'로 삼는 천사.
그리고 그 일에서 벗어난 휴가 때 지상으로 직접 내려온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휴일이니까.
반면 불행과 증오 같은 것의 원천인 악마.
그는 휴가 때 그가 정말 한 번 해보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남을 돕는 일'을 하려 한다.
하지만...
 
정말 10분이면 읽을 이 책은, 가슴 한켠에 묵직한 납덩어리를 얹어놓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이다.
마지막 장의 출판 정보 위에 써있는 작가의 유일한 유작이라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더더욱.
악마가 천사 톰에게 찾아가 외친 그 말들이 메아리 친다.
누가, 누구를 악마로 규정하는 걸까?...
 
"I hate you, really!
 Don't you know why you are loved no matter what?
 It's just because you are an angel!"
 
저자의 간단한 후기에 'LIVE'를 그대로 뒤집어 보라는 말이 있었다.
처음 알았다, 이것도. 그러네 정말.
 
어쨌거나 기회되면 한번씩 꺼내 읽어도 좋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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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개정증보판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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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이 책 '징비록'은 류성룡이 임진왜란을 회상하며 쓴 책이다.
물론 책의 의도는 전쟁에 대한 반성과 경고.
 
류성룡은 임진왜란 동안 조선 내부에서 어떻게 대처를 했는지 기록하고 있다.
결코 '승전'이라고 할 수 없는 전쟁이었기에(사실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조선에겐 패전이므로)
이 기록은 자신을 비롯한 지도층의 활약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냉철한 반성의 기록이며 후대에 대한 경고의 기록이다.
그가 책 속에서 종종 언급하고 있듯이, 임진왜란의 대부분 경우
잘못된 것은 그리 될 수 밖에 없었던 인재였고 잘된 것은 천만다행의 하늘의 뜻이었던 것이다.
 
사실 조선왕조가 전쟁 발발의 가능성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은 수긍할만 하다.
조선에게 있어 전쟁이라는 것은 선택할만한 옵션이 아니었고
때문에 전쟁을 상상하는 것은 그야말로 과대망상이었을 수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전쟁이라는 것이 자기가 선택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결국 전쟁은 일어났고, 그 결과는 처참했다.
비록 결과적으로 일본군은 물러갔지만, 전장이었던 조선은 그야말로 '지옥'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류성용은 자신을 포함해 임금과 지도층의 적절치 못한 대응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하고 있다.
그리고 '녹후잡기'에는 전투에서 유용하거나 주의해야할 점까지 기록하고 있어
이 책의 의도를 짐작케 하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 동아시아 정세가 크게 격변함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그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변화에 가시를 더 첨예하게 세워 움추렸다.
결국 임진왜란의 최고 수훈자들은 임금을 모시고 도망했던 인물들이 꼽혔고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자들(그게 살기 위해서이든 나라를 위해서이든)보다는
명의 군사를 끌어올 수 있었(다고 주장하)던 임금과 지배관료들이 다시 힘을 잡게 되었다.
전쟁으로 나라가 쑥대밭이 되었지만 그 책임을 져야할 자들이 오히려 기득권을 더욱 강화했던 것이다.
 
왕이 청 황제에게 평복을 입고 머리를 조아리는 수치를 당하면서도
이미 사라져버린 명의 유령에게 의리를 지켜야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이 대세였던 것은
임진왜란 직후의 상황을 볼 때, 당연한 결과일 수 밖에 없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반성의 기록이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면,
과거 선인의 현명함에 탄복해야하는 것일까, 아니면 역사는 역시 반복이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의 모습이 어떠한지 한번쯤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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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여인의 죽음 이산의 책 22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이재정 옮김 / 이산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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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는 달리 내용은 중국 청대의 특별하지 않은 한 지방의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스펜스의 책을 접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조금 낯선 방식의 서술이긴 했다.
읽고나면 역사서가 아닌 문학작품을 읽었다는 느낌이랄까.
(하긴 요새 그 경계가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새로운 방식의 서술과 그 동안 주목 받지 못했던 소재들에 주목한 점은 신선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조금은 더 가까이 들여볼 수는 없었을까하는 아쉬움.
그리고 책 뒷표지에 써있는 문구에 무엇인가 모자란듯한 느낌.
 
... 그는 단순히 17세기 중국 농촌의 현실과 제도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당시 중국인의 생각과 감정, 심지어는 그들이 꾼 꿈의 세계까지 재구성했다....
 
글쎄. 이 책에 '당시 중국인들의 생각과 감정, 심지어는 그들이 꾼 꿈의 세계'가
재구성되어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 동안의 거시사가 그래왔던 것처럼 똑같은 거친 일반화가 아닐까.
(하긴 이건 저자의 문제가 아니라 출판사의 문제겠지만.)
 
이젠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 시대의 몇몇 인물만의 삶을 서술한 것이 무의미한가?..라고.
그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고 의미가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굳이 그것을 통해 전체의 모습을 보겠다는 쓸데 없는 욕심은 이제 부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책이 얇고 부담 없이 읽히는 책이라 새로운 역사서술 방식을 보고 싶다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사실 신선하다고 하지만 이 책은 78년도에 나온 책이다. -_-;)
아.. 가격이 쓸데 없이 좀 비싼게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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