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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의 과거 여행 - 한 빨갱이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
윤택림 지음 / 역사비평사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정말 오랜만에 읽는 인류학 분야의 책. 부제는 '한 빨갱이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다.
어떠한가? 제목이 자극적인가? 그렇다. '빨갱이'는 아직까지도 우리사회에서 특별한 힘을 가진다.
이 책은 사학과를 졸업한 저자가 사학분야에서의 미비함을 느끼고 인류학으로 전공을 바꾸면서
진행한 박사 논문을 발전시켜서 낸 책이다.
연구 대상이 된 곳은 충청남도 예산의 한 부락을 대상으로 했다.
(이 책에서는 시양리라고 하는데, 신분보호상 지명과 인명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고 있다.)
저자는 1989년과 1996년 두번의 현지조사를 실시했다.
물론 딸랑 가서 구경만 하고 온 것이 아니라 그곳에 거주를 하면서 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비록 인류학 분야의 책이라고는 하지만 나에게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과연 6.25나 기타등등의 '국가적', '역사적' 사건들은 누구의 기억이었던가?
전국민들이 교과서에 적힌대로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가?
이제는 그러한 질문에 부정적인 대답을 하고 조금더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볼 때가 아닌가 한다.
같은 사건이라 할지라도 남녀간의 경험차, 기억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6.25의 모습도 어찌보면 매우 국지적인 모습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한가지 예를 들면 이 책의 연구대상 지역인 시양리에서는 6.25때 벌어진 대립과 살상이
비단 사상의 차이에서 일어난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즉, 시양리에서의 6.25는 계급이 갈등의 주요변수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그곳에서의 '이데올로기는 마을사람들 간의 개인적 싸움, 가족간의 불화,
정치적 경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수사적 상징적 장치'였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으로만 간단하게 파악하고 있다.
이 복잡한 사건을... 왜?
그렇게 단순한 분리 구조는 '숙청'이 용이하며 전후의 대중 통제에도 확실한 기여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계속적으로 드러나지만 연구가 진행되었던 1989년에도 여전히 '빨갱이'는 금지된 언어였으며
시양리 사람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타인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했다.
아직까지도 '꼴통보수'와 '빨갱이'의 이분법이 유효한 것을 보면,
이것을 과거의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 없을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라. 사상적으로 좌파라고 혹은 우파라고 자칭하는 인간들이
모든 생활에서 그러한 모습을 보이는지.
인간은 그리 단순한 동물이 아니다. 그러나 단순해져야 통제하기 쉬워진다.
모든 역사에서, 그러했지만 가장 쉬워보이는 길이 모두가 파멸로 이르는 지름길이다.
비록 300페이지가 조금 넘는(참고 서적과 미주를 제외하면 300페이지가 좀 안된다.)
적은 분량의 책이지만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고, 많은 생각 거리를 던져주었다.
물론 현지조사의 분량이 연구조사의 당위성이나 이론적 배경 설명에 비해 너무 적은감은 있으나
아직까지 이론적 배경이나 당위성을 제껴놓고 시작할만큼 이런 쪽의 연구가 활발한 것도 아니니...
간만에 참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