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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의 대륙 - 20세기 유럽 현대사 ㅣ 커리큘럼 현대사 1
마크 마조워 지음, 김준형 옮김 / 후마니타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마크 마조워의 저작, 『암흑의 대륙』은 ‘논쟁적인 문제작’이라는 책의 홍보와는 달리 유럽 현대사의 개설서에 가까운 책이다. 물론 개설서가 논쟁적인 작품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2010년의 한국 독자에게 이 책이 ‘충격’을 주거나 혹은 ‘새로운 길’을 제시하거나, 정반대로 극심한 ‘반감’을 불러일으키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책이 1998년에 출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마조워가 이 책의 집필을 시작한 것은 1993년이다). 그러나.
끝없이 끓어오르는 증오감과 억누르지 못할 혈기가 지배하는 인간의 물결. 종종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에 맞춰서 호전적인 합창이 이어진다. 곧이어 단상 위에 누군가가 올라서자 주변은 침묵에 젖어든다. 이 종족의 족장으로 보이는 그 인물은 가장 화려한 복장을 하고서 열정적인 목소리로 좌중의 흥분을 배가시킨다. 주문과 같은 선언, 아니 선언과 같은 주문. 이 ‘의식’을 통해 그들은 자신의 종족이 얼마나 강한지를 재차 확인하고서 척결해야할 이웃 종족의 마을로 향한다. 전사들은 지휘자의 명령에 두려움 없이 적진으로 향할 것이다. 그들의 종족은 태생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에 패배란 없다. 그런데, 이 전사들의 손에는 창이나 활, 칼이 아닌 Kar 98k가 들려 있다. 그리고 그들의 족장은 검갈색의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콧수염을 기른 사내다.
종족간의 싸움, 내전, 민간인 학살, 야만. 우리는 이런 이미지를 주로 아프리카에 적용시킨다. 물론 그 적용이 틀린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란 기억력이 그리 좋지 않은 법. 100년도 채 되기 전, 암흑의 대륙은 아프리카가 아니라 바로 유럽이었다. 마크 마조워는 바로 그 사실을 지적한다. 그것도 매우 꼼꼼하게.
이 대륙에 드리운 암흑은 히틀러나 무솔리니와 같은 소위 ‘싸이코’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그 극단에 서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유럽에는 이미 ‘야만적’인 인종주의가 하나의 보편이었다. 그리고 그 보편은 ‘전체주의’로 귀결되었다. 이 전체주의는 억압과 폭력의 수단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방조 때로는 적극적인 협조에 의해 더욱 강성해졌다.
제3제국은 단지 억압 위에서만 세워진 것도 아니었으며, 법 제도의 작용으로만 유지된 것도 아니었다. 독일인 대다수가 히틀러를 지지한 것도 아니지만, 그에게 저항한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국가를 받아들였고, 이 체제는 정상적인 삶의 일부가 되었다. (65쪽)
서구 사람들은 이런 대학살에 치를 떨었지만, 애초에 근동[아라비아, 북동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발칸 등을 포함하는 지역]의 다민족 사회에 민족국가라는 서구적 개념이 도입되면서, 그들이 무엇보다 먼저 대량 학살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95쪽)
그러므로 ‘당시에는 나치 정권이 특별히 비정상적인 정권이 아니었으며, 인종 청소라는 정책을 최초로 시도한 정권도 아니었다’(93쪽)라는 마조워의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게다가 추축국에 대한 연합군의 승리는 정의의 승리도 민주주의 승리도 아니었다. 결과로서 민주주의가 도래했을지는 모르나 그것이 결코 ‘필연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앞에서 이 책이 별로 충격적이지 않다고 했지만, 그것은 어쩌면 우리의 분열된 인식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국 드라마 ‘Band of Brothers’가 묻는 ‘Why we fight’(이 드라마 시리즈의 9편), ‘Medal of Honor’와 같은 전쟁 게임이 보여주는 추축국과 연합군의 이미지, 그리고 불타는 교회의 입구를 막으라는 ‘명령’을 충실히 행했을 뿐이라는 순진한 표정의 가련한 여인(영화 ‘더 리더’ 中)을 보라. 어쩌면 마조워는 유럽인들이 ‘그러했다고’ 믿고 싶어 하는 환상을 깨부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한 (오늘날에도 계속적으로 생산되는) 이미지들에 큰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으면서도 마조워의 ‘파괴행위’에 그다지 충격을 받지 못하는 것은 말 그대로 ‘분열’일 뿐이다.
이 책은 개설서에 가깝지만, (옮긴이의 평대로) 거시적인 측면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다. 마조워는 세세한 사료들을 섭렵하고 인용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간다. 게다가 거대 구조의 ‘틈새’에서 벌어지는 미시적 움직임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거시적 움직임 또한 생동감 있는 사료와 인용을 동원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측면에서 ‘결핍’은 당의 지배에 위협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당 권력의 기본 요소였다. 당에 가입하거나 협조하는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부족한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였다. (378쪽)
1960년대 초가 되면 광고는 한발 더 나아가 여성들을 ‘젊은 어머니’와 나이 든 부인들, 그리고 젊고 섹시한 세련된 미혼 여성으로 구별하기 시작했다. (410쪽)
고발이나 사찰의 공포가 가족, 심지어 잠재의식에까지 침투했다. 1934년 45세인 한 독일인 의사의 꿈이 이를 잘 말해준다.
저녁 9시 정도 된 것 같다. 진찰이 모두 끝나고 소파에 앉아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피로를 풀기 위해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에 대한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내 방이 사라지더니, 곧 아파트가 사라져 버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두렵게도 내 시야가 미치는 곳 어디에도 아파트 벽들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스피커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벽을 제거하라는 이번 달 17번째 포고령에 따라......".
꿈을 기록한 뒤에 그 의사는 또 한 번 이 꿈을 기록한 사실 때문에 고발당하는 꿈까지 꾸었다. 이제 잠조차 사적 영역이 아니었던 것이다. (62쪽)
전후의 시기를 넘어 마조워는 유럽의 민족국가가 결코 종식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의 세계화가 유럽에서 민족국가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538쪽)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소속감을 만들어내지 못하며, 민족주의는 더이상 유럽의 평화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유럽이 현실적 겸양만 갖춘다면, 굴곡이 심한 이 민주주의의 역사는 비관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만약 유럽인들이 유럽에 대한, 작동 가능한 하나의 정의를 발견하고자 하는 무모한 욕구만 포기한다면, 그리고 세계에서 좀 더 소박한 지위를 수용할 수만 있다면,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미래에도 있을 다양성과 차이를 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540쪽)
하지만 마조워의 낙관론에 무조건적으로 동의할 수만은 없다. 마조워는 유고슬라비아에서 벌어진 전쟁들이 전면적으로 확대되지 않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얘기하는데, ‘그것은 오늘날 유럽의 열강은 서로 군사적 경쟁자라기보다는 동반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견 타당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것은 다분히 결과론적 해석이라는 의심이 든다. 이렇게 바라본다면 세계 1차대전 또한 발발하지 않을 ‘그만한 이유’가 얼마든지 있었다. 현재의 위험요소를 과장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마조워는 이런 ‘과장’들을 종종 비판하고 있다), 과소평가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특히 그것이 결과론적 해석에 의지하는 것이라면, ‘역사가의 속편함’이 또 다시 도마에 오를 수 있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나 또한 낙관론을 버릴 수는 없을 것 같다. 단순한 비관보다는 그 비관을 바탕으로 한 낙관이 훨씬 낫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고, 또 역사가 단순히 반복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마조워의 말에 동의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치의 제국주의는 유럽인들이 과거에 아시아나 아프리카, 특히 아메리카에서 저질렀던 폭력과 인종차별을 유럽에 가져왔다’(251쪽)는 마조워의 반성/비판을 효과적으로 소화한다면, 조금이나마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을 놓을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인간이 기억력이 좋지 않기는 하지만, 모두 잊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그 기억력을 위해서는 역사가의 역할도 중요할 것이다.
- 기타 문제제기
1. 마조워가 사용하는 민주주의는 곳곳에서 다른 뉘앙스로 사용되고 있다. 다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2. ‘영국의 가치는 권위주의적이기보다는 자유주의적이었다. 또한 분명 인종주의가 존재했지만, 영국의 인종주의는 생물학보다는 문화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114쪽) 이 표현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문화에 기반을 둔 인종주의는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생물학에 기반을 둔 인종주의보다는 낫다.. 라고 할 수 있는가? 마찬가지로 150~151쪽에서 제시되는 헉슬리의 관점을 살펴보자면, 그가 숭배한 우생학은 그렇다면 무엇이란 말인가?
3. 파시즘에 대한 문제제기. 39쪽. 파편화가 파시즘을 부추긴 요인이라면, 파시즘은 어떻게 파편화를 극복하였는가?
4. 민족주의 혹은 민족국가에 대한 이중관점. 제2차 세계대전의 상황을 묘사할 때 마조워는 민족이 허상에 가깝다는 의견을 넌지시 내비친다. 그러나 그가 현재의 상황을 묘사할 때와 같이 개념이 ‘허상’이라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혹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5. 신자유주의에 대한 평가. 영국 노동당의 승리가 과연 신자유주의의 패배인가? (이것은 이미 그렇지 않다고 증명된 것이기는 하지만)
6. '효율적인 살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이것이 비판의 중심에 설 수 있는가? '비효율적인 살인'은 효율적인 살인보다 나은가?
이 역시 전체 페이지가 600이 넘는 책. 요새 두꺼운 책들을 연달아 읽어 좀 지치기는 한데... 이렇게 많은 분량, 긴 호흡의 글을 지치지 않고 끌어 갈 수 있는 저자의 힘에 놀라게 된다. 그만큼 이 책은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