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자 토마스 쿤는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사를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보았다. 과학사의 발전이 누적, 승계, 발전의 단계를 거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과학이론이 그 전에 과학판을 지배하던 이론들을 다 밀어버리고 새로 건설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기존의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기존의 건물을 깡그리 헐어버리고 새롭게 건물을 짓는다고 것.
예를 들어 케플러나 갈릴레오의 지구중심모델(지동설이 아니다. 아직도 설이라고 해야하나!)은 태양중심모델을 뒤엎었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뉴튼의 고전물리학 법칙을 뒤집었다. 한 때 천년 이상혹은 수백년 동인 세상을 지배했던 과학이념(패러다임)들이 실험이나 관찰에 의해 새로운 과학이론으로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쿤을 그것을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보았고, 패러다임이 변하면 그 패러다임에 맞는 과학 이론들이 속속히 등장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당시 많은 과학철학자들의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비판 또한 만만치 않았지만, 쿤의 전체적인 과학사를 꿰뚫어 보는 시각이, 남들이 눈치채지 못한 것을 캐치했다는 점에서 예리한 것만은 분명하다.
문득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를 읽고, 나꼼수를 들으면서 떠 오른 것이 바로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이 변하면 세상도 변한다,라는 말이었다. 그 말과 함께, 현재 한국의 기존 정치지형이 꿈틀대기 시작했고, 그 꿈틀거림은 한국 (정치)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서서히 몰고 와 기존 정치를 완전히 뒤엎어 밀어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리고 현재 움직이고 있는 패러다임의 중심에 김어준, 그가 있다고 말이다.
거대 정당, 지지 세력의 결집, 눈에 띄는 정치적 위상, 그 어느 제대로 된 정치성을 그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만 젊은 시절 딴지 일보를 들고 나와 조중동을 거침없이 찌라시화한 것뿐. 무엇 하나 그가 정치적이었다고 딱 부러지게 말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던 그가,
나꼼수를 하면서 정치적으로 변했다. 아니 나꼼수를 기획한 것부터가 그의 정치성은 결정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가 기존의 정치프로와는 다른 프레임을 가지고 나왔다는 것이다. 정재승교수가 한겨레에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저잣거리 서민들의 눈높이로 말이다. 그리고 그게 운이든 필연이든 그런 기획은 먹혀 들었다. 프레임이 잘 짜여졌다고 해야하나.
기존의 정치판이나 언론판에서 보여주는 있어 보이는 뭔가가 나꼼수나 김어준에겐 없다. 까불고 깔깔거리고 정신 없지만, 스튜디오의 골방에서는 현 정권의 권력의 부패와 비리를 이야기하고 부패 권력의 진실의 진상을 논리적으로 이야기한다. 대중은 분명 이 정권에 엄청난 더러운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아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머리 속에 정리되지 않고, 안다고 해도 속시원이 통쾌하게 까발릴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나꼼수는 시원한 부분을 끍어주면서, 대중의 호응도를 이끌어 내고 대중 정치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프레임속으로 제일야당의 대표위원이 나오고, 민주당 서울 시장 경선 때 젊은이들을 장충체육관으로 끌어들이고 민주통합당 대표 경선을 위해 후보들이 스튜디오에 출연해 자기의 출마변을 이야기했다. 할 정도이니, 실제 나꼼수의 대중정치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정치는 나와 전혀 상관이 없다고 믿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대중정치의 힘이 무엇인지, 그리고 대중 정치의 정의가 최대권력을 어떻게 굴복시킬 수 있는지, 정치란 몇 몇의 권력자가 이끄는 것이 아닌 대중의 힘으로 세상(정치)을 움직여야 한다고 말이다.
대중을 정치로 이끌어 내고 있고 서서히 대중정치로 이행하려는 패러다임을 그가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고 보는 것이 나만의 착각이고 오버일까. 물론 그럴 수 있겠다.
그러나, 그의 딴지 일보 창간이나 나꼼수의 팟캐스트 랭킹을 보면서, 그가 인터넷 혹은 모바일 매체의 속성을 잘 알거나 이용을 잘한다, 정도에서 평가할 수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성공이 우연이든 운이 좋아서 그런 것이든, 가벼운 웃음 속에 가려진 권력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그의 불굴의 의지만은 높게 사고 싶다.
개인적으로 딴지 일보 창간되기 전까지만 해도 조중동의 해악에 대해 몰랐었다. 딴지나 오마이뉴스를 읽으면서 그들이 한국을 어떻게 움직이고 조정하는지, 권력의 분배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알 게 되었다.
사실 딴지나 오마이뉴스같은 매체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의식 또한 많이 변화을 가져 왔다고 장담한다. 절대성에서 상대적으로 말이다. 패러다임의 등장은 결국 기존의 절대성이 무너지고 상대성이 자리 잡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조중동의 절대성을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김어준의 딴지 일보의 등장은 중요한 언론역사의 한부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진보라는 것도, 보수라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가 그리고 나꼼수 멤버들이 해야할 일은 대중를 정치로 이끌어 낼 수 있는, 그리고 참여할 수 있게금 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패러다임이 변하면 우리 정치도 그리고 우리의 세계도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