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읽다가 포기했는데, 올해 천천히 다시 읽어보고 있다. 호킹의 글이 의외로 관념적이서 읽은데 여간 애를 먹는 게 아니다. 본인은 철학은 죽었다라고 썼지만, 그가 이 책에서 전달하는 물리학 역사에 대한 설명이 명확하고 명쾌하지 않다. 오히려 철학적이고 사유적 글쓰기라고 해야하나.
대대적으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광고한 것치고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조목조목 따지지는 않는다. 물리 자체가 우주를 이해하는 방식이라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전제가 깔려있을 뿐. 그러고보니, 칼 세이건의 <다양한 과학적 경험>도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광고했지만, 내가 읽어본 봐로는 핵무기에 대한 경고와 공포에 더 비중을 두었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과학책을 읽은 방법중 무작위로 한 챕터씩 읽다가 나중에 다시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책의 내용을 통합하는 것인데, 이 책은 물리의 역사이므로 사실 한 챕터씩 읽기엔 무리가 있어 처음부터 순차적으로 읽고 있다. 문제는 제3장 양자역학에 가면 언제나 막힌다는 것. 거의 돌아버리겠다. 이해가 될듯 말듯 하면서도 무슨 말인지 통합적으로 정리하면 갈피를 본 잡겠다.
그래서 양자역학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위대한 물리학자 4>라는 책을 들었는데, 이 책 첫챕터가 사고의 탐험가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양자역학이든 뭐든지 간에 현대 물리학은 아인슈타인에서 출발하니깐. 이제 상대성이론도 뉴튼처럼 고전물리학이 되었다하더라도.
이 책에서 아인슈타인을 사고의 탐험가라고 명명한 것은 아주 의미심장한데, 물리학사를 통들어서 아인슈타인의 사고는 관념적이거나 추상에 그치는 사고가 아닌 상당히 실제적이고 실험적으로 접근 가능한 사유라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아인슈타인에 관한 책을 읽은 것중에서 잊혀지지 않는 대목이 있는데, 그건 사이먼 싱이 16살의 아인슈타인을 묘사하는 한 대목이었다.
아인슈타인은 1896년 열여섯 살 때 거을을 앞에 들고 빛의 속도로 날아갈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사고실험을 했다. 그는 이 경우에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생각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이론으로는 우주는 움직이지 않는 에테르로 가득차 있다. 빛은 이 에테르의 으해 전달된다고 생각되었으므로 빛은 에테르이 대해서 빛의 속도(초속 30만 킬로미터)로 달리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사고 실험에서 그의 얼국과 그가 들고 있는 거울은 에테르이 대해서 빛의 속도로 달리고 있다. 빛은 아인슈타인의 얼굴을 떠나 손에 들고 있는 거울을 향해 달리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빛의 속도로 달리고 있기 때문에 이 빛은 얼굴을 떠날 수 없고 따라서 거울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빛이 거울에 도달할 없다면 거울에 반사될 수 없고 결국 아인슈타인도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서 볼 수 없을 것이다
한 천재 소년이 세상을 다 바꿀 사고 실험을 하는, 이 장면을 읽고 나서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겨우 16살에, 친구에 대한 고민, 학업성적에 대한 고민, 무엇보다도 한창 사춘기의 나이에 이런 사유를 하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전율을 느낄만큼 무섭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어디까지가 인간 사유의 정점이고 끝일까,하고 말이다.
아인슈타인의 이 사유는 후에 그의 특수 상대서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을 낳는 원천이 되었고, 특수 상대성과 일반 상대성은 다른 실험과학자들에 의해 실험을 통해 증명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머리속에서 상상했던 것들이 실험으로 증명이 되고 세상을 과학적으로 진보시킬 수 있다는 것에, 한 인간의 능력에 전율을 느낄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