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동안 빨리 나오길 기대했던 신작이지만, 그렇게 인상적으로 읽지 않았다. 딱 그녀의 평균치 정도. 왠만큼 글을 쓰는 사람이라 후진 글을 쓴 것도 그렇다고 <모방범>이나 <이유>와 나란히 놓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라고 말하긴 어렵다(개인적인 관점에서 말한 것이다. 미미여사의 한국출판된 작품은 다 읽었기에 그녀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서 말한 것이다).

 

소설을 구성하는 큰 흐름의 임팩트한 사건은 없지만, 미야베 미유키가 말하는 결혼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해 볼 만 하다. 시부모와의 종교갈등으로 이혼한 첫번째 에피소드 고구레 사진관, 아버지와 친가에서 무시당하는 엄마의 자신감을 되찾아 주기 위해 5학년에 초등학교를 자퇴하고 대안학교에 다니는 세번째 에피소드 갈매기의 이름, 그리고 시어머니에게 손녀의 죽음으로 온갖 폭언을 들어야했던 하나짱의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는 철로의 봄 에피소드에서 공통점은 고부간의 갈등이다.

 

우리나라도 아닌 일본에서 소설의 소재로 고부갈등이라니. 의아했지만 사람사는 곳(혹은 문화)은 어디든 비슷한지, 서양인들도 장모와 사위의 우리 고부 갈등 못지 않게 서로 으르렁 댄다고  하지 않던가. 사람들 관계에서 갈등은 언제나 어디서든지 존재하게 마련인가 보다.

 

그렇담, 고부간의 갈등의 원인은 무엇일까?  겉보기엔 고부간의 二人 갈등처럼 보이지만 실상 남편이자 아들이 낀 삼각관계의 갈등이라고 보며, 고부간의 갈등의 주된 원인은 독립된 결혼생활을 꾸려내지 못하는 남자(혹은 남편)에게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결혼 당시, 부모의 사종교문제에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가 시부모가 며느리에게 자신들의 종교를 믿을 것을 강요하면서 시부모와  아내가 종교로 갈등을 일으키자 자신의 부모와 합심해서 부인을 가족내 따 시키는 첫번째 에피소든의 남편과,  엄마가 조부모에게 여러모로 못마땅한 며느리라며 무시당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어머니 대신 반기를 드는 아들보다 못한 남편의 예에서처럼, 남편이 자신의 부모에게 정신적, 심리적으로 완전한 독립을 하지 못한다면 그 가정은 흔들리게 되어 있다.

 

반면에 소설의 주인공 하나짱의 경우 아버지경우, 본가 어머니가 자신의 아내를 흔들자 가차 없이 본가와 인연을 끊고 자신이 독립된 가정을 이끌어 간다. 혹 어떻게 아들로써 본가의 인연을 끊을 수 있을까, 자식된 도리로 못 할 짓이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다 큰 아들 가정에 무모한 간섭을 일삼는 부모 또한 합리적인 사람들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부모라 할지라도.

 

동물은 새끼를 낳고 양육 기간을 거치면서 새끼가 독립할 수 있겠다 싶으면 새끼를 가차없이 내친다. 반면에 인간은 부모와 자식간에 평생동안 분리할 수 없는 자기장을 형성한다. 그 과정에서 결혼을 할 경우 부모와 자식은 서로 간섭하지 않고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각각 부모가정과 자식 가정간의 독립을 원칙(경제적으로 심리적이든)으로, 자신의 가정을 제일순위로 정해야 하는 것이 가정을 지키는 길이다. 세월을 더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자식의 결정에 네가 뭘 아냐 식으로 자식은 부모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따라야한다는 사고 방식은 자식을 한 명의 다 큰 성인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다.

 

성인이란 자신이 하는 일에 책임과 의무를 다 할 수 있는 인격체이며 어떤 경우 혹은 상황에 이성적으로 사리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다하는 사람을 말한다. 자신의 자식을 성인으로, 독립적으로 대할 때 비로소 그 자식들은 자신의 가정을 꾸려나가고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이다.

 

미야베 미유키가 묘사하는 가정은 부모와 자식간의 정에 연연해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부모와 자식간의 애틋한 정은 아이가 어릴 때 그 순간에만 가능한 것이다. 아이가 청소년으로 그리고 성인으로 갈수록 그들의 삶을 독립적으로 이끌어 주어야하는 것이 부모로써의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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