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적으로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 않고 집에 굴러 다니던 타블렛 넥서스에 카톡이나 페북 깔아 들여다 봤는데, 언제부터인지 저 놈의 넥서스가 맛이 가, 볼 게 없어 책을 열심히 읽어대고 있다.
지난 며칠 동안 열심히 읽고 방출할 책들인데, 호네부의 리커시블은 아침에 알라딘 개인중고에 올렸더니 십분도 안 되서 팔렸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중고 판매는 생각보다 솔솔하다. 전에 읽었던 일본 미스터리 소설은 한달도 안 돼 거진 다 팔리고 이사카 고타로의 남은 날은 전부 휴가 한권 남아있다. 이사카 고타로의 반전이 매력적인 책인데,, 몰라주네, 싶다.
이제부터 읽고 난 책은 방출할 생각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읽고 괜찮은 미스터리나 sf는 가지고 있으려고 했는데, 어느 날 아들애가 자긴 미스터리쪽은 선호하지 않는다(부모영향제로)는 말을 듣고 나서는, 더 이상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무한증식하는 게 딱 하나. 책들이라.. 게다가 아들애나 딸애가 만화책 사 들이고 있어 감당이 안 되고 있다. 우리집 수납장들은 그릇이나 장식품, 옷가지들이 아니고 죄다 책들.
미미 여사의 사라진 왕국의 성을 팔려다 원서표지 때문에 주춤하고 거리고 있다. 책을 팔자니 원서표지가 여기저기 굴려다닐텐데, 일본 원서 표지를 내 준 북스피어의 성의를 봐서라도 가지고 있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하라 료의 몇 권 되지도 않는 사와자키 탐정(개인적으로 필립 말로보다 난 사와자키 탐정이 더 좋음) 시리즈는 가지고 있고 싶긴 한데, 다시 들춰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이 된다. 내 성향은 한번 읽은 책은 신간에 밀려 재독이 되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값어치 나갈 때 팔아 버릴까 하는 유혹이 자꾸 밀려 온다.
1, 리커시블 / 요네자와 호네부의 야경 단편 중 석류 읽고 열받아 이 작가 책은 다시 읽지 않으리라 맘 먹었는데, 또 인연이 닿아 읽게 되었다. 재밌지만 역시나 결말은 씁쓸하고, 호네부의 인간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
2. 직업가로의 소설가 / 자신의 소설가로서의 성공담. 하지만 하루키답게 자기 계발류의 성공담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소설가가 된 계기부터 해외 시장을 개척하게 된 경로까지의 체험담을 담담하게 쓰고 있다. 내가 하루키를 좋아하는 건 그의 안달복달하지 않는 세계관때문인 듯.
3. 봄에 나는 없었다 /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작품을 읽을 때마다 언제나 캐릭터에 대한 부재가 아쉬웠는데, 이 작품을 통해서 미스터리 소설과 순수소설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알게 해 준 작품.
미스터리 소설은 캐릭터가 두드러질 경우 사건 전개에 있어서 범인이 확연히 들어날 수 있기 때문에 캐릭터 위주로 전개 되지 않는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같은 범죄물 작가는 리플리 증후군이란 명칭을 만들어낼 정도로 확연한 캐릭터에 의거한 작품을 쓰지만 아가사는 캐릭터가 너무 약해서 이 작가의 약점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 소설로 일거에 그런 의심은 사라졌다.
4.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 / 이 책을 읽으면 다이아몬드 교수가 얼마나 한국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나는 번역자인 이주헌씨가 한국으로 바꾼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국의 예가 자주 등장하고 이 작은 책에서 인류학자인 작가가 세계를 보는 모습, 휴머니스트로서의 모습이 보여주었다. 이 책 읽기 전에 올리버 색슨의 색맹의 섬을 읽고 미국이 얼마나 태평양의 섬들을 망쳐놨는지, 색슨은 따스한 시선으로 그 섬들의 여행을 묘사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미국의 제국주의적 폭력성을 드러냈는데, 이 책도 그와 비슷한 시선으로 섬들의 사는 사람들을 묘사 한다.
5.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 하인리히의 장점은 정말 몰입이 잘 되고 잘 읽힌다. 이 책은 마션의 오리지널 같음. 역자 후기를 읽으면 이 책은 90년대 중반에 은하수를 넘어서란 제목으로으로 출판되었다고 하는데, 아작에서 나온 sf 소설 타인들 속에서는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 이란 제목이 아닌 에전에 출간된 이름으로 나온다. 문체도 그렇고 48년도 작품 같지 않다. 마션 만큼은 아니지만 21세기에도 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품.
6. 당신은 언제나 옳다 / 이 작가의 가치관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제목의 당신이란 표현이 재밌다. 독자의 입장에선 작가인 바탈리가 언제나 옳고 바탈리의 입장에선 상대방(독자)이 언제나 옳다. 읽다보면 절로 이 생각이 들어 이중적인 표현인가 하고 고개가 가우뚱 거린다.
7.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 / 오츠이치가 미쳤나 할 정도로 엄청 순화된 작품이다. 이 작가가 이런 작품도 쓸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잔인한 상상력이 한단계가 아닌 여러단계를 낮춘 학원 미스터리물. 하루도 안 되서 다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