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의 의심도 없는 진화이야기의 제목을 잠깐 빌리자면, 나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리고 신과 관련된 기적조차도. 신의 존재를 믿지 않으면 그걸로 됐지? 오히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런 류의 과학책을 신간이 나올 때마다 사서 읽어대는 것은 마음 속 어딘가에 신의 존재 부정에 대한 근거가 약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반문 할지도 모르겠다. 하핫, 정말 그런 맘이 들어서일까? 아니다.  

내가 이런 류의 과학책을 열심히 주구장창 읽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신이 존재하지 않는 정확한 근거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적 증명 예를 들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진화 그리고 또 하나는 우주의 기원 흔히 말해 빅뱅이론이다. 진화는 더 이상 론을 갖다 부치지 않는다.  더 이상 theory가 아니기 때문이다. (고)생물학자들에 의해, 혹은 여타 분야의 과학자들에 의해 진화는 화석, 지구의 나이, 종의 지리적 적응 등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다윈의 놀라운 관찰력과 발견 그리고 추리력은 우리 시대를 더 이상 신의 시대가 아닌 과학의 시대로 안내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미래의 어느 날, 빅뱅 이론이 아닌, 우주의 기원을 빅뱅으로 정의 내릴 것이다. 신이 창조한 우주가 아닌, 어느 한 순간  폭발이 일어나면서 뜨거웠던 우주가 서서히 식어 핵폭발이 일어나 가벼운 원자로 별과 항성이 만들어진, 지금의 우주 모습 말이다. 현재도 수 십년전 허블이 망원경으로 발견한 것처럼 우주는 평창하고 있고, WMAP위성은 우주초기의 모습인 우주배경복사를 빅뱅의 증거 사진으로 찍어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우리딸이 나한테 엄마, 지구의 나이는 몇살이야? 하고 묻길래 50억살정도 된다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재차 우주의 나이는 ? 정확히 137억살이래? 왜 ?  

아이에게 우주와 지구의 나이를 알려주면서 내심 오홋, 우리딸이 이런 생각도 다 하네! 싶어서 기특하다고 생각하는 찰나, 딸아이가 고개를 가우뚱거리며 엄마, 지금이 이천년인데 어떻게 지구의 나이가 그렇게 많을 수 있냐?고 반문하였다. 물론 나는 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이천년밖에 안되고 우리의 단기력이 받아들이지 않았는가에 설명할 수 밖에 없었다. 아이에게 세계가 점차 열려지면서 거대화 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아시아권도 서양의 종교와 시간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이는 나이가 어려 내 말을 이해할 수 없는지, 고개만 연신 꺄웃거리고 말았다. 흐흐 어느 날엔가 나이가 차면 나의 설명을 이해할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읽고 있는 스티븐 호킹의 <위대한 설계>는 신의 존재 부정뿐만 아니라 철학의 존재 또한 대 놓고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다. 호킹은 제 1장의 첫 페이지에 놀라울 정도로 단호하게 철학은 죽었다, 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적의감이 잔뜩 배어있는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도 모자라, 철학 또한 죽었다,라는 단언은 도발적이다. 과거서부터 철학을 비꼬는 과학자들이야 뭐 한 두명이었지만, 호킹의 철학 부정은 심상치 않다.

앨런 소칼이 <지적 사기>란 글을 통해 프랑스 철학의 비실제적인고 난해한 사유를 사기라고 지적했고 파인만은 그의 저서를 통해 철학을 개무시했으며(아이러니컬하게 그의 아들이 MIT 대학 재학중에 철학을 선택해서 그를 실망시킬 정도로 그는 언어와 사물의 명쾌하고 실제적인 접근법을 선호했다), 리처드 도킨스는 현대철학은 무의미한 말들의 잔치라고 폄하했다. 

나는 호킹의 단호한 철학은 죽었다,라는 말에 동의하는 편이다. 철학이 기껏 인류에 기여한 것이라고는 두통만 안겨주었으니 말이다. 물론 과학도 사유를 필요로 한다. 철학과 과학의 사유가 다른 것은 과학의 사유는 수학이 증명해 주고 그 수학적 증명은 실제적인 테크놀로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이 아니라 광양자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100년이 지난 이론이 뭐 어쨌다고?라고 물으면, 그 이론을 토대로 오늘 날 우리가 하루 한날 한시도 손에서 떼지 않는 휴대폰이 탄생하였다라고 말 할 것이다.   

철학은 사유와 글로 존재할 뿐 더 이상 그 어떤 생산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으며, 아마 그런 이유로 오늘 날 과학자들의 공격 대상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과 인문학의 죽음은 어쩌면 과학이 빚어낸 결과일지도.   

스노우는 1959년에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어떤 적대적인 두 문화에 대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그는 한쪽 극에는 문화적 지식인이 그리고 다른 한쪽 극에는 과학자, 특히 그 대표적 인물로 물리학자가 있다. 그리고 이 양자의 사이는 몰이해, 때로는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는) 적의와 혐오로 틈이 크게 갈라지고 있다(15p)라며 두 문화 사이의 간극에 대해 한탄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지금은? 안타깝게도 스노우의 지적 이후 반세기가 지난 오늘 날에도 두 문화 사이의 간극은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한쪽은 학문의 전당인 대학내에서조차 인문학의 죽음이라는 말이 떠돌정도로 정신적 황폐가 만연해지고 있고, 실생활의 테크놀로지를 제공한 과학은 생활의 편리와 재앙(핵폭발이나 제조공장의 자동화로 인한 인력감축같은)사이에서 왔다갔다하고 있지만 과학적 세계은 알게모르게 우리 세계를 휘어잡고 있다. 

한때 나는 스노우의 지적처럼 인문학의 편에 서서 세익스피어, 괴테등은 알았어도 20세기 과학사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막스 플랑크나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 보어같은 과학자들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과학은 나에게 너무 먼 당신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서적들을 읽으면서 그들의 과학적 사유가 철학자들의 고상한 사유 못지 않는 깊이와 그 무엇보다도 언어의 명쾌한 사용법과 중심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21세기에 우리가 원하고 사유는 과학적 사고 방식이다. 호킹의 철학은 죽었다,라는 말의 상징은 난해하고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의 향연이 이제는 끝났다,라는 의미일 것이다. 철학 혹은 인문학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하지 않을까.  인간의 가치와 세상의 만물을 끊임없이 물었던 본연의 모습으로 말이다. 철학도 이젠 과학적 증명을 바탕으로 사유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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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1 22: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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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2 09: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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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2 09: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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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2 09: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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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2 09: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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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2 09: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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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2 10: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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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10-22 11:13   좋아요 0 | URL
아휴. 전 이글을 읽는데 식은땀이. 만약 먼 훗날 제 딸아이가(그러니까 만약에 딸이 생긴다면) 제게 지구의 나이를 물어온다면 저는 대답해줄 수 없겠더라구요. 우주의 나이도 마찬가지. 그리고 왜 그런지 또한 아무것도 설명해줄 수 없겠더라구요. 아마도 저는 '아빠한테 물어보렴' 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거에요.

그래서 이 페이퍼 별찜했어요. 언젠가 먼훗날 이 페이퍼를 다시 뒤적여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기억의집 2010-10-22 19:01   좋아요 0 | URL
방금 다락방님 서재에 갔다왔는데.... 덧글 중에 밀레니엄 반값 한다는말에 지금 헉,거리고 있어요. 이걸 질러 말어! 남대문 시장에서처럼 싸다싸다 이렇게 외치는데 이 유혹을 어떻게 넘길까요!

저도 예전에 모르는 것 있으면 아빠한테 물어봐, 이랬는데 지금은 제가 공부를 해요. 제가 이 나이에 과학 공부를 할 줄 몰랐어요. 흑흑. 근데 알면 알수록 재밌고 아이들한테 알려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