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황금가지와 샘터사에서 레이 브래드버리의 작품들이 드문드문 나와 그의 작품에 대한 해갈을 어느 정도 촉촉히 적셔주고 있기는 하지만, 브래드버리의 명성에 비해 우리나라에 소개된 그의 작품 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 예전엔 고작 레이 브래드버리의 작품의 맛을 느낄려면 SF 단편집에서나 가능했으니, 뭐. 수많은 단편들에 끼여있는 작품이라 감질맛도 그런 감질맛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레이 브레드버리의 작품을 좋아한다. 그의 단편들이 들어있는 작품이라면 보는 족족히 다 수집할 정도로. 특히나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첫 단편 기다리는 사람들의 맨 마지막 문장에 그러니깐, "아아, 그 북맨들이 자기가 암송하는 고전을 같이 이야기하는 부분 말이지?" 이 응답의 호기심때문에 나의 <화씨451> 애달픈 갈망과 갈증은 정말 장난 아니었다. 오죽 했으면 원서까지 사 들고 되 먹지도 않은 영어 수준으로 그의 작품을 읽어낼을까! 나중엔 도서관에 가서 번역서의 도움을 왕창 받았긴 했지만.  

지금같은 젊은 감성의 세대들에게는 이야기가 낯익은, 혹은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그의 시대를 감안하면, 비록 그의 작품이 테크닉적으로 뛰어나고도 할 수 없지만, 그의 단편적 상상력은 시적일만큼 풋풋하고 시대를 초월할만큼 진보적이다(결말 특유의 아이러니와 비틀기를 잘 했다고 해야하나). 여하튼 나는 그가 그의 이야기를 비틀든, 아이러닉하게 결말을 내든, 시적이든, 아마츄어적이든간에, 비스릴적이든 간에(읽어보시면 알겠지만, 그는 심리적 스릴을 참 못 담아낸다는 생각이 화씨 452를 읽으면서 내내 느낄 수 있다), 그 특유의 느긋함을 좋아한다. 

그래서 한권 두권 그의 작품을 구입해 읽었는데, 정작 내가 가지고 있는 책 중에서 레이 브래드버리의 작품이라는 것을 몰랐다가 나중에 안 작품이 있다. 그게 바로 이 알라딘에는 겉표지 이미지조차 없는 <살아있는 공룡>이라는 작품이다. 꽤 오래전에 구입한 작품인데, 그 때만 해도 나는 솔직히 레이 브래드버리라는 작가를 알지 못했다. 게다가 이 책 작가명에는 레이 브래.트.베.리라고 써 있길래 브래드버리와 연결시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냥 공룡이야기가 나오고 그림이 그려져 있길래 공룡을 좋아하는 작가의 단편 모음집이라고만 생각했다. 무심도 하여라.   

<로스트 윌드>를 만든 감독 윌리스 오브라이언에게 헌사한, 이 작품은 레이 브래드버리의 오랜 친구인 레이 해리하우젠이 브래드버리의 공룡에 관한 단편집을 묶어 정리한 책이다. 서문에서  두 사람은 그들 어린 시절 1925년에 개봉된 <Lost world>와 그 후에 개봉된 영화 <킹콩>에 대한 환희와 추억을 이야기한다. 지금 보면 별 거 아닌 조잡한 영화이지만, 이 두 사람에게 그 영화의 어린 시절의 황금기를 불러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그들은 공룡에 매료되어 Sf 연맹의 회합석상에서 처음 만나 오랜 친료를 맺게 되었DMAU. 그들은 오랜 동안  그 이야기에 매료되어 한 사람은 SF 작가가 또 한사람 해리하우젠은 영화의 길을 선택한다. 브래드버리가 세계적인 작가가 되는 것에 반에, 해리하우젠의 재능은 그저그랬던 것 같다.   

이 작품에는 <공룡이외에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천둥소리>,<봐요! 마음 좋은, 그러나 변덕스러운 공룡들을!>, <무적신호>, <만약 내가,' 공룡은 죽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그리고 <티라노사우로스 렉스>라는 6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사실 이 책 별 볼 일 없다. 작가의 이름이 레이 브래트베리라고 쓴 것만 봐도 알겠지만, 번역 엉망, 번역 글을 다듬는 솜씨 또한 엉망. 조잡하기 이를 데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번역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는 편인데, 왜냐하면 전체적으로 읽고 나면 대강 무슨 내용인지 잡을 수 있기에. 하지만 이 책은 읽고 나서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른다. 웃긴 것은 여기에 수록된 <천둥소리>를 읽고 무슨 내용인지 갈피를 못 잡았는데, 나중에 다른 단편집에서 수록된 것을 읽고 이해할 정도.

무엇보다 이 단편집에서 특이할 만한 사항은 레이 브래드버리의 글과 함께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데이빗 위즈너의 초기 작품이 말이다. 네명의 일러스트레이터가 참가해 각각의 단편에 삽화를 수록했는데, 그 중에<공룡 이외에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에서 위즈너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흐흐 이런 행운이. 호박이 넝쿨째 들어온 것도 모르고 말이야.  

최근에 위즈너의 초기작품인<주사위 던지기, 2004>가 출간되었는데, <살아있는 공룡>이 우리나라에 1994년에 나왔으니깐, 휠씬 더 후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사위 던지기>가 2004년 작품이니깐 공룡은 그보다 10년도 더 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위즈너의 초기 일러스트는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일단, 

 

 

 

현재의 일러스트보다 <주사위던지기>,<자유낙하>나 <1999,6,29>과 흡사하다. 거칠고 세련되지 못하며 정리되지 못한 시절의 일러스트. 아마 그가 자신의 라인의 세밀함을 가지게 된 것이 요즘 아닌가 싶다. 이 작품에 수록된 일러스트는 흑백이이기에 좀 더 어둡고 위즈너의 색감각을 볼 수 없지만 여하튼 유명한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의 초기 일러스트를 보는 것, 기분이 묘하다. 글이든 그림이든 꾸준히 쓰거나 그린다면 자신만의 세련됨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가능성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위즈너의 현재작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초기작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라인과 색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세 사람의 일러스트도 나름 괜찮은데, 현재 세계적으로 알려진 사람은 데이빗 위즈너 정도. 하지만 다른 작가들도 나름 그 분야에서는 유명한 전문가들인 것 같다. 이 책은 그냥 브래드버리의 보기 힘든 단편집이 수록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위즈너의 몇 일러스트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아주 만족할 수 밖에 없는 작품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0-09-29 13:58   좋아요 0 | URL
글이든 그림이든 꾸준히 쓰거나 그린다면 자신만의 세련됨을 가질 수 있는 것....
아~~저 이 말에 용기와 의욕이 불끈불끈해요.
ㅎㅎ나이는 상관없는거죠?

기억의집 2010-09-30 09:58   좋아요 0 | URL
저도 이런 사람들 보고 의욕과 정열을 불 사르는데요^^
문제는 며칠 안 간다는데 있지만요.

박완서님도 불혹에 등단했는데요. 뭐.
우리도 그렇게 해보자고요^^

2010-10-01 0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5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