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우리집은 가족여행같은 거 해 본적이 없거든요. 여름방학에도 설 연휴 때도, 아무것도 안 했어요. 크리스마스에 케이크를 먹는다는 것도 중학새이 돼서야 알았고, 생일은 해마다 축하 받는 날이라는 것도 기시다 씨랑 사귀면서 알았어요."

 나는 되도록이면 원망 섞인 말투가 되지 않도록 답담하게 말했다. 사실 그다지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그 집은 그 집'이라던 아빠 말이 맞는 말이다. 나는 가족 행사도 기념일도 없는 집에 태어난 것 뿐이다. 다른 가족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가족다운 모습을 갖추지 못한 가정이었을 뿐이다.(306p)

 
남편이 술 한잔 걸치고 들어오면 언제나 하는 말이 있다. 쥐뿔도 없는 자기와 결혼해 줘서 고맙다, 애들 잘 낳아줘서 고맙다, 우리 둘이 결혼 잘 한거 같다 등등 맨날 술 마시고 하는 레파토리인지라, 뭐 대충 흘려듣는데 어제는 저 말말고도 기념일을 안 챙겨서 고맙다,라는 말도 덧부쳐졌다. 

내 웃겨서~~~  속으로 웃어 넘기며, 잠이나 자셔! 라고 말하고 나도 눕는데,

애아빠 말이 다른 직원부인들은 무슨 무슨 기념일이라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고, 그래서 편하다고 몇마디 블라블라블라하더니 금새 잠이 들었다. 코까지 골면서.

며칠 전 그러니깐 3월 28일이 우리 결혼기념일에도 불구하고 맨숭맨숭 있다가 저녁에 잠깐 애들 데리고 낙지집 가서 주꾸미볶음 먹은 것으로 기념일을 대신했는데, 그 말을 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더라도 나는 아이들이나 애아빠생일같은 기념일은 챙겨도 나와 관련된 기념일은 잘 챙기지 않는다. 내 생일때도 그냥 넘기기 일수다. 애아빠가 십만원의 돈봉투를 주긴 하지만 생일케이크 없이 넘어가서 아이들이 엄마생일인 줄 모르고 넘길 때도 많았다. 그러니깐 요는 난 생일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기념일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아, 그래서 우리 큰애 입학식때 큰 실수했다. 사진기를 가지고 가지 않아 우리 큰애입학사진이 없다는 것. 가족들에게 욕바가지로 먹었다). 

의례나 의식을 싫어하는 성격적인 것도 없지 않지만, 솔직히 우리 부모님은 제사는 빠짐 없이 지낼지언정, 내 생일은 한번도 챙겨준 적이 없다. 어쩌다가 미역국이나 얻어먹으면 다행이지만, 선물이라든지 생일케이크에 촛불 켜고 오손도손 생일 축하합니다~~ 같은 가족들의 합창은 언강생심이었다. 

부모님의 불화로 화목한 가족은 고사하고 싸움 안하는 날을 보내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던 청소년시절이었으니깐....하기사 뭐, 우리 또래가 그렇게 물질적으로 풍족한 세대가 아니었기에, 내 나이 또래들은 자신의 생일이 언제인지 조차 모르는 무심한 시절을 보내지 않았을까나. 요즘 아이들처럼 자신의 생일을 손꼽아 기다리며 무슨 생일선물 받을까,로 행복한 고민을 하는 그런 아이들이 몇 명이나 있었을까 싶다.  

나는 그런 뼛 속까지 무심한 시절을 보내온 탓에, 기념일에 대한 특별한 감각이 없다. 생일이면 생일인가 보다, 결혼기념일이면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할 뿐 여느 날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정한 날을 잡아 기념한다는 것이 영 어색하고 남부끄러웠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그런 대접을 받지 못해서 나이 들어 그런 기념일을 챙긴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저 윤미네집이라는 책에 대해 느낀 위화감은 말도 못했다. 남들은 다 좋다고, 절판이 되어 수집가들에게 로망의 된 책이라는데, 휘모리님의 포토 리뷰를 찬찬히 보면서 사진 속의 주인공의 기념일에 찍은 행복한 미소가 왜 그리 받아들이기 힘든지. 그래서 휘모리님께도 잘 사는가보다,라고 덧글을 달았을 정도다. 저 시대에 저렇게 산다는 것이 부럽지 않다면 그건 거짓일 것이다.
 

그렇다고 나의 무신경했던 부모님을 원망하는 것은 아니다. 그 땐 정말 살기 힘들었고 하루하루가 지뢰와 가시밭길이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내 생일 한번 안 챙겨준 부모를 원망하거나 아쉽다는 것이 아니다. 저 8일째매미의 한 문장처럼 그 집은 그집일 뿐이다.  그냥 난 인생을 담담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이미 터득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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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4-06 16:39   좋아요 0 | URL
연애때도 그렇지만 서로가 정말 원해서 하는 기념일은 참 좋은데, 한쪽이라도 의무감에 또는 형식적으로 하게되면 참 어려워지는것 같습니다. 평균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기념일을 좋아하죠. 그런데 좋아한다는게 받는 기념일만이 아닌 주는 기념일,함께하는 기념일도 좋아해야할것 같습니다. 여튼 기념일 안 챙기다고 사랑까지 없는걸 아닐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남자라 그런지 모르겠지만요;ㅋ 그 집은 그 집 일 뿐...마음에 드네요.

기억의집 2010-04-07 17:26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생각으로 남편한테 기념일 안 챙겨준다고 타박은 하지 않는데,
제 생일 때 늦게 들어오는 거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니깐
회식하고 들어오더라구요.
이제 가만 안 둘 거에요.^^

희망으로 2010-04-07 16:56   좋아요 0 | URL
기념일이란게 뭔가 대단한 선물 때문이 아니라 의미 있는 날을 기억하자는 거와 마음을 주고 받았으면 하는 거죠. 그런데 이것도 점점 나이듦에 따라 안 챙기게 되요. 귀찮아서.....이러면 안되는데^^

기억의집 2010-04-07 17:28   좋아요 0 | URL
희망님, 그러면 안되더라구요. 아이들한테는 몰라도 남편한테는 기념일 챙겨야해요. 전 그런데 별로 신경을 안 썼더니 애아빠는 진짜 생일에도 무심해요. 나이 들면 남편 밖에 더 있겠어요. 챙겨줄 사람이....^^ 지금부터 세뇌시킬려고요^^ 그러고 보면 우리 참 건전한 아줌마들인데...것도 몰라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