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반 친구들이 종교활동을 이유로 매주 수요일 오후 각자 자기 종파의 교회로 가고 난 다음, 담임선생님과 함께 세익스피어를 읽은 기분은 어떨까?  미뤄 짐작해 보건데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닐 것이다. 어른인 나도 세익스피어의 작품은 축약본이나 영화로 보았지 완독을 한 작품이 없다. 하물며 어린 맘에 진득히 앉아서 세익스피어라니(이 소년에게 축복을)~~. 여하튼 이 책의 주인공 홀링 후드후드은 선택권자가 아닌지라 처음엔 지.루.한 세익스피어 작품이나 읽으면서 수요일을 보낼 생각에 떨떠름했다가 점차 세익스피어의 매력에 흠뻑 빠진다(뭐 이야기가 다 그렇지 뭐!)

한 소년의 성장을 다룬, 얼핏 전체적인 줄거리 덩어리는 단순해 보이는데 이 책의 저자 게리 슈미트는 소년의 성장의 배경속에 숨은 그림 찾기 마냥 미국의 68년을 담고 있다. 베트남 전쟁으로 야기된 주인공 소년 홀링의 골수 공화당 지지자인 아버지와 민주당 바비 케네디를 지지하는 누나와의 정치적 대립과 분열은 68년 그해 미국에서 일어났던 좌/우 세력의 인종적, 정치적 분열을 그려내고 있으면 마틴 루터 킹, 바비 케네디의 암살이 당대를 살았던 어린 세대들에게 어떻게 비추고 있는지를 탁월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노골적으로 정치적이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책은 정치적이지 않다. 60,70년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처럼 작가의 정치적인 언급은 없다. 단지 우리는 홀링의 시선으로 잠깐 잠깐씩 미국의 68년의 정치적 분열을 들여다 볼 뿐이다. 그것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시대적 사건의 언급으로만 기억될 뿐이어서 어린 독자들은 놓치긴 쉬울 정도다. 작가의 의도가 정치적 이든 아니든 간에, 슈미트는 이 한권의 작품에 어느 정도 미국의 1968년의 숨은 역사 코드를 잡아내는데 성공했다라고 말하고 싶다.  

미국의 1968년은 미국 정치역사에 있어서 거대한 소용돌이가 몰아친 해였다. 마틴 루터 킹과 바비 케네디의 암살로 촉발된 정치적 분열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때였고 그 여파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과거의 콜롬비아 대학생들의 시위 장면에서 알 수 있다. 작가는 콜롬비아 대학의 시위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진 않지만, 홀링의 누나가 콜롬비아 대학을 목표로 하고 있고 딸이 시위의 정점인 대학으로 간다는 말에 아버지는 공산주의 운운하며 반대하는 장면은 당시 미국의 기성세대들이 성난 젊은 그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만이다. 작가는 더 이상의 진지한 언급은 회피한다. 그래서 독자는 슈미트가 제시한 한 덩어리의 줄거리에 집착하게 된다. 수요일 오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선생님과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의 보호하에 있어야하는 소년과의 관계와 청소년의 풋사랑과 개인적인 관계들에 얽힌 에피소드들 말이다. 소년의 시선 이상으로 개입하지도 않고 객관적으로 미국의 68을 보려고 하고 있다. 그걸 자신의 정치적 주관을 배제한 객관적이다라고 평가해야할지 아니면 비겁이라고 해야할지 지금 당장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지만, 독자로 하여금 이 책을 읽고 나서 미국의 68년 정치 상황을 찾아보게금 만들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또 하나, 나는 미국 작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에서 팝문화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언제나 눈여겨 보는데, 이 책 또한 당대에 유행했던 음악을 통해 시대의 컨텐츠를 담고 있다. 우리 문학은 적극적으로 대중문화를 한 시대의 시대배경으로 삼지 않지만, 미국 작가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대중문화중에서 팝뮤직을 스리슬쩍 끼워 놓으며 시대의 한 배경으로 잘 써 먹는다. 

그 날이 누나가 저녁을 먹으러 아래층에 내려운 마지막 날이었다. 그 뒤로 누나는 밤마다 접시를 방으로 들고 가서 비틀즈와 그들의 노란 잠수함과 함께 혼자서 저녁을 먹었다.(317p) 

그 소식을 들은 뒤 누나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 버렸다. '엘레나 립'를 부르는 비틀즈 판을 올려 놓고 그 노래를 틀고, 틀고. 또 틀었다.(358p)

이 책에선 60년대 비틀즈의 라이벌이라고 운운했도 했던 몽키스의 음악도 흐른다. 매번 미국 문학을 읽으면서 가장 부러운 것이 있다면 바로 그들의 팝음악이라는 문화적 유산이다. 싼티나고 경박스럽고 유행음악일 뿐이 팝뮤직을 소설 한 자락에 집어 넣었을 뿐인데, 뭐 그리 부러우냐고?  

미국은 수 많은 뮤지션들이 도전하는 거대 시장이고 우리와 달리 음악이 그 시대와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비틀즈는 6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구룹이고 만약 한 소설가가 자신의 작품에 비틀즈의 음악을 끼워 놓았다면, 작가가 제시하는 작품의 배경이 미국의 60년대쯤일 것이라고 대번에 알 수 있게금 만드는 대중적인 아이콘이 되는 것이다. 슈미트는 이 작품에서 정치적 분열의 저편 너머 60년대 미국인들의 일상이 어떠한지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에게 없는 문화적 배경이고 코드인인 셈이다.  

미국은 빌보드라는 수 십년된 음악 차트가 있고 그 빌보드를 통해 시대의 유행 흐름을 어느 정도 꿸 수 있으며 그 과거의 어느 시점에 미국의 평균 대중이 무슨 노래를 듣고 좋아했다는 기록인 셈이다. 놀라운 대중 문화 유산 아닌가. 난 우리나라의 68년에 무슨 노래가 히트를 쳤고 어떤 곡이 사람들 사이에 유행했는지 모른다. 심지어 30년전 부모 세대 음악조차 모른다. 음악 통계를 되는 장수 잡지도 없고 그깟, 삼류음악이라는 개념이 크기 때문이다. 그들의 전통 보존이라는 말로 그들을 추켜세우고 싶지는 않다. 단지 고급과 저급을 나눠가며 보존의 기준을 내세우는 게 아니고 자연스레 보존되고 유지되는 그런 문화 컨텐츠가 있다는 것이 부러울 뿐이다. 비틀즈가 위대해서? 아니다. 비틀즈 뿐만 아니라 다른 뮤지션 또한 미국의 대중음악을 대표하며 어느 정도 영속성을 가지고 있다. 과거의 음악이 오늘 날까지도 라디오에서 전파를 타면서 음악은 후세대에도 되풀이 된다.  

과거 세대와 후 세대의 감성을 연결해 주는 역활을 팝뮤직이 하고 있으며 작가들도 그 끈을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작품에 노래가 흐른다는 것만으로, 아니 그 팝음악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독자는 작품의 시대 배경을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더한 애정을 가지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도 이제 2009년에는 아브라카다브라가 히트한 해,라고 우리 자식들에게 물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덧 :  번역가들이 노래 제목을 꼭 한글로 번역하는 이유가 뭘까? 노래 원제는 영어로 놔두어야 하는 거 아닌가! 팝송제목은 사실 고유명사나 마찬가지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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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으로 2010-01-05 19:20   좋아요 0 | URL
아동서에서 지나치게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은근히 깔고 이야기를 풀어낸 책들이 전 좋더라구요. 그래야 애들도 부담없이 읽는데도 좋고요/ 노래 제목 뿐 아니라 가끔 뭐 이런거까지 번역을 하나 싶을 때도 있어요. 그걸 독자에 대한 친절이라 생각하는건지...

기억의집 2010-01-06 10:46   좋아요 0 | URL
미국 청소년문학 읽으면 이런 게 참 좋아요. 작가가 분명한 정치색이 있는데 작품에는 그런 내색을 안 하더라구요. 작년 말에 네 멋대로 써라라는 데릭 젠슨의 글 읽으면서 느꼈어요. 이 양반 완전 좌파면서 강의는 최대한 정치색을 배제하더라구요. 슈미트도 그래요. 작가의 정치적 성향은 민주당인 거 같은데... 최대 배제하더라구요. 배울 점이 많은 거 같은. 이 책 리뷰로 쓸려고 했는데 작년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

전 번역가들에게 물어보고 싶더라구요. 뭘 팝송원제까지 번역해주냐고? 그 음악 듣고 싶어 죽을 똥 싸면서 찾는 독자를 생각하면 그건 예의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솔직히 팝송제목 자체가 고유명사 아닌가요?

saint236 2010-01-06 10:17   좋아요 0 | URL
이제서야 인사를 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기억의집 2010-01-06 10:49   좋아요 0 | URL
세인트님, 새해 복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꾸벅)
그러지 않아도 세인트님께 새해 인사 드릴까말까 하다가 참았네요.
올해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