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어른이 된다는 것

실제 <기억의 빈자리>라는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원제인 <Jumping the scratch>와 비교할 때 고개를 꺄우뚱거리게 만들었다. 순간적으로 <기억의 빈자리>라는 제목은 치매를 연상시키며 청소년의 알츠하이머질환에 관한 책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소년의 끔직한 체험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삶을 동화작가와 친구의 도움으로 치유해 나간다는 이야기인데, 소년이 당한 그 끔찍한 기억이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극복되어 결과적으로는 긍정적인 빈자리로 남을 수 있다는 함축적인 의미의 제목인 것 같다.    

과연 한 개인의 고통스럽고 끔찍한 기억이 극복된다 한들 텅비어 버린 공간으로 남겨질 수 있을까.

영어를 그렇게 잘 하는 편이 아니라서 뭐라 왈가왈부할 형편은 아니지만, 번역자가 아무래도 제목을 뽑을 때 스크래치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싶다. 어린 시절에 멋 모르고 당한 끔찍한 기억에서 해방된다 하더라도 실제 일어난 일은 분명 과거의 한 시점에 분명 존재했던 일이며, 그 사건이 한 아이의 삶을 흔들 정도로 무기력하게 변화시켰다면 그 사건은 결코 기억의 빈자리로 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잊고 싶은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박박 긁어(스크래치)낸다하더라도 긁힌 자국만 있을 뿐이지 오리지널 기억은 남아있으며, 오히려 오리지널 기억 위에 긁힌 자국만 너덜너덜하게 남아있기 마련이다. 스크래치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극복과 상처라는 두 단어의 모순의 의미가 상충하면서도 한 소년의 고통스러운 체험의 기억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스크래치된 기억을 뛰어넘는다(극복된) 하더라도 아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이런 박박 긁어내고 싶은 기억이 있다. 국민학교 2학년 요맘때 쯤 가을소풍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어찌하다가 난 담임선생님과 아이들에게 뒤쳐져 다른 반 선생님과 아이들의 뒤따라가게 되었다. 다른 반 아이들의 뒤를 따라 가다가 집으로 갈 수 있는 아는 길이 나와, 나는 곧장 집으로 갔었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라 세세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선생님이 걱정할 것이라는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게 여느 때처럼 등교를 했다. 수업 시간이 시작되기 전인지 아니면 내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일어난 일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담임 선생님이 갑자기 내 이름을 불렀고, 불려나가 교단 앞에서 아이들을 등 지고 서 있는데, 선생님이 소풍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가 옆으로 샜다고  얼마나 찾았는지 아느냐고 다그쳐 물었던 거 같다. 담임은 화를 내면서도 어제의 노여움이 안 풀렸는지 순간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내 얼굴에 따귀를 때리는 것이었다. 그것도 한 두대가 아니고 수 차례나.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그 때 얼굴이 심하게 붓고 한쪽은 멍까지 들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때 선생이 얼굴에 따귀를 때릴 때의 아픔보다 아이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따귀를 맞았다는 것에 더 굴욕적이었고 수치스러웠다. 아픔따윈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 맞고 나서 내 자리로  돌아갈 때 내 얼굴을 쳐다 볼 아이들을 생각하면 아픔따윈 진짜 아무것도 아니었다. 고개를 들지 못한채 자리로 돌아와 앉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시절엔 왕따라는 것은 없었지만, 선생인 이렇게 나를 미워하는데 아이들이 전처럼 나랑 놀아줄까, 하는 걱정을 제일 먼저 했었다.

더 이상 앞뒤의 장면은 기억나지 않지만, 3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아이들 앞에서 수 차례의 따귀를 맞고 있는 모습은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 땐 유치원같은 아이를 맡을만한 기관이 흔하지 않았던 시대여서 10월생인 7살 밖에 되지 않은 나를 우격다짐으로 언니와 함께 학교 들여보내,  2학년이라고 해봤자 겨우 8살밖에 되지 않았던 터라 그 시절에 나는 아주 어리버리하고 맹한 아이였다. 뭐하나 똑바로 해내지 못했고 교과과목도 제대로 인지 하지 못했었던 아주 맹한 아이. 선생의 입장에서도 나는 그리 사랑스러운 존재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린 나이에도 자존심은 있었다. 담임한테 수 차례의 따귀를 맞아 얼굴이 부었음에도 엄마한테는 말하지 않았다. (아마 같은 학년의 언니도 내가 따귀 맞았다는 것을 소문으로 알았을텐데, 언니도 엄마한테 말하지 않았다) 그냥 어디 부딪혔다고 둘러대었던 것 같다. 일이 커질까봐 엄마한테 말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정말 어린 나에게 뭐가 지키고 싶은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의 츠노하즈에서라는 단편중에 나온, 자신의 아버지가 젊은 여자를 선택하고 자식을 버리는 대목에서 그 소년이 한 말, 어린 나에게도 자존심은 있었다라는 문구에서 어린 시절 따귀 받은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세상 물정 모르고 선생님이라면 절대 복종했던 8살 밖에 안된 어린 나에게도 쓸데없는 자존심은 있었다.  

위의 책의 번역제목처럼 어린 시절의 그 기억이 빈 자리로 남아 있었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을, 하지만 수치스러운 그 기억은 다른 학창시절의 기억들이 다 휘발되어 사라져도 고통스럽게 남아 순간순간 떠 올릴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그거 아는가. 어린 시절에 당한 폭력은 성인이 되어 객관적으로 분석한다고 해도 제대로 잘 꿰뚫어 볼 수 없다는 것을. 몸과 정신이 성인이 되었다하더라도 그 기억의 고통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언제나 어린 시절의 나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어린 나에겐 아무 잘못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수 십년이 지난 후에도 내가 선생님 허락 없이 집으로 돌아온 것이 잘 못 해서 따귀를 맞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어린 나는 잘 못 한 것이 하나도 없다, 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우연찮게 남편에게 용기를 내서 나도 따귀를 많이 많은 적이 있다고 말했을 때 남편이 보인 반응때문이었다. 선생에 대한 분노와 경멸 섞인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되어 줄 수 없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숨기기에 급급했던 그 응어리가 풀린 것은 그저 맞고 아무 대응조차 하지 못했던 나에게 있던 것이 아니고 오히려 수차례 따귀를 때려가면서 감정의 분풀이를 한 그 선생이야말로 빌어먹을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자신조차 추스리지 못하면서 타인의 고통을 껴안고 보듬어준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괜찮은, 썩 괜찮은 어른이라면 아니 빌어먹을 어른이라도 세상의 시야도 좁고, 삶의 폭도 좁고, 사고의 깊이도 웅덩이밖에 안되는 순진한 아이들에게 스크래치를 낼 권리는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무리 스크래치 가득한 세상이라고 해도 말이다. 기껏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관계를 맺고 인연을 맺으며 만나는 어른이 몇이나 된다고, 어린 가슴에 스크래치를 박박 내는지. 그리고 설사 순간적인 스크래치를 되었다 하더라도 긁힌 자국을 문질러 주기만 하더라도 그 상처는 좀 더 얕아질 것이다.  

그 가늘고 이쁜 손으로 어린 나를  때리고도 한번도 따스한 눈빛을 준 적도 없었고 보듬어 준 적이 없이 2학년을 끝냈던 것 같다. 내가 더 그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선생이 지금도 원망스러운 것은 내가 애를 키우면서 폭력이 사랑의 매가 아닌 얼마나 감정의 분풀이인지를 알았기 때문이고 그 일이 있고 나서 투명인간으로 보냈던 내 학창시절의 무기력한 나날때문이다.

긍정적인 변화는 금세 오지 않지만 부정적인 변환는 억센 말 한마디에도, 한 대의 폭력에도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채 바꿔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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