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을 리뷰해주세요.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 - 상처에서 치유까지, 트라우마에 관한 24가지 이야기
김준기 지음 / 시그마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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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받아 들자마자 목차를 제일 먼저 확인했다. 과연 저자와의 공통분모 영화는 몇 편이나 될까 ? 아니나다를까, 거의 본 영화가 없다. 클래식무비라고 불러도 무방한 옛날 영화 3편(람보, 프레스트 검프,굿윌헌팅)!  생각해보니 애 낳고 키우면서 문화생활 중에서 가장 멀어진 분야가 영화였다. 영화는 책과 달리 붙박이 시간이 필요했고, 애들과 지지고 볶고 사는 동안, 극장까지 갈 시간도, tv에서 해 주는 영화를 2~3시간 앉아 볼 만큼의 여유를 가지고 있지 않다보니 서서히 멀어졌다. 여하튼 시대의 감각에 뒤떨어진 내가, 겉보기에 너무나 이질적이고 낯선 영화들만 나열된 이 책을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기에 선뜻 이 책을 호의적으로 잡아 읽어내기가 힘들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책에서 언급된 영화는 주가 아니고 트라우마를 설명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안 봐도 이 책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크게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언급된 영화의 예가 트라우마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 트라우마가 발생되면 한 인간의 성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트라우마가 어떻게 이해되고 치유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이해도를 더 높였다. 게다가 나 자신을 객관화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유익했던 책이라고 해야하나.  

이 책에서 정의하는 트라우마는 우리나라 식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란 전쟁, 대참사, 재난같은 일반적인 인간 경험의 범주를 넘어서는 충격적인 외상 사건을 경험한 후 그 후유증으로 발생하는 장애를 말한다(p30). 트라우마에는 전쟁이나 자연재해같은 인간경험의 범주를 넘어서는 빅트라우마와 강간이나 성폭행,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같은 스물트라우마 두 줄기로 나뉠 수 있는데, 트라우마의 종류가 크든 적든간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는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트라우마의 영향이 너무 커 자기 삶을 자포자기해 몰락한 삶을 살아가기도 하고, 그냥 스쳐 지나갈 만한 가벼운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그럭저럭 극복해가며 인생을 살아가는 것일 것이다.    

저자는 트라우마의 치유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타인의 이해와 공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거의 불쾌한 끈적이는 경험은 행복한 인생을 영위한다고 해도, 타인이 그 상황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맞장구를 쳐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이건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각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그거 개인적인 치부라 쓸가말까 많이 망설였어요. 그런데 아이가 있는 분들을 위해 꼭 써야 할 거 같아서요) 나는 흔히 말하는 성추행이라는 것을 살면서 두 번 당해봤다. 한번은 버스안에서 신체적 성추행을, 그리고 두번째는 엘리베이터라는 닫힌 공간에서 언어적 성추행을. 첫번째 경험은, 20년 전에는 버스에 사람이 너무 많아 버스안의 사람들 사이에 틈이 전혀 없던 시절이 있었다. 옴짝달짝 못하는 사람들 틈 바구니에서 여기저기 더듬고 달라붙으며 성추행을 자행하는 그 사람에게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괜한 소리를 했다가 주변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으로 오인할까봐 속수 무책으로 당한 적이 있었다. 그 때의 경험 이후 나이 마흔이 된 지금까지도, 나는 많은 버스나 지하철 타기를 거부한다. 행여 내 뒤에 누가 서 있기라도 할라치면 그 자리를 피하거나 지나칠 정도로 신경질적인 과민반응을 보인다. 두번째는 나이 지긋한, 잘 차려입은 노인네와 함께 탄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언어적 성추행이었다. 말쑥한 차림과 은은한 향수로 무장한 노인네에게서 그런 말이 나올 줄 누가 알았을까나. 차마 여기서 쓰지 못할 정도의 언어적 성추행이었다. 그 늙은이한테 언어적 성추행을 당한 이후로, 난 엘리베이터에 단 둘이 타 본적이 없거니와 놀이터나 지하철에서 나이 드신 분들이 아이 이쁘다고 귀여워하는 꼴을 보지 못 한다. 세월이 흘러도 성추행에 대한 분노는 전혀 수그러들지 않는다. 바보처럼 당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멱살잡고 한바탕 하지 그랬냐고 반문한다면 나도 그러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근데 막상 얼떨결에 당하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오그라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차라리 그 자리에서 나의 분노를 까발렸다면 지금까지 그 분노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성추행 당한 그 자리에서 달라붙은 그 새끼 발을 하이힐로 그 새끼 발등을 꽉 눌러주거나 신발 신은 발로 있는 힘껏 꽝 내리찍거나 당당하게 야이, 개새끼야 또는 쌍놈의 새끼 나이 쳐 먹어서도 그런 말이 나오냐!라고 했었으면 시원하기래도 할텐데, 당한 순간에는 머리가 하얘져 그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도 당시의 무력한 대응  때문에 분노는 더 휠휠 타 오른다. 나 또한 그 순간, 그 장면을 잊고 싶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지우개로 박박 지워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 불쾌한 장면은 기억의 어느 한 부분에 깊숙히 저장되어 지하철 성추행이니 하는 기사만 나와도 가슴두근거림과 함께 분노가 솟구쳐 오른다. 김준기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감추는 게 능사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회 여건상 까발리고 다닐 수도 없는 구조다. 트라우마에 대한 치유는 타인의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이 최선이지만, 하지만 나도 안다.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라는 걸. 타인을 이해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빅트라우마야 인간이 어쩔 수 없는 거이지만 스물트라우마의 경우 성적인 문제나 학대이므로 어떨 때는 좀 더 건전하고 건강한 사회를 꿈꿀 때가 있다. 치료나 치유같은 결과론적인 방법인 아닌 그런 일이 없는 예방적인 사회 말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먼저 영화를 통해 트라우마의 예를 들어 독자의 이해를 돕고 나중에 박스에 집어 넣어 전문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일 것이다. 이러한 케이스를 몇 권의 책에서 본 거 같은데, 책 구성은 맘에 든다. 강의도 하고 tv 출연도 하는 분인데, 학생들을 가르친다면 아주 유능한 교수가 되지 않을까 하고 잠시 공상도 해 보았다. tv에서 말하는 것보다 휠씬 더 감칠 맛 나는 글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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