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의 선물
김소연 옮김, 다니구치 지로 그림, 우쓰미 류이치로 글 / 샘터사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어릴 때는 나무가 이쁜 줄 몰랐다. 그 때는 지구 위에서 살아 숨 쉬는 모든 사물들이 그냥 그렇게 존재하나보다라고 생각했지, 특별한 존재로 나한테 다가온 적은 없었던 거 같다. 그러다 나이 들면서 어느 한 시점에서(아마 애 낳고 기르기시작하고나서부터지 아마!) 변하기 시작했다. 봄에 피는 꽃이 이뻐 기다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연립은 100세대 조금 남짓한 작은 규모의 26년 된 연립인데, 이 연립이 낡을 대로 낡아  재건축 허가가 떨어지기 얼마 남지 않는 곳이다. 증말, 징할대로 낡았다. 언니나 동생네 새 아파트 가서 놀다오면, 아이들이 제일 먼저 하는 소리가 엄마, 우리도 이모네처럼 깨끗한 아파트로 이사가자!라고 조를 정도다. 베란다는 26년전 시공 그대로고 샷시는 겨울이면 바람막이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덜커텅 거리며 비가 오면 앞 베란다는 물바다가 되어 시간마다 물을 쓸어 내려야 하는, 한마디로 낡고 후진 곳이다.  

그래도 내가 이 연립을 떠나지 못하고 6년을 넘게 사는 이유가 있다. 26년이 된 연립에서 자라는 나무들, 울창하다 못해 여름이면 정글이 되어 가지가지마다 함아름의 잎을 피우며 그늘을 만들어주는 느티나무들이 많아서이다. 베란다 앞까지 닿을 듯 무성한 나무들, 그게 그렇게 이쁠 수가 없다. 봄 되면 뒷 베란다 창문으로 자목련꽃 피는 모습은 어떻고!  벚꽃은 눈이 되어 내리고 그 눈꽃 위를 아이와 함께 걷는 기분은 천국이 따로 없다. 여름만 되면 눈 돌리는 시선마다 초록으로 가득 찬다. 애아빠나 아이들한테 스트레스 받다가도 저 나무들을 쳐다보면 스트레스도 게눈 감추듯 사라진다. 예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이런 감정은 무얼까? 게다가 아이들은 여름이면 잠자리나 매미를 잡기 위하여 잠자리채를 들고 밖으로 나가 한참동안 동네 나무들을 기웃거린다. 다른 아이들은 공부로 빼앗긴 유년 시절의 추억이 우리 아이들의 여름에는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 다니구치 지로의 <느티나무의 선물>을 그 무엇보다도 좋아한다. 이 짦은 단편속에 등장하는,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 잊지 못해 전에 살던 곳을 찾아와 느티나무를 보고 간 그 노인의 맘을 알 거 같아서이다. 이사를 가면, 나 또한 울창한 느티나무들이 그리워지겠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노인의 그 생뚱맞은 방문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매년 풍성한 나무가 주어던 풍성한 녹음의 푸르름을........엉뚱하게도 저 장면만은 내가 색을 칠한다. 머리 속에 저 나무의 잎 하나 하나에 짙은 녹색을 칠하고 햇살 근처엔 옅은 연두색을 칠하는..하얀 햇살과 저 너머 푸른 하늘색을 칠해보고......이 단편만 칼라로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얼마나 아름다울까하고 상상해 보기도 한다. 흑백의 라인으로 만 된 <느티나무의 선물>을 맘껏 색칠하고 맘도 나뭇잎 색으로 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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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9-07-04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번에 올리셨던 그 책이군요!!!!만화책인가요????
넘 멋져요!!!!!추천!!! 님의 리뷰를 읽으니 제 스트레스까지 게눈 감추듯 하는 것 같다는,,,ㅎㅎ

전 오래된 아파트에 살아요,,,사택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저희 아파트도 한 15년은 된거라 하더라구요,,그래서 재건축은 안되지만 이번에 엘레베이터를 바꿀거래요,,,그래서 한 2주 동안 10층까지 오르내려야 한다는,,,-,.-+ 님 집에 있는 느티나무 사진으로라도 보니 넘 시원한걸요!!!!

기억의집 2009-07-06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님, 주말 어떻게 보내셨어요? 전 이번 주말도 지지고 볶꼬...오늘 아침에는 엄마네 갔다오고.. 지금에서야 알라딘에 슬슬 들어왔어요. 애들이 학교가면 여유가 더 있을 줄 알았는데..것도 아닌 것 같아요. 나비님이 가족이 모두 미국에 있으면... 여유롭게 뭔가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아니었다는 말, 백배 천배 공감해요.
지금도 급식 한고 온 놈들, 뭐 차려주고..슬슬 알라딘과 예스친구들 덧글 달려고 했더니 또 배고프다고 하네요.
아~~~~~~ 저도 나비님처럼 혼자 있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