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투브 방송 변희재의 시사폭격을 꾸준히 시간 맞춰 잘 듣다가 변희재의 위안부 발언 이후, 실망해 그전만큼 잘 듣지 않는다.

변희재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본인은 팩트만을 기반으로 논문을 점검하고 팩트 체크가 우선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광복절 이후, 한 방송에서 위안부의 일본의 강제 징용이 허위 날조라고, 그 시대의 기록이 그걸 증명하고 있다는 취지로 자신의 방송 시폭에서 말했다.

그 순간, 당대의 기록물로서의 역사 증거(신문이나 역사를 기록하는 친일역사학자들의 저서)와 그 시대를 산 사람의 증언으로서의 역사 중 어느 것이 진실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중동은 예나 지금이나 친일신문이며 현실 정치의 왜곡이 심한 저널리즘 기레기들이다. 1940년대에 대한민국의 문맹률이 50프로 이상(전 국민의 반이 뭐야 90프로 넘게 글을 몰랐을 것이다)인 상황에서 조종동의 돈줄은 일본제국주의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작성함으로써 얻은 수익이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위안부나 태평양 전쟁에 끌려간 젊은 청년의강제징용의 기사가 제대로 소개되고 기사화되었던가? 우리는 그 당시의 정치 기사를 바탕으로 그 시대의 역사를 진실을 알 수 있다고 정정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지금도 조중동의 정치 왜곡 기사를 바탕으로 50년 후에도 역사의 진실을 말하는 걸 기록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십년 전인가, 친정 엄마와 위안부 관련 티비를 보는데, 그 때 친정 엄마가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외할머니가 식민지 당시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숨었던 사실 그리고 집집마다 젊은 여성이 있는 경우 땅을 파고 짚이나 풀을 덮어 숨어 있을 때 일본 순사들이 꼬챙이를 가지고 일일히 집 주변 땅을 찔렀다고 말한 외할머니의 식민지 시대의 경험을 딸에게 전했고 그 말을 들은 엄마는 나한테 말해 주었던 것이다.

그 때 역사학자들이 지금이라도 살아계신 시골 할머니들을 찾아가 저 증언들을 녹음해야 하는데,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할머니들의 일제 식민지 시대의 경험을 증언으로남겨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는 왜 경험의 역사 증언을 찾아 가지 않고 신문쪼가리나 친일 학자들의 입이나 저서들을 통해 역사를 재구성해야 하지, 그 기록물들이 그 시대를 진실을 알려주는 기록물들일까?

나는 현재의 저널리즘 기자들의 행태를 보면 과거 식민지 시대의 정치 기사 한쪼가리도 믿지 못하겠다. 제국주의 시대에 저널리즘이 아니 저널리즘 100년의 역사를 통털어 진실을 기록했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그런 기록물들을 바탕으로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이라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들과, 어느 날 위안부할머니들의 뉴스를 보다가 무심코 꺼낸 제국주의 시대의 젊은 여성들을 끌고 가기 위해 가족들은 딸을 숨겼다고 말하는 나이 든 노모의 말의 역사에서 나는 차라리 기록물로서의 역사보다 증언의 역사에 진실의 무게를 두고 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08-27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유하 이 분 퇴직하고 명예교수까지 되셨더군요. 증인들인 할머니들이 모두 죽기만 기다린다는 생각 들어요. 집님 말씀처럼 그럼 더 쉽게 증언은 사라지고 왜곡되면서 진실이 사라질까 두렵네요 ㅠㅠ

기억의집 2022-08-27 21:33   좋아요 1 | URL
앗 저도 방금 미니님 신화 리뷰 읽었어요.. 우리 나라 신화임에도 미니님 말씀대로 낯설긴 하죠!!
저는 저의 엄마가 전해 준 그 때의 느낌이나 분위기를 아직도 기억해요. 진짜 무심코 옛날 이야기 하듯이 하셨거든요. 전 그때 그런 말 처음 들어봤어요. 집에 숨길 데 있는 곳에 딸 숨기고 심지어 땅 파서 풀 덮으면 순사들이 와서 날카로운 쇠꼬챙이로 찔러 보았다는 말을요. 저런 박유하같은 애들의 역사가 찾아 다니면서 체취한 역사가 아닌 일본인들이 만든 역사를 우리가 왜 진실이라고 받아들여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진짜 … 박유하 기사 찾아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