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은 독일계 유대인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유대교리를 따르며 살지 않었다(아인슈타인 가족이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강요하지 않었다). 그가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은 1차 세계 후인데, 세계 대전 전후로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독일에서 심해졌기 때문이다.

1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1920년대 십년간의 독일은 격변의 우익 시대가 아니였을까 싶다. 극우익과 히틀러의 등장이 독일의 이십년대 역사를 점령했고 그 점령은 독일 과학계에 몸 담은 유대계 과학자들을 전부 미국으로 보내는 마력을 발휘했다.

독일의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독일의 1차 세계 대전을 지지했으며 심지어 양자역학의 문을 연 플랑크조차 자국(독일)에 대한 애국심은 대단했다. 거의 모든 과학자들은 독일의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이 없어 아인슈타인은 그 시절 고립되어 있었다. 그 누구도 그의 평화주의에 공감하지도 않었고 세계 평화라는 그의 신념은 이상적인 것이 아닌 어리석은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저 무리 속에서 아인슈타인은 끝까지 평화를 주장하는데, 이건 좀 놀랍긴 하다. 심지어 애국심을 넘어 히틀러를 추종하며 유태인 과학자들을 색출한 동료(조머펠트같은)가 있었던 상황에서도 그는 평화를 외쳤으니 말이다. 그는 굽히지 않었다. 아인슈타인의 입지는 그가 제 아무리 생존하는 위대한 과학자의 반열에 올라있었다 하더라도 독일을 떠나게 만들었을 정도로 흔들렸다.

독일이 유럽을 점령하면서 유럽의 많은 유태인 과학자들은 미국으로 건너 갔으며 미국의 대학들과 연구 기관들은 그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히틀러의 뻘짓만 아니였어도 어쩌면 실리콘벨리는 미국이 아닌 유럽에서 생겼을 수도! (물론 실리콘밸리는 미국의 자본주의속에서 태어날 수 있었던 거 맞다. 유럽의 환경에서 어려웠을 것이다)

양자역학에 관한 30,40,50년대의 책을 읽다보면 유럽에서 건너 간 과학자들이 없었다면, 오늘 날의 테크놀로지는 현재에 이뤄지지 않었을 것이다. 전쟁이 오늘의 미국을 만들었고 그 배이스에는 유럽의 과학자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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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5-25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기억의 집님 말씀처럼 이 시대 과학자들 예술가들 재력가들 등 인재들이 미국으로 모이면서 더 발전하지 않았나 싶어요. 전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은 게 아니란거에 놀랐던 기억이 나요 ~

기억의집 2022-05-25 11:26   좋아요 1 | URL
광전효과인 광자이론으로 받었죠! 아인슈타인에 관련된 책 읽어보면 진짜 천재인 것 같어요. 상대성이론은 에딩턴의 관찰로 인정 받었자만 실제로 사용은 꽤 후에 일이래요. 미국이 우주에 쏘아 올렸을때야 일반 상대성 이론의 시간 운동이 필요해서 그때서야 논문이 완전 힘을 발휘했다고 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