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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 제1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는 길,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면서 서서 오다가 갑자기 등 뒤를 누군가가 쳤다. 어찌나 세게 쳤는지 순간적으로 앞좌석에 앉아있던 사람 위로 쓰러졌다. 너무 놀라서 뒤를 보니 노숙자처럼 보이는 아저씨가 팔을 양옆으로 뻗고서 막 돌며 주위 승객들을 치고 있었다. 이 아저씨 주먹에 맞은 등이 얼얼했다. 아픔보다는 놀람이 더 컸기에 옆 칸으로 도망가고 싶었으나, 이 아저씨가 마구 난동을 피우는 탓에 이동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무서웠다. 정말. 무방비 상태로 당한 느낌, 갑자기 온몸이 떨렸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토록 작은 폭력과 난동 앞에서도 나는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가.
나는 심한 학대나 폭력 등을 직접 경험한 적이 없다. 물론 학창 시절 단체기합 같은 걸 받고 손바닥을 맞긴 했지만 엄마가 내가 잘못했을 때 파리채로 손바닥을 때린 적이 있지만, 두고두고 가슴에 담아서 상처가 될 만한 일은 없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더더욱 그런 폭력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잊고 있었다. 폭력의 무서움을, 나의 연약함을, 보잘 것 없는 내 외침을.
보살핌 속에서 곱게 자라온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충격은 이런 느낌과 비슷했다. 평온하게 그냥 평소대로 잘 지내다가 가끔씩 일상을 깨는 이런 작은 사건에도 심장이 쿵쿵 뛰고 무서워지는데, 어린 시절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환경에 노출된 소녀는 과연 어떤 상태일까. 오히려 소녀는 맞는 것도 두렵지 않고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 게 가능하기나 하단 말인가.
소녀가 스쳐 지나간 사람들-주정뱅이 아빠와 집 나간 엄마부터 역에서 만난 다방 마담, 장미 언니, 소녀를 돌봐준 식당 할머니, 유랑하며 엿을 파는 패들, 그리고 비행 청소년들까지-은 모두 하나같이 결핍이나 아픔, 폭력을 겪은 사람들이다. 아픔으로 거칠거칠해져서 언제나 세상 언저리를 헤매는 사람들이다. 이런 아픔에 대한 보상으로 더 삐딱해지거나 더 착해진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소녀는 자라지만 마음은 항상 진짜 엄마를 찾겠다는 목표 하나로 살아간다. 이름도 없이, 세상 어디 존재를 증명할 것도 없는 그 소녀에게 과연 진짜 엄마가 어딘가 있기나 한걸까.
이것은 성장 소설이 아니다.
내 등을 치고간 그 아저씨의 이름은, 뭔지 모르지만, 이름은 있겠지. 그 아저씨는 지하철 방위에 의해 끌려갔고 상수역에 내려서도 몸부림을 치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지만, 사실 그 아저씨의 이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다시는 만나지 않기만을 바랄뿐. 조용히 내 곁을 스쳐만 가길 바랄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