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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김언수의 지난 소설 <캐비넛>을 정말 재밌게 읽었다. 요즘 소설이 이렇게 재밌나 싶을 정도로, 낄낄거리면서 읽었고, 마음에 와서 박히는 구절 또한 많았다.
이를 테면,
"... 꿈을 꾸기 위해선 꿈의 재료가 필요하죠."
"어떻게 재료를 모으죠?"
"지난 일기장도 읽어보고, 앨범 사진도 곰곰히 바라보고, 동창이나 옛날 애인처럼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도 만나고, 예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찬찬히 생각도 하고 기억도 더듬어보고, 그리고 요즘엔 책도 많이 읽어요. 되도록 즐거운 상상들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행복해지죠. 그래야 꿈속에서도 행복하고 깨어나서도 행복하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새로운 소설로 나타난 그는 여전히 대단하다.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를 펼쳐나가면서도 잊지 않는 그 유머감각은 일품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소재가 죽음을 설계하는 사람들과 그에 따라서 실제 사람을 죽이는 암살자 이야기다 보니, 스릴은 넘치지만 뭔가 공감대 같은 건 덜 하다고 할까. 역시나 천명관의 소설처럼, 소설을 읽는 건지, 시나리오를 읽는 건지, 영화를 보는 건지, 드라마를 보는 건지, 그 애매모호한 경계 속에 선 기분이다. 그치만 누가 뭐래도 좋은 이야기임에는 분명하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세상이란 곳에서 나란 그저 먼지 같은 존재일 뿐이고, 누군가가. 그 누군가가 굴리는 대로, 그 속에서 치이면서 굴려나가는 게 아닐까. 해마다 유력한 언론사에서 선정하는 세상을 움직이는 100인 같은, 영향력이 큰 100인처럼. 나 같은 미약한 존재 말고. 정말로 대중의 관심을 돌리고, 돈의 흐름을 장악하고, 모든 것을 조종하는 사람들. 그런 힘과 돈과 명예를 얻고서,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지하 어딘가가 아니라, 윤기나고, 으리으리한 사무실에 앉아서 우아하게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리거나 아이폰으로 전화를 하고 있진 않을까.
며칠 전에 <애프터 라이프>란 영화를 보고, 죽는다는 게 뭔지 생각하느라 몸과 마음이 피곤하고 지쳐있었다. 사람을 시키는 대로 죽이고, 또한 그 완벽한 순간을 기획하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단 생각을 하니까, 목숨이 얼마나 보잘것 없이 꺾이는 나약한 것인지, 소름이 돋을 정도다. 결국 주인공 래생은 외롭고, 그늘진 삶을 살았지만, 그의 삶은 경우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뜻으로 마무리되었다. 래생이 어쩐지 습기가 가득찬, 햇볕 한점 없는 곳에 서 있는 고독한 킬러란 생각이 들었는데, 어쩜 이런 킬러의 모습은 흔하고도 익숙한지. 멋진 남자, 진짜 남자의 이미지가 맞아떨어진단 느낌이다. 하지만 이거 판타지일 뿐이고, 현실에서는 더 더럽고, 치사하고, 괴로운 것도 참고, 결국에는 살아남아야만 하는 것이 최고이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