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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준의 대만 여행기
현태준 글 사진 그림 / 시공사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추석 연휴에 대만으로 여행을 가볼까 싶은 생각에, 대만여행으로 웹서핑을 시작했다. 인터넷은 정말 정보의 바다라고 하지만, "나 이거 먹었고, 여기 갔었고, 이거 샀어요"가 전부인 포스트를 읽다보니, 대만에 가고 싶은 마음이 어쩐지 이상하게도, 작아지고 있었다.
그래서, 여행기를 읽으면, 다시 작아지는 마음이 커질까 싶어서, 현태준의 대만여행기를 도서관에서 빌렸다. 나는 그의 책 <뽈랄라 대행진>을 무척 재밌게 읽었다. 어쩐지 이 책은 침대나 방구석에 퍼져서, 맥주를 마시면서, 혼자 낄낄거리며 읽어야 제맛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유쾌하게 본 기억이 난다. 역시 대만여행기도 술술 읽혔고, 그의 유머감각이나 글솜씨는 여전했다.
요즘에 쏟아지는 여행기를 보면, 나만 그런지 몰라도 읽다보면, 살짝 손발이 오그라든다. 그래, 잘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훌쩍 떠나거나, 아직 여행객이 많지 않은 오지의 곳으로 떠나거나, 암튼 이래저래 각자 얘기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겠지만, 어쩐지 여행기 속에는 등장하는 사진이나 문구나 대부분, 자기가 얼마나 자유롭고, 고독하고, 멋진 여행자냐를 은근히 얘기하려고 안달이 난 것 같다. 겉으론 덤덤하게 고생한 얘기, 실수한 얘기를 하지만 그건 사실 일부분에 지나지 않고. "너는 왜 나처럼 떠나지 못하고 현실에서 괴로워하니? 쯧쯧." 이런 태도가 보인다고 할까. 역시 나는 까칠한 가보다. 그런 뉘앙스가 페이지마다 담긴 여행기를 읽다보면, 이게 무슨 여행긴지 자랑하는 자기 일기장인지. 암튼 감동이나, 나도 여기 한번 가보고 싶다가 아니라, 책을 중간에 읽다가 말고 싶다.
그런 면에서 현태준의 여행기는 정말 담백하다. 멋있는 척, 자기가 대단하다는 척을 하는 것이 아니라 20년 전 대만에서 살았던 이야기와 지금 다시 대만을 여행하는 이야기를 교차하면서, 독자들에게 대만이란 나라의 매력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잘 전달시키고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난 저자같다. 그의 이러한 '대만 사랑 마음'이 책 곳곳에 담겨서 보면서도 기분이 좋아진다. 대만관광청에서 이 책을 보면, 저자에게 공로상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대만의 대표적인 관광지를 글과 그림, 사진으로 소개하면서 세심하게 숨어있는 곳도 빼놓지 않는다. 또한 나 같은 여행객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음식 주문법이나, 메뉴판 보는 법까지 재밌게 소개하고 있고, 대만의 서점이나 일류(日流), 1992년 우리나라와 대만 간 수교 단절까지 사과하는 그의 따뜻한 마음에, 살짝 마음이 울컥할 정도였다.
여행을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가끔 궁금하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여행지에서 불편한 것들을 잘 참지 못하진 않을까. 여행은 사실 불편함을 기본으로 하고 가는 건데. 편할 꺼면 집에 있지.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자 떠나면서도, 막상 여행을 가서도 서울에서 먹던 것, 집처럼 편한 것을 기대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건 아닌지. 사회시간에 열심히 배운 문화의 상대성이나 특수성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실제로 쏟아내는 오만하고 너무나 좁은 내 식견이 조금 부끄럽다.
슬슬 대만 여행을 위한 준비를 세워봐야 겠다. 비 오는 날은 딴수이에 가고, 주펀의 계단을 걸으며 아메이 찻집에서 맛있는 차를 얼른, 먹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