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과 시작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대산세계문학총서 62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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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내 것이지만, 실은 잠시 동안 통째로 빌려온 것이다.

바라보고 있는 동안은 내 것이지만,

기억을 붙들어 완전한 내 소유로 만들 순 없다.

 

가까스로 떠오른 불완전한 기억,

깊은 땅속에서 애써 끄집어낸,

몸통과 머리를 잘못 맞춘 오래된 여신의 조각상처럼.

 
   

 

이 책에 수록된 <방랑의 엘레지> 중의 한 구절이다. 선배 한 명이 이 시선집을 나에게 빌려주면서 외국 시인에게 감동받은 건 처음이라고 했는데, 아- 정말 너무 좋다. 시선집치곤 두께가 두꺼운 편인데, 정말 집중해서 바로 다 읽었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계속 먹먹함이 느껴질 정도로, 최근에 읽었던 그 어떤 글보다도 좋다.

나는 가끔 시집을 읽곤 하지만, 제목을 보고 슥 넘기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발견하면 정독해서 읽는 식으로 시집을 본다. 그래서 많이 읽지도 않고, 그렇다고 많이 아는 것도 아니면서 시는 어렵다는 선입견을 깨지 못하고 있다. 나는 비유와 은유, 운율을 비롯한 시의 기법에 대해서 긍정하지만, 그걸 독자 각각이 읽어내고, 느끼지 못했을 때 그게 무슨 소용이 있냐고 생각한다. 일부에서는 시를 비롯한 모든 문학 해석은 독자 각각의 것이기 때문에 정답이 없다고 하지만, 어쨌든 작가의 기본적인 시도랄까,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한다 정도의 느낌은 받아야 저자와 독자가 커뮤니케이션에 성공한 게 아닐까 싶다. 설사 그 해석을 독자가 잘못 추측한다고 하더라도. 이 시선집을 읽으면서 시도 충분히 기발하고, 아름다우면서, 보편적인 감동을 줄 수 있음에 기뻤다. 세대와 나이와 지역을 넘어서, 낯선 그녀의 고민와 기쁨과 아픔을 내가 조금이라도 느끼고 공감했다니, 나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적절한, 오직 하나의 표현, 그 단어를 찾아가야하는 시인의 힘겨운 노력, 그 삶과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 분명한, 한계가 있는 우리 모두의 삶, 소멸하는 것들이 모두 가진 두려움, 아름다움, 정신을 잡아먹어버리고 껍데기에만 열광하는 진실을 잃은 개인과 사회, 그 혼란에서의 상실감과 아픔...

그저 너무 좋다, 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내가 미워질 정도로 훌륭하다.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속깊은 선배를 만난 것 같다. 아, 내가 그래서 힘들었던 거구나, 아, 그때 내가 느꼈던 그런 느낌을 선배도 느끼셨구나. 아, 그런 일은 이렇게 풀어서 표현할 수 있었던 거네요. 이렇게 얘기를 나누면서 웃고 떠들고 같이 울었다.

맑고, 자유롭고, 투명한 물방울처럼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함께 일치점을 찾아 가고 싶다. 비록 우리는 모두 각자 다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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