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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목수정 글, 희완 트호뫼흐 사진 / 레디앙 / 2008년 8월
평점 :
오랫만에 한숨에 책 한 권을 다 읽어냈다. 사실 최근에 서문만 읽다가 팽개친 책들이 너무 많아서 침대 주위가 읽다 만 책들로 거의 폭발 상태가 되었다. 내가 누울 최소한(?)의 면적을 제외하곤 전부 잡다한 읽을거리로 점령된 내 침대는 사실 침대이길 포기한 상태다. 그 엉망 속에서 건져 올린 딱 한 권의 책, 바로 제목부터 가슴을 쿵쿵 치게 하는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이 책이다.
나는 사실 책을 고를 때 출판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선입견이겠지만, 적어도 난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을 신봉하는 편이다. 특히 신간을 살 땐 지금까지 그 출판사에서 내놓은 전작들을 생각해 보고 고르는데, 레디앙에서 바로 전에 나온 책이 "88만원 세대"임을 생각하면, 이 책을 고르는데 주저할 것이 전혀 없었다. 사실 나는 우석훈의 그 문제작을 읽기 전에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를 먼저 읽었고, 그가 하는 강연회를 들었다. "88만원 세대"는 독자인 내 입장에서 볼 때 그닥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없다. 문장은 어딘가 모르게 껄끄럽고, 경제학적 이론들은 어딘가 모르게 어렵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절망적인 사실은 "88만원 세대" 중의 하나인 나를 좌절하게 만들기에 너무 충분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 20대의 고통과 혼란을, 막연한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연구하려는 저자의 시선이 고맙고 눈물겨웠다. 그래서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고, 무턱대고 나처럼 살면 부자된다, 성공한다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을 꼬집어내고, 토닥거려주는, 함께 걱정하고, 분노하는 그게 좋았다. 그런 복합적인 마음과 분석은 사실 진정한 애정이 없인 불가능한 것이니까.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빨리 뛰기 시작하는 내 가슴을 어찌 제어해야할 지 전혀 자신이 없었다. 한장 한장 읽어나가면서, 당장 캐리어를 꺼내고, 짐을 싸서 인천공항으로 달려나가야 할 것 같은 충동이 들었다. 담을 넘듯, 국경을 넘어버리고, 그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관습과 새로운 문화, 사람들을 만나, 지금껏 돌처럼 더 단단해지기만 했던 내 껍질을 깨버리고 싶었다.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과의 안녕. 그 헤어짐이 내 인생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 결국 문제는 여기였던 것일까.
단순히 프랑스 유학을 떠나서가 아니지만, 새로운 기회, 공간, 사람 속에서 저자는 참으로 성숙하고 성장한다. 나도, 나도 나를 좀 채우고 싶다. 계속 내 바닥을 향해 달려가는 것 같은 요즘이다. 순간순간 갑자기 숨이 막혀오는 때가 많다. 참으로. 현실은 막막하고, 자꾸 내 자신이 초라하고 미워진다. 그냥 화가 먼저 치밀어오르고, 꿈과 희망이 뭔지, 간절한 꿈 같은 건 잊은지 오래다.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결국 나였고, 내 한계를 규정한 것도 결국 나였다. 그 굴레를 끊어버리고, 훨훨 다시 날아오른다면, 그곳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 바로 또다른 나, 진정한 나, 그리고 자유였다. 내 마음을 장악한 나, 원하는 게 정말 뭔지 분명하게 아는 나, 그래서 행복한 나. 남이 만들고 사회가 규정한 욕망과 환상에 흔들리지 않는 나. 그런 나를 찾고자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삶, 나를 장악하는 삶. 그리고 거기서 나아가 진정한 공감과 유대를 통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삶. 새롭게 꽃피어나는 향기로운 세상.
유토피아 같은 그 세계가 바로 내 안에 있다. 씩씩하고,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정말 그래야 한다. 계속 나를 다그친다. 너 그렇게 살아서 되겠냐고, 너 정말 행복하냐고. 니가 규정지은 니 한계와 관습들, 너 서른 이후엔 어떤 꿈을 꿀 것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