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탓인가. 밤마다 잠을 거의 잘 이루지 못하고 있다. 눈꺼풀은 천금 같은 무게로 나를 짓누르는데 정신은 말똥말똥, 모든 게 다 끈적한 그 불쾌감 속에서 도통 잠을 잘 이룰 수가 없다. 더위 탓이라고 그저 넘겨버리기엔 나 요즘 너무 소인배 같은 행태를 벌이고 있다. 어쩔 것이냐.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가, 이해력 내지 포용력, 기억력 모든 전반적인 부분에서 빨간불이 들어온 상태다. 나 어쩜 좋으냐. 이 극적인 더위 속에서 지난 주말 나는 소개팅이란 것을 했다. 사실 예전에 많이 해보긴 했고, 또 내가 그닥 사람 만나는 걸 크게 꺼리거나 말하길 불편해하는 게 아니라서 별로 걱정할 것도 없었다. 다만 하도 오랜만에 화장을 해서일까. 마스카라 뚜껑을 열었는데 굳어 있었단 거 정도.
만남의 자리에 주선자도 함께 나와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밥을 먹으러 갔다. 참고로 나의 본명은 정말 우리나라 여자들 사이에서 흔하니 흔한, 길거리에서 부르면 5-6명은 뒤돌아볼법한 이름 "O희"다. 소개팅에 나온 남자 이름이 "희O"였는데, 서로 이름을 말하며 소개를 한 후 이런 대화를 나눴다.
나 : 이름에 희자 어느 한자 쓰세요?
소개팅남 : 빛날 희자요. O희씨는요?
나 : 아, 저도 그거 쓰는데.
주선자남 : 와, 이런 인연이......하하하.
나 : 끝에 이름 한자는 뭐에요?
소개팅남 : 모시기 O자 입니다. O씨는요?
나 : 요시기 O자요. 이름 뜻이 요시기의 희망이란 뜻이에요.
소개팅남, 주선자남 : ......
이거 뭘까.. 완전 바보 같은 대화의 비참한 결말?
더 웃긴 건 저렇게 얘기를 하고 3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내 이름 한자가 빛날 희가 아니라, 바랄 희라는 사실이 떠올랐으니, 이거 정말 뭥미. ㅜㅜ 나 정말 바보 같지 않은가. 27년 사용한 내 이름 석자의 한자가 헷갈리다니. 순간 뻥... 정말 내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거나, 아니면, 더위에 흐르는 땀과 함께 내 정신이 빠져나간걸까.
이거 마치, 남자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억지 부리듯 뭔가 공통점을 엮고자 하는 폭탄 여인의 눈물겨운 노력의 한 장면 같지 않은가. 그런데 결국엔 무식함과 거짓 꾸밈이 탄로나서 비참한 결말을 맞아야할 것만 같은. 아. 놔. 왜 이러냐. 너 정말. 내 자신이지만, 정말 부끄럽다. 진짜.
나사가 언제나 풀린 듯한 나. 늘 돌아서서, 머리를 쥐어받으며 자학하는 것도 지겹다. 난 정말 외로울 자격도 없다만...이렇게 더위에 정신 못차리고, 혼 빠져나간 나 같은 여자, 그치만...그치만...구제해줄 남자 좀 없을까나. 아. 더운데 왜 외롭고 난리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