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 게임 - 도다 세이지 단편선 2
도다 세이지 지음 / 애니북스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대나무 돗자리를 하나 구입했다. 원래 침대 위에 깔고 싶었는데, 싼 거라서 그런지 침대 위에 펴고 누으면 대나무 자락자락이 다 으스러질 거 같이 뭔가 부실했다. 할 수 없이 좁은 방바닥에 깔고나니 방이 다 찬다. 여백의 미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 공간, 그 위에 엎드려 누으면 대나무자리의 서늘함이 종아리에 닭살을 돋게 한다.

차다. 시원한 느낌은 아니다. 뭔가 낯설고 차갑고 도드라지는 그런 감촉이랄까. 폭신한 담요 위가 아니라서 맘껏 뒹굴 수도 없다. 간단한 요가 동작이라도 하려고 하면, 너무 바닥이 딱딱해서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뭔가 푹푹 늘어지는 이 무더운 여름밤에도 나를 완전히 풀어주지는 못하는 이 공간, 서늘함. 익숙해지지 않는 감촉.

이 자리 위에 엎드려 이 여름을 보내고 있다. 자리 위에서 손만 뻗으면 다 잡을 수 있는 것들. 선풍기가 있고, 바디파우더가 있고, 휴대폰 충전기가 있고, 읽다가 만 책들이 수십 권 널부러져 있다. 무슨 뽑기 놀이를 하는 것처럼, 그중에 느낌 가는 대로 하나씩 뽑아들고 읽다가 잠이 드는 나날들. 아 정말 다행이다. 이런 무더운 밤. 이 책을 읽은 건. 이 만화책은 지금, 딱, 이 내 상황과 너무 잘 어우러지는 것 같다.

나는 <키오리>, <nobody>과 같은 작품이 얘기하는 정신과 육체의 관련성, <쿠바드 신드롬>에 등장하는 남자가 부인 대신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이야기 등, 몸과 관련한 것들을 흥미롭게 읽었다. 가끔씩 나라는 존재는 육체가 거의 전부라고 할만큼, 육체에 얽매인 존재가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내가 느끼는 감정의 근원, 그 바닥을 이루는 것은 결국 내 몸이란 생각. 내가 즐거운 것, 내가 괴로운 것, 내가 되고 싶은 것. 그 모든 것의 주체는 바로 내 몸. 그래서 내 몸을 좀더 자유롭게 움직이고, 원하는대로 하고, 넓게 보면 내 몸을 두고 싶은 곳에 두는 것,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있는 것. 그게 결국 내 모든 희망 혹은 자아실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육체를 잃고 뇌만 남은 존재의 이야기나, 다른 사람의 몸을 이식받아서 살아가는 남자, 아이를 낳아 아빠(?)가 되는 남자 등 우리의 상식을 넘어설 뿐만 아니라, 철저히 몸과 정신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나를 더 서늘하게 만들었다. 감촉이 낯설다. 내 마음은, 내 생각은 육체를 지배하고 있는 걸까. 우연히 발견한 종아리의 푸른 멍, 언제 어떻게 생긴 건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눈으로 확인한 순간, 갑자기 아파진다. SF 속에서만 있진 않은 것 같은, 괴리, 혹은 싸움, 혹은 공존. 어렵고도 어렵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