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천명관

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대구에 가면 교보문고로 들어가는 지하상가 입구에 이런 광고문구가 있다. "교보문고에 책 보러 가세요? 구경 잘 하시고, 구입은 저렴한 땡떙 사이트에서" 지금도 이 광고판이 있는 지 모르겠는데, 이거 보고 첨에 진짜 놀랬었다. 딱 나 보고 하는 얘기 같아서 어찌나 뜨끔하던지. 하하. 나는 정말 오프라인에서 책 구입은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신간이라고 해도 인터넷으로 10퍼센트 할인을 받을 수 있으니. 굳이 비싸게 정가 다 내고 사긴 좀 억울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점에서 보다가 제대로 필 받은 경우 바로 사서 정신없이 근처 커피숍을 찾아헤매는 게 내 오랜 습관인데, 천명관의 고래, 이 책이 딱 그랬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리오.

제대로된 이야기꾼 한 명이 등장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구라도 이 책의 앞 한 장만 읽어본다면 그 자리에서 한 숨에 이 긴 장편소설을 읽어내고야 말 것이란 생각에 의문의 여지가 조금도 없다. 한국 문학에서 이렇게 거대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소설가가 존재했을까.. 얼핏 천명관 그를 설명하기 위해 예로 들 작가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는 그냥 천명관. 고래의 작가 천명관, 유쾌한 마녀 하리아사의 작가일 뿐이다. 그 어떤 비교도, 수식도 부족해보인다.

얽히고, 얽혀도 어쩜 그렇게 얽혀 있을까. 그들의 지난했던 삶. 등장 인물들의 삶을 따라 읽다보면, 삶이 다 무엇인가. 인생이 다 무엇인가 싶다. 결국 다 죽음으로 끝날 텐데. 그 안에서 우리는 왜 이리 엉겨붙어서 물어뜯고 있을까. 다들 한없이 약하디 약한 존재들인데, 나도 어찌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운명이든 우연이든 한치 앞도 모르는 약한 것들인데. 인생이 다 비극이었다. 그걸 깨닫고나야 욕심이 줄어들까. 마음이 평안해질까.

다 삼켜버리고도 남을 운명의 고래, 아, 천명관. 문학동네 연재 소설을 멈추다니, 그의 새 장편소설을 읽고 싶다. 어여 써주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