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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의 눈 + 어린 왕자 (문고판) 세트 - 전2권
저우바오쑹 지음, 최지희.김경주 옮김 / 블랙피쉬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읽을 때마다 깨닫는 것도, 다가오는 느낌도 다르다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나 역시 서너 번 읽어보았고, 읽을 때마다 『어린왕자』가 다르게 다가왔었다. 아주 어렸을 때 읽은 『어린왕자』는 그냥 재미있는 동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중학교 때 독후감 숙제로 읽은 『어린왕자』는 보아구렁이 그림을 통해 내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과 어른들은 역시나 바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안 그래도 사춘기가 시작되어 어른들에 대한 반항심이 막 생겨날 때라 나에게 『어린왕자』는 든든한 아군 같았다. 그리고 대학생 때 읽은 『어린왕자』는 여우를 통해 '그리움'이란 무엇인지 내게 알려주었다. 『어린왕자』는 이처럼 나에게도 읽을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던 책이었다. 그런 『어린왕자』를 한동안 잊고 지냈다. 바쁘다는 핑계도 있었고, 다른 새로운 책들을 읽어야 한다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3번이나 읽었고(스치듯 읽은 것까지 합하면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이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더는 『어린왕자』를 통해 내가 얻을 깨달음은 없을 거라는 오만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웬걸. 이번에 읽은 『어린왕자의 눈』을 통해 나는 내가 알지 못한 또 다른 모습의 『어린왕자』를 만나고 적잖이 당황했다. 그리고 이 당혹감은 『어린왕자의 눈』을 다 읽을 때까지 계속되었고 감히 『어린왕자』를 다 이해했다고 생각한 나 자신을 반성하게 만들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어린왕자의 눈』은 홍콩의 정치철학자가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철학적으로 재해석한 책이다. 철학자가 쓴 책이라고 해서 어렵거나 딱딱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에세이처럼 술술 읽히는 책이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라고 외치며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알아보는 지혜를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통해 일러주고 있던 『어린왕자의 눈』은 동심과 자유, 고독, 길들여짐, 사랑과 우정 등 다양한 주제들을 철학적으로 쉽게 풀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어린왕자에게 장미의 소중함을 알려주면서 여우가 말했던 '길들여짐'에 대한 해석 부분이 굉장히 새로웠고, 그동안 『어린왕자』를 읽으면서 놓쳤던 부분이라 인상적이었다. 그 '길들여짐'을 통해 여우에게 어린왕자가, 어린왕자에게 장미가 어떤 의미인지 깨달을 수 있었고, 문득 내 인생의 장미와 여우는 무엇인지, 나는 지금 '길들여짐'을 통한 관계 맺기를 잘하고 있는지 내 인생을 돌아보게도 되었다.
여우가 말했다.
"우리가 서로에게 길들여진다면
우리 관계 속에서 하나밖에 없다는 것의
새로운 의미를 경험할 수 있어."
-p.75-
세상에 오직 하나뿐이라 생각했던 장미가 사실은 무수히 많은 장미들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진 어린왕자에게 여우는 '길들여짐'을 통한 관계 맺음으로 그 장미가 어린왕자에게 여전히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장미임을 일깨워준다. 서로를 세심하게 돌봐주고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 그런 관계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뿐인 존재가 되어간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길들여짐'을 통한 관계 맺기가 되지 않으면 결국 수많은 사람들 중에 그저 한 사람일 뿐이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길들여져야 한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인 것 같다.
반면 어린왕자는 힘들어하는 여우를 보며 미안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잘못했다고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책임을 여우에게 떠넘겼다. 그럼에도 여우는 조금도 화내지 않고, 길들여짐에는 상처받는다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여우는 후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린왕자가 '밀밭의 색깔'을 남기고 갔기 때문이다. 이번에 헤어지면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아가야 하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기 힘들다 할지라도 '얻은 게 하나도 없는 게' 아니었다.
『어린왕자의 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존재는 여우가 아닐까 싶다. 나에게 '그리움'의 의미를 가르쳐주기도 했던 여우는 삶에서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놓치면 안 되는지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존재였다. 그리고 가장 성숙한 존재이기도 했다. 여우는 '길들여짐'을 통한 관계 맺음에는 상처받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노라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왕자에게 길들여달라 부탁한다. 그리고 어린왕자가 자신을 길들여 놓은 채 자신의 장미에게로 다시 돌아가겠다 했을 때, 여우는 화도 내지 않고 붙잡지도 않는다. 대신 앞으로는 밀밭의 색깔을 보면 어린왕자가 생각날 거라며 자신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나는 그동안 누군가에게 길들여진다는 게 무서웠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고, 실컷 길들여졌는데 이별이라도 찾아오면 그 이별의 아픔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쿨하게 상대방을 보내주면 모르겠는데, 그럴 자신도 없었기에 결국 처음부터 거리를 두고는 했다. 그런데 여우는 그 아픔을 알면서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어린왕자에게 자신을 길들여달라 말한다. 그리고 자신을 길들여놓고 떠나는 어린왕자를 원망하지 않고 보내준다. 자신에게는 그리워할 누군가가 생겼고, 밀밭의 색깔을 보며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생겼으니 괜찮다면서 말이다. 나를 돌아본다. 나에게는 그런 그리움의 대상이 있는가. 나에게는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있는가.
『어린왕자의 눈』을 읽으면서 『어린왕자』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정원 속 오천 송이 장미들처럼 생각해보지 못했던 존재들의 입장이 되어보기도 하면서 『어린왕자』에 담긴 숨겨진 의미를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직 『어린왕자』를 읽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어린왕자의 눈』이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왕이면 『어린왕자』를 먼저 읽고 『어린왕자의 눈』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새로이 깨달으면서 자신이 깨달은 것과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