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제리 소녀시대
김용희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에 즐겨보던 드라마 <란제리 소녀시대>가 끝났다. 79년, 대구를 배경으로 10대 소녀들의 우정과 사랑을 그렸던 <란제리 소녀시대>는 오랜만에 풋풋한 설렘을 느끼게 해준 드라마였다. 그리고 그 두근거리는 설렘은 나를 원작 소설까지 찾아 읽게 만들었다.

 

 

설렘을 안고 책을 펼친 나는 이 소설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으며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첫 번째 이유는 드라마와 소설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소설에 담겨있던 여성들의 삶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드라마와 원작 소설을 비교하는 리뷰를 쓰려고 했던 처음 계획을 수정해 이 소설 후반 내용에 등장했던 혜주라는 한 소녀의 삶에 집중해 리뷰를 남기기로 했다.

드라마와 소설의 큰 골자는 같다. 여주인공 이정희를 중심으로 79년 생활상이 담겨 있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남아선호사상의 강했던 당시 모습을 자세히 그리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정희와 그의 친구 혜주가 자신들의 사랑을 찾아 해피엔딩으로 끝났던 드라마와 달리 소설은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당시 사회가 여성들에게 가했던 폭력을 보여주며 끝맺은 소설은 드라마를 먼저 본 나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소설은 중반까지만 해도 그냥 평범한 여고생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했다. 이정희라는 여고생을 중심으로 그의 가족 이야기, 그의 친구들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소설 후반부터 분위기가 달라진다. 드라마에서는 여주인공 정희만큼 큰 비중을 차지했던 혜주가 소설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이때로부터였던 것 같다. 서울에서 전학 온 예쁘고 똑똑한 그 아이는 친구들의 질투의 대상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 혜주가 어느 날 말도 없이 사라진다. 그리고 일주일 후쯤 돌아온 혜주는 학교에 나갈 수도 친구들을 만날 수도 없게 된다.

혜주가 세상으로부터 단절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녀가 약방 총각(드라마에서는 둘이 애틋한 사이였는데ㅠㅠ)으로부터 감금 당한 채 '몹쓸 짓'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신고를 권하는 선생님에게 여자로서 버린 몸이라며 그 총각에게 시집을 보낼 수밖에 없다면서 신고마저 꺼리는 모습을 보인다.

이건 아니다 싶었던 선생님은 경찰에 신고하지만, 경찰조차 친고죄-피해자가 직접 신고해야 접수되는 것으로 2013년 성폭력 범죄에 대한 친고죄 규정은 폐지됨-를 핑계로 어쩔 도리가 없다며 오히려 여자가 밤늦게 돌아다녀 그런 일을 당한 게 아니냐면서 피해자인 혜주 탓을 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혜주네는 야반도주하듯 이사를 가버린다.


혜주가 떠나고 시간이 흘러 정희는 대학생이 된다. 그러나 대학생이 된 정희는 여전히 여자라는 이유로 자전거를 탈 수도 차가운 곳에 앉을 수도 없다. 다리는 늘 오므리고 앉아야 했으며 해지기 전에 집에 일찍 들어가야만 했다. 세상이 '보호'라는 이름 하에 여성들을 '통제'하는 것들은 여전했고 소녀에서 여자가 되어 가던 정희 앞에는 오히려 지켜야 할 것도 하지 말아야 할 것도 더 많아지기만 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이런 일들은 되풀이되어왔다는 생각도 든다. 이미 세상이 만들어놓은 지도 위에서 여자들이 단단하게 몸을 감싸고 다시 그 몸을 찢는 일 말이다. 여자를 둘러싸고 있는 투명하고 얇은 막 같은 거 말이다. 란제리처럼 몸을 보호하던 것이 오히려 몸을 조여오는 거 말이다.
(p.277)



드라마를 보면서 꺄우뚱했던 제목이 소설을 읽고 나니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란제리는 여성들의 몸을 보호하는 동시에 속박하는 존재다. 여성들은 더 여성스럽게 보이기 위해 코르셋 등의 란제리를 착용한다.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엉덩이는 종족 번식을 위해 여자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덕목이다. 그것도 사회가 규정한 덕목.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어른다웠던 김화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두들 조금씩 자기 모습에 불만족하면서 세계와 싸워나간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그렇게 세계와 불화하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것이지. 누구나 자신의 세계와 싸우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자신의 지옥과 마주 싸울 각오도 의욕도 없이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노? (p.275)



불의를 보면 못 참던 혜주가, 그 누구보다도 자의식이 강했던 혜주가 자신의 지옥과 마주 싸워 이겼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세상이 자신에게 휘두른 폭력 앞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싸우며 어디에선가 자신이 좋아하는 비틀즈 음악을 들으며 시를 쓰고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소설 <<란제리 소녀시대>>는 단순히 10대 소녀들의 사춘기와 풋풋한 첫사랑을 담고 있는 소설이 아니다. 여기에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가해졌던 혹은 지금까지도 가해지고 있는 차별과 폭력성을 고발하고 있는 소설이다. 그렇기에 드라마의 달달함에 빠져 이 소설을 읽는다면 실망이 클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분명 예전보다 여성들이 살기에 세상은 정말 많이 좋아졌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교육을 못 받는 일도 없고 자전거를 못 타는 일도 없으니까. 그러나 아직까지도 많은 여성들이 밤거리를 마음껏 혼자 돌아다닐 수가 없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성폭력 피해자들을 색안경을 끼고 본다. 이 소설은 세상에 저항해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라고 알려주지는 않지만, 세상이 여성들에게 요구하는 것들 중에 얼마나 많은 불합리한 것들이 있었고 지금까지도 있는지 알려주고 있기에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어쩌면 나처럼 오히려 드라마의 각색이 아쉬워지게 될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