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되면 그녀는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영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가와무라 겐키의 <4월이 되면 그녀는> 표지

왜 인간은 사랑을 하는 걸까.
(p.167)


늘 궁금했던 질문 중 하나. 왜 인간은 사랑을 하는 걸까. 그리고 곧 뒤따르는 물음표 하나. 과연 사랑이 있기는 한 걸까.

어렸을 때는 둘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동화 속 사랑 이야기가 정석이라고 믿었다. 나이가 조금 더 들어 본 드라마를 통해 그 믿음은 더욱 굳건해졌다. 중간중간 고난은 있을지언정 남녀 주인공은 서로를 늘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마침내 해피엔딩이라는 결말을 맞이했으니까. 그리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에게도 저런 예쁘고 아름다운 사랑이 오리라.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본 그 예쁘고 아름다운 사랑은 흔한 사랑이 아님을. 오직 좋아한다는 감정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사랑은 아주아주 드물다는 것을. 그리고 나라는 사람부터가 그런 사랑을 하기에 너무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사랑 이야기를 접할 때면 그저 그 순간 흥밋거리로만 여기고 말았다. 이번에 읽은 <<4월이 되면 그녀는>> 역시 이러한 이유로 킬링타임용으로 선택한 책이었다. 평생 가도 나는 경험 못할 것 같은 그 달달하면서도 아련한 사랑 이야기로 대리만족하며 무더운 여름을 보내기 위해 펼친 책이었다. 하지만, 내 기대는 보란 듯이 비껴나갔다.

이 소설은 9년 전 헤어진 연인에게 쓰는 편지로 시작한다. 풋풋한 대학시절 커플이었던 하루와 후지시로.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고, 9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죽음을 앞둔 하루가 후지시로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 둘의 인연은 다시 시작된다. 하루의 편지와 후지시로의 일상이 교차하며 전개되는 이 소설은 후지시로와 후지시로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 사랑에 대한 오늘날 우리들의 다양한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동시에 하루가 후지시로에게 전하는 편지를 통해 왜 사람은 사랑을 할 수밖에 없는지, 어떻게 사랑을 해야 하며, 어떤 게 진정한 사랑인지를 알려준다.


후지시로를 비롯해 후지시로 주변 인물들은 공교롭게도 다들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줄 모른다.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사랑의 열정은 식은지 오래된 후지시로와 그의 약혼녀 야요이도, 유부녀임에도 사랑의 허기짐으로 섹스 파트너를 따로 두고 있는 야요이의 여동생 준도 그리고 애정이 식어버린지 오래된 후지시로의 부모님까지 다들 자신들의 사랑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방황하며 힘들어한다.

이들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믿지 못해서 또는 자신을 알지 못해서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사랑받고 있는지 늘 걱정하고, 자신이 상대방을 사랑하고 있는지 늘 의심한다. 그런 걱정과 의심은 결국 옆에 있는 사람과의 사이를 일회적이고 가벼운 관계로 만들고 만다. 꼭 인스턴트식 사랑을 하고 있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처럼.

결국 누군가는 찾아온 새 생명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느끼는 것으로 또 누군가는 헤어짐으로 각자 그 결말에 도달한다. 후지시로 역시 약혼녀 야요이와 이별의 문턱에 다다른다. 9년 전 하루와 헤어졌을 때처럼 그는 야요이하고도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노력 한 번 하지 않고 자신의 아버지를 닮아 자신도 사람에게 애정을 못 느끼는 것 같다며 이별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때 하루의 마지막 편지가 도착한다.

나는 사랑했을 때 비로소 사랑받았다.
그것은 흡사 일식 같았어요.
'나의 사랑'과 '당신의 사랑'이 똑같이 겹쳐진 건 지극히 짧은 한순간의 찰나.
거역할 수 없이 오늘의 사랑에서 내일의 사랑으로 변해가죠. 그렇지만 그 한순간을 공유할 수 있었던 두 사람만이 변해가는 사랑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난 생각해요.

안녕.
지금 후지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후지를 사랑해주길 바랍니다.
설령 그것이 한순간일지라도 그 마음을 함께 나눴던 한 인간으로서.

p.258


하루의 편지로 후지시로는 야요이를 찾아 떠난다. 후지시로보다 먼저 하루의 마지막 편지를 읽고 멀리 타국으로 떠났던 야요이가 보낸 편지에는 자신들의 잃어버린 것을 되찾고 싶다(p.219)는 글이 남겨져 있었다. 후지시로는 그것을 찾으러, 설사 그것이 깨진 감정의 파편일지라도 야요이와 함께 되찾고자 떠난다.

후지시로는 사랑을 믿지 못했다. 자신 역시 아버지처럼 애정이 결핍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루의 편지로 사랑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뜨거웠던 사랑이 어느 날 차갑게 식더라도 두 사람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다시 뜨거워질 수 있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한순간의 찰나이더라도 사랑하고 사랑받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왜 인간은 사랑을 하는 걸까.


하루는 오시마 선배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고 했지만, 이미 알고 있지 않았을까. 누군가를 사랑할 때 비로소 자신도 사랑받을 수 있기 때문임을. 어떤 환자의 글처럼 죽음 직전에나 실감하게 된다는 살아 있다는 느낌을 한순간이나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임을. 그래서 인간은 사랑을 할 수밖에 없음을.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읽고 싶어 펼친 책이었는데, <<4월이 되면 그녀는>> 읽는 동안 나를 참 많이도 괴롭혔다. 나와 너무나도 많이 닮은 등장인물들을 보면서 그동안 나 역시 피상적인 관계만을 맺고 살아오지 않았나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들처럼 상처받을게 무서워서 혹은 상대방을 믿지 못해서 늘 가벼운 관계만 유지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여전히 이기적인 내가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할 수 있을까 싶지만, 적어도 지금부터라도 후지시로처럼 노력은 해봐야겠다. 관계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도 좀 고치고, 사람에게 미련이라는 것도 좀 가져보고. 무엇보다도 상대방을 믿지 못해 먼저 돌아서는 못된 버릇도 좀 고치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후지시로의 아버지처럼 자신을 몰라서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이 없도록 나 자신의 감정도 열심히 들여다봐야겠다.

왜 인간은 사랑을 하는 걸까. 이 책 덕분에 그동안 품고 있던 궁금증 하나가 풀렸다. 나처럼 평소 이 물음에 대한 답이 궁금했던 이들에게 이 소설을 권한다. 그리고 일회용 사랑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이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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