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사회 - 증오는 어떻게 전염되고 확산되는가
카롤린 엠케 지음, 정지인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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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진지하게든 장난으로든 많은 사람들이 무심코 내뱉는 단어들 중 하나가 '극혐'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극혐
'혐오하다'라는 말에, 정도가 심함을 나타내는 접미사 '극'을 붙여 '극도로 혐오한다는' 뜻을 나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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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더럽다고 생각이 들 때 우리는 종종 이 단어를 쓴다. 때로는 장난처럼 때로는 진심을 담아. 적어도 내게는 '극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난에 가까운 말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장난처럼 툭툭 던지는 말처럼 일상에서 흔히 쓰는 아주아주 가벼운 말이었다. 작년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작년 이맘때쯤 강남역 주변 상가 공용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무참히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일명, 강남역 살인사건. 이 사건 이후로 우리 사회는 '여성혐오'라는 말이 핫이슈로 떠올랐다. 여자였기 때문에, 여자라서 죽었다는 공포감이 많은 여성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찰의 수사 결과는 여성혐오가 아니라고 했지만, 여성들이 느꼈던 그 공포감, 두려움은 여성혐오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여전히 여성혐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여성혐오는 대상만 바뀌어 다양한 혐오로 표출되고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로, 다문화 가정에 대한 혐오로, 탈북민에 대한 혐오로. 물론 이러한 혐오들은 과거에도 있어왔다. 다른 것이 있다면 과거와 달리 이제는 대놓고 혐오를 표현한다는 것뿐.

대체 누가 무슨 권리로 누군가를 증오하고 혐오할 수 있다 말인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다양한 혐오들을 접하면서 들었던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 의문을 풀어줄 책으로 카롤린 엠케의 <<혐오사회>>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누군가를 '극혐'해도 될 권리는 없다!



<<혐오사회>>는 수많은 혐오의 대상 중에서도 난민, 흑인, 성소수자 이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하고 있다. 가장 궁금했던 여성 혐오에 관한 이야기는 다루고 있지 않아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지만 이 책을 통해 의문으로만 남겨져 있던 혐오의 본질을 알아볼 수 있었기에 유익한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저자 카롤린 엠케는 혐오와 증오는 느닷없이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되고 양성된다(p.23)고 주장한다. 결국 우리가 가지는 혐오와 증오라는 감정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로부터 학습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각각의 현상과 관련된 실제 사례들을 소개하며 왜 누군가를 혐오하게 되는지, 어떻게 그렇까지 확신을 가지고 증오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때로는 혐오와 차별을 주제로 한 책을 인용하면서 때로는 전문가의 의견을 더하면서.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동안 나도 몰랐던 나의 무수한 편견들과 마주쳤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난 내가 여성으로서 혐오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내가 누군가를 혐오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 책의 첫 장을 넘길 때만 해도 난 피해자의 시각에서 이 책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페이지 수가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즘 길을 가다 보면 종종 외국인들을 보게 된다. 공부를 하러 왔건 일을 하러 왔건 다 같은 외국인인데, 이상하게도 일을 하러 온 외국인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움츠리고는 했다. 특히 피부색이 어두운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그럴 때마다 난 저들이 나를 두렵게 하기 때문이야, 뭐 그런 합리화를 하며 내가 그들을 피하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저렇게 몰려다니지 말지, 왜 저렇게 몰려다니며 다른 사람들한테 위압감을 주나 그런 생각까지 하고는 했다. 그런데 <<혐오사회>>에 나왔던 에릭 가너 이야기를 통해 나의 이러한 근거 없는 두려움이 그들에게는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에릭 가너처럼 그들은 나에게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백인 경찰들처럼 그들을 위협적인 존재로 여겼다. 백인 경찰처럼 그들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만일 나에게 그들을 제압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었다면 단순히 기피만 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왜? 그들은 위협적인 존재니까. 위협은 사전에 방지해야 하니까.

지금까지 난 혐오는 사회적으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억압하는 것으로 이해했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에릭 가너 피살 사건에서처럼 학습된 두려움이 혐오로 표출되기도 한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랬다.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백인들이 흑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사회가 부여하고 씌운 흑인들은 위험하다는 편견이 자리하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분석은 나에게 생소하면서도 나의 경험에 비추어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단순히 긴 시간 흑인들이 그들의 노예로 있었던 역사 때문에 백인이 흑인들을 만만하게 보고 그러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흑인들을 기피하거나 두려워해야 할 존재로 바라보도록 교육한 사회가 백인들로 하여금 흑인들을 혐오하도록 만든 것이 아닐까.

나를 돌아본다. 난 왜 외국 노동자들을 보면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아마도 나 역시 사회로부터 배운 외국 노동자들은 기피해야 하고 위협적인 존재라는 학습된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매스컴을 통해서 때로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 접한 외국 노동자들의 부정적인 모습들을 그들의 모습 전부인 양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혐오사회>>를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들과 마주 봤다. 당장 책 한 권 읽었다고 나의 내면 깊숙이 박힌 편견들이 뿌리째 뽑힐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두렵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짓도 하지 않은 그들에게 덮어씌운 부정적인 감정들은 조금은 떨칠 수 있지 않을까.


존경과 인정이 타인에 대한 인식을 전제하듯이, 멸시와 증오는 대개 타인에 대한 오해를 전제로 한다.
(p.75)

괜히 오해하지 말자. 그들도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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