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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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가족을 잃는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잃든, 천천히 잃든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마음이 참 아픈 일이다. 하지만 이왕이면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이별보다 마음의 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는 상태에서 하는 이별이 그래도 그나마 낫지 않을까.

여기 세상에서 가장 느린 작별 인사를 하고 있는 가족이 있다. 할아버지와 손자,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의 이야기가 담긴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이 그것이다.

『오베라는 남자』,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의  감동을 잇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

책 이름은 익숙하지만, 작가의 이름은 낯설었다. 책도 워낙 유명해서 이름만 알고 있을 뿐 아직 읽어보지 못한 소설들이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다고 말하는 그의 책이.

책은 생각보다 얇다. 내용 또한 짧다. 하지만 다 읽고 났을 때의 여운은 길고 깊었다.

 

무서워 마세요.
(p.9)

소설은 한 청년의 속삭임에서 시작한다. 머릿속 기억의 광장이 점점 작아져 가고 있는 할아버지가 자신의 손자 노아와 자신의 아들 테드와 서서히 이별하는 과정을 소설은 슬프지만 유머러스하게 그러면서도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그리고 있다.

"제 손을 왜 그렇게 꼭 잡고 계세요, 할아버지?"
아이는 다시 속삭인다.
"모든 게 사라지고 있어서, 노아노아야.
너는 가장 늦게까지 붙자고 있고 싶거든."
(p.81)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할아버지는 손자와의 이별이 아쉽기만 하다. 그래서 최대한 늦추어보려고 손자의 손을 꼭 잡아보지만 머릿속 기억의 광장은 하루하루 작아지기만 한다.

여보, 기억들이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어.
물과 기름을 분리하려고 할 때처럼 말이야.
나는 계속 한 페이지가 없어진 책을 읽고 있는데
그게 항상 제일 중요한 부분이야.
(p.83-85)

할아버지는 무섭고 두렵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잊게 되는 것이. 먼저 떠난 아내를 지금은 이토록 그리워하며 보고 싶어 하지만 어느 날 기억이 나지 않아 그리워할 수 없을까 봐,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바쁘다는 이유로 데면데면하게 지내왔던 아들을 기억할 수 없을까 봐, 아들과 자신을 꼭 닮은 사랑스러운 손자를 더는 알아보지 못할까 봐 말이다.

"저는 작별 인사를 잘 못해요."
아이가 말한다.
할아버지는 이를 훤히 드러내며 미소를 짓는다.
"연습할 기회가 많을 거다. 잘하게 될 거야. 네 주변의 어른들은 대부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후회하고 있다고 보면 돼. 우리는 그런 식으로 작별 인사를 하지 않을 거야. 완벽해질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연습할 거야. 완벽해지면 네 발은 땅에 닿을 테고 나는 우주에 있을 테고 두려워할 건 아무것도 없을 테지."
(p.76-77)

수학을 좋아하는 할아버지와 그런 할아버지를 꼭 닮은 손자는 천천히 이별 연습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의 이별 연습이 마냥 슬프기만 하지 않다. 손자의 천진난만한 말과 따뜻한 눈길로 이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절로 미소 짓게 만든다. 슬프고도 아픈 이별을 조금은 아름답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다.

 

 

 

이 소설은 분명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다. 늦출 수는 있어도 완치는 불가능하다는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코 어둡지가 않다. 어떤 부분에서는 정말 빵 터지게 웃기기까지 하다. 그러다 그들의 아름다운 이별에 눈물짓게 만든다. 하지만 이 역시 너무 아름다워서 흘리게 되는 눈물이지 결코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눈물은 아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있을지언정 '이별', '죽음'하면 떠오르는 부정적인 느낌은 이 소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그렇게 울고 나면 팍팍한 삶으로 인해 메말랐던 가슴이 촉촉해지고 따뜻해진다. 정말 신기한 소설이 아닐 수 없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점점 자라고 한 사람은 점점 작아져서 몇 년이 지나면 중간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p.112)

할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손자의 사고는 확장되고 자신의 사고는 수축돼서 둘이 중간에서 만나는 날이 올 거라고(p.40) 말이다. 그리고 정말 그런 날이 온다. 벤치에 앉아 있으면 달랑거리던 손자의 다리는 땅에 닿아 더 이상 달랑거리지 않는다. 할아버지에게 "무서워할 것 없다, 노아노아."(p.17)라는 말을 듣던 손자는 이제 할아버지에게 "무서워 마세요"(p.9)라고 말하는 의젓한 청년이 되었다.


짧은 분량에도 참 많은 걸 담고 있던 소설이 아니었나 싶다. 손자를 향한 할아버지의 사랑뿐만 아니라 아내를 향한 할아버지의 그리움을 보면서 익숙하면서도 설레는 낭만적인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마지막에 손자를 정겹게 부를 때처럼 아들에게도 "테드테드"라고 부르는 장면에서는 한평생 아들에게는 무뚝뚝했던 아버지의 드러내놓고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도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별은 아무리 연습을 한다고 해도 아플 수밖에 없다. 슬플 수밖에 없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이별 연습조차 사치로 느껴질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노아네 가족들처럼 예쁘고 아름답게 세상에서 가장 느린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다면 그 슬픔을 조금은 더 잘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 이 또한 복일 거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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