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 - 쉰다섯, 비로소 시작하는 진짜 내 인생
서정희 지음 / arte(아르테)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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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충격적인 영상 한 편을 보았다. 한 남자가 넘어져 있는 한 여자의 발을 질질 끌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담겨 있는 영상이었다.
이 영상 속 인물들이 연예계 잉꼬부부로 불리던 서정희 씨와 서세원 씨라는 사실은 그 영상만큼이나 당시 나에게는 꽤 충격이었다.

사실 내게 서세원 씨는 익숙한 이름이었지만 서정희 씨는 아니었다. 그저 서세원 씨의 예쁜 아내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다 이 영상 이후 올라오는 신문기사들을 통해 그녀가 원래는 모델로 데뷔했었다는 사실과 늘 사이좋아 보였던 그들의 관계가 사실은 그렇지만은 않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평소 관심 있었던 연예인도 아니었고, 남의 부부일에 딱히 관심도 두고 싶지 않아 그 이후에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 그러다 얼마 전 우연히 '서세원 50억 부동산 대박'이라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그리고 내연녀와 아이를 두고 잘 산다는 기사도 덩달아 보게 되었다. 문득 '그럼 서정희 씨는?'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를 검색하게 되었고 책을 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인연이 되려고 그랬을까? 생각보다 빨리 그녀의 이야기가 담긴 <<정희>>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녀가 살아온 삶이 궁금해 읽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그날'에 대한 뒤늦은 궁금함도 있었다. 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그녀는 왜 그렇게 힘없이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실컷 들어주고 난 후 힘든 시간을 보낸 그녀를 힘껏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웬걸. 그렇게 읽기 시작한 <<정희>>는 그녀를 위로해주고자 읽기 시작했던 나를 오히려 위로해주고 용기를 주는 책이 되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오히려 내가 그녀로부터 위로를 받고 있었다. 차분하면서도 덤덤히 자신의 이야기를 읊어가는 그녀를 따라 책장을 넘기면서 그동안 몰랐던 그녀를 알게 되고, 비록 물질적인 풍요로움은 잃었지만 '정희'라는 이름의 진짜 자신의 인생을 찾은 그녀를 통해 그리고 쉰다섯이라는 나이에 꿈을 꾸고 새롭게 시작하는 그녀를 통해 나 또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서른. 요즘 많이 듣는 이야기가 여자로는 많은 나이, 새롭게 무언가를 하기에도 많은 나이, 꿈꾸고 도전하기에도 많은 나이라는 이야기였다. 우리 가족들은 딱히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데, 유독 가족 외 주변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 사실 요즘 가족 말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게 많이 불편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내가 답답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 조언들이 나에게는 딱히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아, 이제 난 무언가 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구나, 이번 내 생은 말아먹은 거구나, 그런 생각만 들 뿐.

그런데 쉰다섯, 나보다 더 많은 나이의 그녀가 새로 무언가를 하겠노라 이야기를 하는데 왜 내가 더 기쁘고 위로가 되던지... 비록 그녀가 겪은 절망과 내가 겪은 절망은 다르지만,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는 생각에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그녀가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내가 겪고 있는 이 아픔을 딛고 일어서면 그녀처럼 더 깊고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생겨 그랬던 것 같다.

그 공간에서 때로는 억울해 미칠 것처럼 몸부림치며 내 처지를 비관했다. 이대로 영영 내 삶은 끝나는 건가, 절망하고 또 절망했다.
그렇게 절망에 지쳐갈 무렵 나 스스로 일어설 앞날의 희망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불어오는 바람을, 코끝을 스치는 계절의 향기를 있는 그대로 느끼기 시작했다. 더하거나 부풀리지 않은 그대로의 것들이 주는 싱그러움을 만끽하게 됐다. 어느덧 비정상적으로 기울어졌던 마음도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갔다. 다시 도전해볼 용기가 생겼다. (p. 84-85)

엘리베이터 사건으로 그녀는 그녀가 꿈꾸던 해피엔딩으로 결혼생활을 끝내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나 그동안 잊고 살았던 자신을 되찾고, 자신의 꿈을 되찾게 된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절망에 울부짖던 시간들도 있었지만 절망 끝에 온 더 큰 희망을 맞이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인생은 좋은 일만 일어나지도, 또 그렇다고 불행한 일만 일어나지도 않는다(p.173)는 말을 새삼 다시 되새겼다.

그는 '다 달라는 자'에 불과하고,
나는 '다 가진 자'였다.


그녀의 말처럼 그녀는 '다 가진 자'다. 아이들과의 소중한 추억도 가지고 있고, 다재다능하며, 무엇보다 꿈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나이를 핑계로, 자신의 처지를 핑계로 주저앉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녀는 포기하고 주저앉는 대신에 다시 꿈을 꾸며 일어났다. 예전만큼의 물질적인 풍요로운 삶은 아니지만 대신 그녀는 그때보다 더 큰 행복을 안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

서정희의 <<정희>> 중에서
거짓 없이 내 삶을 받아들이면서 한 가지 꿈이 생겼다.
절대 다시 시작할 수 없다는 사람들에게,
절대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사람들에게,
망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꿈을 가진 바보들에게,
나와 같은 이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고 싶다는 꿈.
세상과 소통하며 소외되고 고독한 이들과 손잡고
함께 나아가는 꿈 말이다.
상처받아본 사람이 상처 입은 이들을 더 잘 치유할 수 있다.
내 인생이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그 용기로 삶의 고통을 뛰어넘는다면 그날의 사건,
그리고 갇혀 있던 나의 32년이 가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미 그녀의 한 가지 꿈은 이루어진 것 같다. 이번에 <<정희>>를 읽으면서 나는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상처받아본 사람이 상처 입은 사람의 마음을 안다고 그녀가 전하는 말에는 정말 진심이 느껴졌다.

당신들은 세상의 모든 꽃을 꺾을 수 있다.
하지만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딸과 함께 떠난 여행지에서 만난 시인 네루가 쓴 글을 읽고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응원해주는 글 같아 그 글이 적힌 담벼락 앞에서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말한다. 자신을 꺾을 수는 있지만, 자신 안의 모든 것을 빼앗을 수는 없다고. 자신에게 봄이 오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고(p.155).

그녀의 외침은 그녀를 위한 외침이기도 했지만, 세상 풍파에 꺾이고 꺾여 너덜해진 사람들에게 외치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래, 꺾일지언정 누구에게나 봄은 온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이제 나의 인생에도
새로운 꽃이 피어날 거라고 믿는다.


요즘 딱 내 심정이라 한참을 머물렀던 페이지. 나만 빼고 전부 행복해 보여 질투가 나 미칠 것 같던 시간들. 지금 난 내 인생에서 가장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이 겨울이 가고 나면 따뜻한 봄이 와 내 인생에도 새로운 꽃이 피어날까? 그녀처럼 나도 피어날 거라고 믿고 싶다.

서정희의 <<정희>> 중에서
나를 사랑하는 건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나여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
포기하며 좌절하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워 회피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으로.
(p.197)


요즘 나를 너무 미워했던 것 같다. 너 왜 그렇게 한심하냐고, 왜 그렇게 겁이 많냐고, 왜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냐고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다그쳤다. 못나도 평생 함께 해야 하는 나인데. 이제부터는 부정적인 말 대신 긍정적인 말을 나 스스로 나에게 해줘야겠다. 사랑한다는 말도 해주고, 아직 늦지 않았으니 포기하지 말고 겁먹지 말라는 말도 함께 해줘야겠다.

어설픈 동정심으로 그녀를 위로해주겠노라 말했던 나를 반성한다. <<정희>>를 만나기 전까지 난 그녀가 많은 걸 '잃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잃은 게 없다. 뺏으려고 하는 자로부터 온전히 자신을 지켜냈고 오히려 빼앗겼던 온전한 자신과 행복을 되찾아오기까지 했다. 그리고 자신의 상처를 여과 없이 드러내며 오히려 자신처럼 상처가 있는 사람들을 위로까지 한다. 그렇기에 그녀를 위로해주겠노라 말했던 나를 반성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오히려 덕분에 내가 더 많은 위로를 받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되었다고 말이다.


오늘도 두 번째 스무 살을 향해 달리고 있을 그녀에게 진심 어린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서정희의 <<정희>> 중에서
사랑은 그냥 사랑이어야 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사랑처럼 '그냥' 느끼게 되는 그런 사랑이 빨리 찾아오기를 진심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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