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무엇인가 - 진정한 나를 깨우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철학 에세이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학창 시절에 종종 이런 말을 듣곤 했다. "너 의외다." 혹은 "너 맞아?"

 

그리고 중학생 때 내 별명 중에는 '날범생'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한 친구가 어느 날 대뜸 날라리+범생이의 합성어인 저 별명을 내게 붙이면서 다른 친구들도 그렇게 불렀는데, 이유는 별거 없었다. 학교에서는 선도부장도 하면서 학칙을 잘 따르는 얌전한 학생인데, 교문을 나가면 귀찌도 하고 교복도 갈아입고 노는 것도 좋아하다 보니 그런 말을 듣곤 했다. 학교에서의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인지 단순히 그런 행동들만으로도 친구들한테는 꽤 신선했던 모양이다. 단지 멋은 내고 싶은데 어른들과의 불화는 싫어서 학교 밖에서, 적당한 수준으로 멋을 냈을 뿐인데 그런 이야기를 듣곤 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대체 내가 어떻게 보이기에 저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도 밖에서도 난 나인데, 다른 시선으로 보는 것이 솔직히 께름칙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그런 평가가 기분이 나빴던 것 같다. 나를 얼마나 안다고, 라는 반항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을 가고 20살이 넘으면서 그런 생각은 더욱 커졌다. 솔직히 대학생활을 그리 열정적으로 재미나게 보내지 못한 나로서는 학교에서의 크고 다양한 추억이 그다지 없다. 대신 학교 밖에서 중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추억이 더 많다. 그 친구들과 20대 초반에는 클럽도 다니고, 술도 많이 마시러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과에서 친했던 몇 명 친구들과의 소소한 추억들도 있는데, 주로 수업을 빼먹고 노래방을 간다든가 술을 마시러 간다든가, 저녁에 학교 운동장에서 술을 마시는 그런 추억들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간혹 친하지 않은 학교 사람들에게 하거나 그런 나의 모습을 보이면 다들 놀랬다. 학교에서는 얌전한데 클럽도 다니고, 술도 좋아한다는 사실에 말이다. 그럼 또 어김없이 드는 생각은 지가 나를 얼마나 안다고, 였다. 그러다 문득 나 스스로도 내가 누구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떤 모습이 정말 내 모습일까, 라는 그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철학적인 주제는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뇌를 가지고 있다 보니 나중에는 그냥 일탈을 꿈꾸는 내가 하나 더 있을 뿐이다, 로 결론을 내려었다.

 

 

 

 

하지만 답답함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나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타인들이 나를 평가할 때마다 고개 드는 '나를 얼마나 안다고'에 대한 반항심들이 여전히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분인"이라는 개념을 통해 '나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는 이 책이 만나고 싶었던 이유 말이다.

 

 

<나란 무엇인가>는 앞에서도 설명했듯 "분인"이라는 개념으로 나라는 존재에 대한 정의를 한다. 우리는 보통 '나'라고 하면 한 개인으로 인식해 '하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데, 저자는 더 나눌 수 없는 존재라 생각했던 개인을 더 나누어 보자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분인"이라 칭한다. 개인이 숫자 1이라면 분인은 분수에 해당하는데, 분모는 내가 맺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얼마나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 각각의 분자의 크기도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저자 자신의 경험담과 자신의 소설에서 고민하며 썼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분인"에 대한 개념 설명을 한다. 거기에 더해 문학 작품이나 유명한 강연록 등에서 분인의 개념을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을 뽑아 함께 제시한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인간은 양파 같은 존재라 진정한 나란 존재하지 않는다."(p.61)라고 대답한다. "진정한 나를 찾았다란 이상적인 구성 비율의 분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p.143)라면서 말이다. '개인'이라는 개념으로 우리 존재를 규정할 때는 다양성을 인정할 수 없게 되지만, '분인'이라는 개념으로 우리 존재를 규정하게 되면 어느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우리의 모습 모두가 우리 자신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단 하나로 존재하는 나를 찾기 위해 고민을 하고, 진정한 나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자신의 모습들 때문에 힘들어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저자의 분인주의를 접하면서 그동안 품었던 '진짜 나는 누구일까?'라는 궁금증도 해소가 되었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타인들로부터 듣던 원치 않던 평가나 나를 향해 가지고 있던 그들의 편견들이 불편했던 이유는 단순히 그들이 나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라는 반항심 때문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나 자신도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라는 불안감이 그런 반항심으로 표현이 되었던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지금에 와서 든다. 나 자신이 꼭 하나여야 할 필요성이 없어지면서, 내 모습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서 그동안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무언가가 해소된 것 같다.

 

 

 

<나란 무엇인가>는 그동안 상식으로 굳혀져있던 인간을 설명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개인"을 더 나누어 "분인"으로 설명을 하면서 확장하여 이 개념으로 사랑과 죽음도 설명을 한다. 인간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있을 때 자신(분인)이 좋기 때문이고, 타인의 죽음이 슬픈 이유는 그 망자와 함께 했을 때 자신(분인)이 더는 존재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와 함께 '융합'이라는 주제로 우리가 "개인"이 아닌 "분인"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야 하는 이유도 마지막 장을 통해 이야기를 한다. 개인은 타인과 나를 나누지만, 분인은 나 자신을 나누되 타인과 나를 나누지는 않는다면서 그 이유는 분인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었지만, 저자가 일상 속에서 겪었던 이야기들을 사례로 제시하며 풀어가고 있어 오히려 친근하고, 어렵지 않았다. 개념도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았기에 이해도 잘 되었고, '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시하고는 있으나 자신이 제시하고 있는 분인주의가 정답임을 강요하고 있지 않아 마음 편히 읽혔던 것도 있었다.

 

 

 

 

지금 타인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자신이 그리던 자신의 모습이 달라 혼란스럽거나 진정 자신이 누구인지 궁금해 고민인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을 한 번쯤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이 책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러한 고민을 정리하는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적어도 나처럼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몰라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한결 편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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