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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
김호경 소설, 박수진 각본, 윤제균 각색 / 21세기북스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기다리고 기다렸던 소설 <국제시장>을 드디어 만났다. 이번 겨울 개봉하기를 그토록 기다렸던 영화 <국제시장>을 소설로 만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원래는 영화까지 다 보고 함께 리뷰를 남길 예정이었는데, 지난 일요일 조조로 예약까지 다 해놓고 늦잠을 자는 바람에 보러 가지 못해 결국 책 리뷰만 일단 남겨야 할 것 같다.

기대했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읽는 동안 정말 정신없이 읽어나갔다. "덕수"라는 인물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었고, 당시 민중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접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내가 태어나기 전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세대들을 이해하는 계기도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덤덤해지고 있던 이산가족의 아픔을 다시 한 번 깨달으며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었기에 정말 기다리기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국제시장>은 크게 3가지로 내용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6·25 당시 흥남철수를 시작으로 외화를 벌기 위해 서독으로 광부로, 간호사로 일을 하러 가야 했던 당시 젊은이들의 이야기와 베트남전쟁 파견 등 한국 근현대사에 자리 잡고 있는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분단으로 생겨난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족이란 무엇인지, 무거운 책임감이라는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이 땅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번 리뷰는 이 3가지에 초점을 맞춰 써볼까 한다.
우선, <국제시장>은 흥남철수에서 시작한다. 흥남에 살던 덕수 가족들은 인민군들을 피해 남쪽으로 피난행을 결심하고 흥남부두로 향한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도 불리는 이 흥남철수작전은 당시에는 계획되지 않았던 작전으로 몰려드는 피난민들을 두고 갈 수 없었던 미군과 국군이 무기를 버리면서까지 많은 피난민들을 구조했던 작전이다. 기네스북에도 기록이 될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대단한 구조작전이었는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과서에서는 그리 깊게 다루지 않는 사건이라 -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다닐 때는 그랬으므로 - 생소한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이렇듯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흥남철수를 시작으로 역시 교과서에서는 짤막하게 몇 줄로 설명되어 왔던 서독 파견 광부·간호사 이야기와 베트남전쟁 파견 기술자들의 이야기 등을 이 소설에서는 "덕수"라는 인물을 통해 생생히 전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 근현대사라고 하면 부정과 비리, 고문과 그에 맞서 민주주의를 외치던 민주투사들 이야기가 주류였는데, 이 소설에서는 그런 시대적 배경을 시간 순서대로 물 흐르듯 보여주면서도 그동안 잘 그려지지 않았던 흥남철수와 서독 파견, 베트남전쟁 파견에 더 집중해 그리고 있다. 그래서 신선했고, 한편으로는 "덕수"라는 서민을 주인공으로 그러한 시대적 배경을 그리고 있어 한국전쟁 당시 사람들의 절박함과 가난한 나라에서 가진 것 없던 사람들이 조국을 떠나 위험한 곳에서 돈을 벌어야 했던 그 심정과 가족을 타지에 보내야 했던 그 가족들의 마음을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렇듯 <국제시장>은 한 인물의 생을 통해 당시 시대에서 서민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어 남달랐던 것 같다.

그리고, 남북 분단이 가지고 온 이산가족이라는 문제도 <국제시장>을 통해 접할 수 있었는데, 어찌 보면 흔하디 흔한 소재라 크게 감동을 불러오지 못한 점도 있었던 것 같다. 극적 장치로 자수가 놓인 옷자락 등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덕수와 막순이가 서로가 피붙임을 알아보는 그 과정이 다소 억지스럽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덕수네 가족을 통해 다시 한 번 이산가족의 아픔과 고통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던 것은 확실하다. 한국전쟁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앞에서 가족들과 생이별을 했는지, 그 아픔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상처인지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우리가 왜 통일을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확인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너무 오래되었다고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기억 저 편 끝자락 하나라도 붙잡고 피붙이의 생존 여부만이라도 확인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았다.

마지막으로 <국제시장>은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그리고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가족을 위해 끊임없이 희생하는 "덕수"를 통해 한 가장으로서의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고, 흥남철수 때 헤어진 아버지와 막순이를 기다리며 꽃분이네 가게를 끝까지 지키고자 하는 "덕수"의 모습에서는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덕수는 아들로서, 아버지로서 가족의 중심이 되어 가족의 버팀목이 되는 인물이다. 그는 아버지와 만나기로 한 부산 국제시장에 있는 고모가 운영하는 꽃분이네에 터를 잡고 나서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어머니와 동생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그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남은 가족들의 안위였다. 선장이 되고 싶은 자신의 꿈을 접으면서까지 그는 가족을 가장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책임감에는 자신에게 마지막까지 가족들을 잘 보살피라고 이르던 아버지의 말이 있었다. 그는 언젠가 만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아버지에게 자신이 지난 세월 동안 가족들을 잘 지켜냈노라고 말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하지만, 6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버지의 모습은 1950년에 멈춰 덕수의 기억에서도 흐릿해져가고 야속한 시간은 덕수를 덕수의 기억 속 아버지보다도 더 늙게 만든다. 덕수는 생의 마지막에서야 아버지를 놓는다. 동생 막순이를 찾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면서 말이다. 대신 이승이 아닌 다른 곳에서라도 아버지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다. 소설은 결국 덕수와 덕수의 아버지와의 만남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덕수가 가족들에게 보였던 희생을 통해, 덕수의 기억 속에 남겨진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아버지라는 존재는 함께 하든 하지 못하든 존재 자체만으로 가족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됨을 보여준다. 자신의 젊음을 저당잡혀도,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져도 가족이 우선인 우리네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가족이란 떨어져 있어도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게 되는 존재임을, 때로는 버거워도 외면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솔직히 상업성이 강한 작품이라 중간중간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었고, 스토리가 난잡하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중간중간 있었다. 대표적으로 시대적 웃음 코드로 청년 시절 정주영 회장과 앙드레김, 남진 등의 인물을 넣은 것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이러한 것들이 재미있게 다가왔지만 나중에는 소설 자체가 시트콤처럼 너무 가볍게 느껴지고 억지스럽게 느껴져 살짝 아쉬웠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에필로그로 이런 웃음 코드를 집어넣었던 게 생각이 나는데, 그때는 본 내용과 별개로 에필로그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질감이 덜한 반면, 이번 소설에서는 본 내용에 그러한 내용들이 나오니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국제시장>에서 그려질 아버지의 모습이 궁금했고, 기대를 많이 했기 때문에 이 부분만으로도 이 소설은 충분히 내게는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어느 집이든 사연이 다 있기 마련이고 집집마다 아버지의 모습이 다 다르지만, 특별한(?!) 아버지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아버지들은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며 젊은 날의 꿈과 패기를 가슴속 깊이 묻고 살아가리라 생각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의 희생을 당연시했던 내가 내 젊음이 저물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문득 아버지의 젊은 날에 대해 종종 생각해 본다. 과연, 아버지에게 지금의 삶이 꿈꾸던 삶이었을까, 아버지는 지금 그런 자신의 삶이 행복할까,라는 궁금증과 함께 말이다. 그래서 궁금했다. 아직 낯간지러워 직접 물을 수 없는 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을까 싶어서 말이다. 이 소설을 통해 비록 아버지에게 들은 완전한 대답은 아니지만, 적어도 덕수처럼 우리 아버지도 이 정도면 잘 살았다고 생각하시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아니 아버지 개인은 어떤지 몰라도 적어도 자식인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아버지셨고, 그 정도면 정말 잘 사신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걸 찾게 되는 것 같다.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감정적인 것이든. 소설 <국제시장>은 이 추운 겨울 가족들의 체온 혹은 가까운 사람의 - 덕수와 그의 친구 달구와 같은 - 체온을 느끼며 따뜻하게 보내게 해주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가 가기 전에 아버지 손 꼬옥 잡고 영화 <국제시장>도 보러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