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 욥기 43장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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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목양면 교회에서 일어난 방화 사건의 진범을 잡기 위한 탐문수사, 즉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다. 독자는 형사의 입장이 되어 각 인물들의 진술을 토대로 진범을 찾아 나서게 된다. 범인을 찾는 과정 뿐만 아니라 여러 인물들의 인터뷰 속 그들의 생생한 말투는 생동감 넘치고 찰지다. 특히 인터뷰의 내용이 자꾸만 산으로 가고, 동네 사람들에 관한 TMI를 전달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찌나 사실적인지. 다들 각자의 입장에서, 주관적으로 알고 있던 정보들과 경험한 일을 사실처럼 이야기를 하는데 마치 각자가 만지고 느낀 형태대로 코끼리를 설명하는 장님들 같아 웃프기만 하다.

우리나라에서 종교, 특히 기독교와 관련된 이야기는 매우 민감한 주제다. 그럼에도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라는 욥기 43장 통해 하나님을 인터뷰이로 등장시킨 작가의 패기(?)에 박수를 보낸다. 하나님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 인간적이며 진솔하다. 모호하고 도무지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들을 하며 계속 본인의 말을 들어보라고 하는 장면, 하나님 목소리가 안 들린다는 사람에게 '너도 혹시 누군가의 아버지냐'고 묻는 장면은 블랙 코미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하다. 특히 앞선 페이지에서 '아버지들은 아이 울음 소리를 못 듣는다'는 이야기가 나왔기에 더욱 날카롭게 웃긴다. 누군가에게는 신성 모독으로 다가올지도 모르지만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이 반영된 하나의 허구에 지나지 않으므로 민감하게 반응할 일은 아니다. 되려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현대판 ‘욥’ 의 모습을 통해 삶과 신, 혹은 종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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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 01: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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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취향 - 카피라이터 김민철의 취향 존중 에세이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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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이렇게 자연스럽게, 맛깔나게 글을 잘 쓰는지 깔깔 거리면서 읽다 보면 금세 마지막 장이다. 글을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작가가 눈 앞에서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이야기 더 듣고 싶은데 책은 왜 이렇게 얇게 만들었는지 뾰루퉁해 있다가도 자연스레 다시 책을 뒤적거리게 된다. 그녀가 언급했던 여행지나 술집을 메모장에 적어뒀다가 꼭 가보려고.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의 발자취를 더듬는 일은 묘하게 설레니까.

그럼에도 책을 읽다 보면 너무나 배가 아프다. 질투 쌤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다. 그녀의 삶은 어딘가 허술한듯 하면서도 만족감이 느껴진달까. 아무리 좋은 것을 보고, 먹고, 들어도 어딘가 늘 공허하고 부족하게 느끼는 우리의 불행함이 그녀에겐 보이지 않는다. 역시 행복은 일상의 소소한 것을 대하는 감사와 만족의 문제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잠들기 전 나의 취향들을 꼽아 본다. 퍽퍽한 하루 안에 나의 취향들을 녹여 나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행복한 순간들이 늘어나고 그런 순간들이 모여 행복한 하루들이 쌓여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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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에 다가가지 말 것
폴 맥어웬 지음, 조호근 옮김 / 허블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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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제 2차 세계 대전의 막바지, 일본과 미국의 위태로운 상황으로부터 시작된다. 과거의 악연은 현재로 이어지고, 매듭짓지 못 했던 사건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을 재현시킨다. 각종 생체 실험 등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던 일본의 731부대, 그들의 실험 자료를 건네받는 대가로 전범자들에게 면죄부를 준 미국, 한 때 일본의 피해자였으나 오랜 역사에 걸쳐 잔혹한 가해자로 군림해온 중국이 그 주인공들이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는 하나가 되어 평화를 노래하는 듯 했지만 각자의 논리와 이익에 따라 전쟁도 서슴치 않는 강대국들의 만행은 여전한 것 같다. 마치 그들이 평화의 수호자인냥 정의로운 가면을 쓴 채 더욱 은밀하고 위험한 형태로 소리없는 전쟁을 치루고 있다. 세계를 자신들의 발 밑에 두기 위해.

그래서 책을 덮고 나면 무거운 마음이 쉬이 가시질 않는다. 현재도 어디선가 생화학 무기들은 개발되고 있을 것이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각종 질병과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초소형 로봇을 접목시킨 전쟁 무기의 개발, 다양한 DNA 조작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변종 바이러스나 균 등. 책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과학적 장치들은 이미 충분히 개발이 진행되었다고 미디어에서 접한 것 같은 기시감이 든다. 특히나 글쓴이가 코넬 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덕분에 실험실의 최신 장비들과 실험 과정 등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어 더욱 흥미진진하고 현실적으로 읽힌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픽션인지 헷갈릴 정도로 쫀득쫀득한 sf 스릴러에 빠져들고 싶다면 후회하지 않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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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 모노클 시리즈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민경욱 옮김 / 노블마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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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에겐 도무지 기분 좋게, 혹은 사이다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운 책이다. 살인의 이유는 그렇다 쳐도 살인이 행해지는 과정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자의 태도가 몹시 낯설다. 특히 청부살인업자가 살인을 마친 뒤 연락책, 애인과 함께 맥주를 마시며 살인을 의뢰한 사람의 목적을 추리하는 장면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마치 평범한 일상을 마무리하는 듯한 분위기가 너무나 생경하다. 어떻게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일이 아주 쿨한 비지니스가 될 수 있는지 상상 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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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주인공의 청부살인에 대한 궤변도 받아들이기 역하다. 생명은 소중하기 때문에 누구도 쉽게 빼앗을 수 없다. 살인이 일상 다반사가 되면 생명은 가벼워 진다.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기 때문에 청부살인업자가 필요하다. 쉽게 빼앗을 수 없는 생명을 대신 빼앗아주는 전문직의 존재. 대체 어떤 전문직이 함부로 그 무거운 생명을 빼앗아도 되는건지, 전혀 논리적이지가 않다. 읽을수록 주인공이나 의뢰인들에게 공감하기 어렵다. 뭐 이런 무뢰한 같은 사람들이 다 있나 싶어서 섬뜩하고 두렵다. 신선한 소재임은 분명하지만 대체 무슨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목표였을까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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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책을 통해 배운 한 가지는 깊은 원한이나 증오를 가진 사람은 절대 청부살인업을 의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감정의 깊이 만큼 본인이 직접 살인을 저질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떤 사람이 청부살인을 원하는 걸까?? 딱히 감정적인 요소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죽이고자 하는 대상이 살아있을 경우 본인에게 중대한 불이익이 일어나는 사람이 청부살인을 의뢰한다. 참 경제적이고 이기적이고 역겨운 발상이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지만 이 책은 너무 도를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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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형사 부스지마 스토리콜렉터 64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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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문단과 출판계의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독자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더없이 지적이고 고상한 사람들이 모여있을 것 같았는데, 책의 첫장부터 절로 눈살을 찌뿌리게 만든다. 일반인들과 격이 다른 위대함과 고결함을 지녀 고독한 신진 작가들은 사실상 관종에 불과하며 무엇으로도 치료하기 힘들 창작가병을 앓고 있다. 편집가나 출판계의 인물들은 아주 이기적이고 계산적이며 교활하다. 본인이 다루는 작품의 예술성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판매 수익과 본인의 안위에만 관심이 있다. 그래서 작가들에게 비윤리적이고 소소한 범죄는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그럼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은 온전한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서평의 장을 감정의 쓰레기통 정도로 이용하며 내면의 분노와 한을 작가와 작품을 비방하는 원천으로 삼는 사람들, 각종 망상에 시달리며 작가를 스토킹하는 사람도 등장한다.

독자, 작가, 편집자, 프로듀서 등등 ‘책’ 을 중심으로 부도덕한 욕망이나 과도한 자의식을 가진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줌으로써 문단 및 출판 업계의 어두운 이면과 폭력성을 신랄하게 파헤친다. 특히 다소 소시오패스처럼 느껴지는 형사 겸 작가 부스지마의 냉소적인 시각을 통해 전해지는 웃픈 현실은 잘 만들어진 한 편의 블랙 코미디를 보는 듯 하다. 일본 소설 특유의 연극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는 듯한 등장 인물들의 언행이 현실감을 떨어뜨리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우리나라의 출판 업계에도 존재하는 문제들이 아닐까. 우리 나라에서도 평소 접하기 힘든 신비로운(?) 영역의 문단 및 출판계 이야기를 이처럼 흥미롭게 풀어낸 작품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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