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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모방범 - 전3권 - 개정판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5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미야베 미유키 작가를 검색하면 언제나 대표작으로 화차와 모방범이 등장한다. 화차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영화로도 제작되우 개봉되었기 때문에 미미 여사의 책 중 제일 먼저 접했던 책이다. 영화 역시 책 속에 담긴 우울함과 갑갑한 정서를 잘 담아냈지만 확실히 원작이 더욱 흥미롭고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게 해준다. 정체모를 음습함과 두려움이 압도적으로 전해진달까. 그래서 3권으로 이루어진 모방범에 대해 더욱 기대가 컸고, 몰아서 읽을 수 있을 때까지 꽁꽁 아껴 두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했지만 모방범의 경우 절대로 그렇지 않다. 탄탄하면서도 입체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뒷이야기가 궁금해 읽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든다. 한 권이 꽤 두꺼운 편이지만 세 권이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아쉽다는 느낌마저 든다.
책 속에는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첫 권을 읽을 때는 등장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헷갈리는 이름 덕에 여러번 앞페이지를 확인해야했다. 게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대체 어떻게 하나의 스토리 안으로 녹여낼 것인지 유치한 전개를 예측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마추어의 발상과는 달리 미미 여사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거대한 그림을 채워 나간다. 전혀 관련이 없을 인물들 간에 필연과도 같은 우연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 하나의 직물을 만드는 것이다. 그 만남과 이어짐이 작위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살면서 마주하는 그런 우연들처럼 아주 자연스럽다. 그래서 그들의 인생이 서로 얽히고 설키는 과정을 지켜 보면서 뜻밖의 일들로 채워지는 우리네의 세상살이나 인연 같은 것들에 대해 새삼 놀라게 된다. 우리들이 얼마나 한 사회라는 촘촘한 거미줄에 엮여 살아가고 있는 유기적인 존재인지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달까.
유례없는 지능적인 연쇄살인범의 출연 앞에서 사람들은 겁을 먹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한다. 모두 각자의 입장에 따라 같은 상황을 다르게 보고, 듣고, 해석한다. 연쇄살인범의 입장, 피해자의 입장, 피해자 유족의 입장, 가해자 가족의 입장, 언론과 경찰의 입장, 일반 대중들의 입장.. 사건과 관련되어 있거나 혹은 관심있게 지켜보는 거의 모든 이들의 생각과 감정이 세밀하게 묘사된다. 그들의 평범했던 일상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그리고 각자가 사건에 접근하고 해석해 나가는 과정들이 어떻게 다른지 보여준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전혀 산만하게, 혹은 엉뚱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모두가 나름의 개연성을 가지고 전개되고 이내 큰 그림으로 완성될 때 미미 여사의 능력에 전율하게 된다. 어째서 이 책이 미미 여사의 대표작으로써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지 격하게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다.
여전히 뉴스엔 여러 사건 사고들로 가득하다. 기괴하고 잔혹한 연쇄살인 역시 드문드문 등장해 시민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그럴 때 언론은 범인의 치밀한 계획이나 대범함, 그리고 사건의 개요와 수사 진행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게 된 배경이나 정신 분석 등을 우루루 쏟아내기에 바쁘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라 할지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또다른 사건 사고 뉴스들로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나마 근래에 들어서는 피해자 유족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치료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놓치고 있다. 어찌되었건 결국 범죄자 본인을 제외하면 피해자와 그 유족들, 그리고 가해자의 가족들 역시 모두가 그 범죄의 희생양이라는 것이다. 설령 범죄자들의 불우한 가정사가 원인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그 가정의 문제이지, 우리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그 주변에서 보고도 못 본체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지 않았을까. 그랬던 과거는 싹 잊어버린채 가해자가족들에게 책임을 추궁하거나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같은 범죄자 낙인을 찍어버리는 일은 정말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모방범을 읽어 나가면서 자칫 사건의 진실을 쫓는 것에만 급급해서 가해자나 피해자 가족들의 입장에 대해선 충분히 고려해보지 않았던 우리들의 과오에 대해서도 반성하게 된다. 항상 어떤 일을 대하든 넓은 시야를 가지고 다각도에서 생각해봐야함을 상기시키는 아주 훌륭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