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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날레 - 끝까지 강하고 자유로운 나
수전 구바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6월
평점 :
#협찬
📚 <피날레>
✨️ 나이 듦이 두렵지 않은, 멋진 할머니 예술가들의 대담한 인생 무대
"젊고 쌩쌩한 것만 대접받는 세상에서,
늙은 여자의 몸과 정신이 가진 진짜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알아채는 사람은 왜 이렇게 없을까요?"
솔직히 나이 든다는 생각을 하면 문득문득 무서워질 때가 있잖아요.
주위를 둘러봐도 나이 든 여성의 미래라고 하면
대개 초라하게 잊히거나, 기껏해야 TV 예능에 나오는
'귀엽고 무해한 욕쟁이 할머니' 같은
납작한 이미지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페미니즘 비평계의 전설적인 학자
수전 구바가 쓴 이 책은
그런 뻔하고 기분 나쁜 통념들을 아주 시원하게 부숴버려요.
카리스마가 뚝뚝 떨어지는 할머니 예술가들의
웅장한 말년 레전드를 보여주면서요.
사실 저자인 수전 구바 본인의 이야기부터가 무겁더라고요.
예순셋이라는 나이에 의사한테 난소암 진단을 받았는데,
길어봐야 5년 살 수 있다는 시한부 판정이 내렸거든요.
일련의 힘든 수술이랑 항암치료를 견디면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는데,
쇠약해진 몸으로 맞이한 그 뜻밖의 긴 시간이
작가한테는 너무 소중했던 거죠.
침대에 누워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억울하더래요.
'어떻게 해야 죽은 시체처럼 살지 않고,
내 삶의 진짜 주인으로서 끝의 끝까지 창조적으로 불태울 수 있을까?'
하는 처절한 질문이 터져 나온 거예요.
청소년기의 방황만큼이나 노년기라는 미지의 영역도
수많은 가능성이 숨어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죠.
그래서 이 작가님이 세상의 시선 따위 가볍게 씹어 먹고
자기만의 길을 걸어간 선배 할머니 예술가들을
집요하게 추적하기 시작해요.
조지 엘리엇, 조지아 오키프, 루이즈 부르주아, 캐서린 더넘 같은
멋진 언니들이 줄줄이 등장하는데요.
흥미로웠던 건, 남들은 보통 은퇴를 고민하거나 지난날을 후회하며 주저앉을
40대, 50대 나이에 이 할머니들은 오히려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면서
커리어를 더 크고 단단하게 키워나갔다는 사실이에요.
예를 들어 소설가 이자크 디네센은
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픈 고통 속에서도 음식을 포기할지언정
글 쓰는 건 멈추지 않았어요.
내가 고난에 두들겨 맞는 불쌍한 피해자가 아니라,
이 고난마저도 내 소설의 강렬한 소재로 써먹겠다는
무시무시한 선언이었던 거죠.
세계적인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의 이야기도 짜릿해요.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빙글빙글 도는 여자 조각상을 만들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겪는 육체적 쇠퇴나 세상의 모멸감 속에서도
"공중에 매달린 채로 용케 버텨내는 기술"을 연마하며
자신만의 완벽한 균형을 세상에 보여준 거에요.
상처를 예술로 완전히 승화시킨 거예요.
이 할머니들이 보여주는 노년은
쓸쓸함이나 고독이랑은 거리가 아주 멀어요.
나이가 들어서 문화의 중심부에서 밀려나는 걸
서글퍼하기는커녕 쿨하게 인정하면서도,
자연 속에서 깊은 위안을 찾고,
매일 아침 세상 돌아가는 최신 뉴스를 누구보다 바지런히 챙겨 읽어요.
게다가 무용가 캐서린 더넘처럼
집에 젊은 학생들을 잔뜩 불러 모아 밤새 토론하고 파티를 열며
프랑스의 카페 같은 근사한 살롱을 꾸리기도 하죠.
젊을 때부터 나이 들어서 어떻게 살아갈지 지속 가능한 생활 방식을
아주 똑똑하고 치밀하게 준비해 둔 덕분이에요.
끝까지 팽팽한 기개와 서늘한 긴장감을 잃지 않고
'자유로운 나'로 당당하게 살다 간 이들의
울퉁불퉁한 인생 궤적을 읽다 보니까 가슴속에서
뜨거운 에너지가 훅 올라오더라고요.
나이 듦이라는 게 인생의 초라한 퇴장이나 브레이크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가장 완벽하게 완성하는
화려한 독무대의 피날레가 될 수 있다는 걸
아주 멋지게 증명해 주는 책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