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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읽고 말하다
아사쿠라 가스미 지음, 전화윤 옮김 / 현암사 / 2026년 7월
평점 :
#협찬
📚 <읽고 읽고 말하다>
☕ 평균 나이 85세! 어디로 튈지 모르는
'초고령 독서모임'의 유쾌한 반란
소설이나 뉴스에 나오는 노년 이야기라고 하면
괜히 짠하고 아련하거나,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쓸쓸한 그림부터 떠오르잖아요.
하지만 아사쿠라 가스미의 <읽고 읽고 말하다>에 나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아주 딴판이에요.
오타루의 낡은 카페 '시트론'에는
매달 첫 번째 금요일마다평균 나이 85세,
최고령 92세에 달하는 노인 여섯 명이 모여들어요.
지병 한두 개쯤은 가볍게 탑재하고,
남의 말은 귓등으로 들으며 자기 할 말만 와다다 쏟아내는
'언덕 중간에서 책을 읽는 모임'
이 범상치 않은 모임의 20주년 막이 드디어 올라가요.
📖 길을 잃은 청년, 엇박자 노년의 세계에 스며들다
소설 한 줄 쓰지 못해 슬럼프의 늪에 빠져 있던
스물여덟 살의 카페 점장 야스다.
그는 얼떨결에 이 엉뚱한 독서모임의 회원,
아니 명예고문이자 서기, 심지어 20주년 행사의
책임자 자리까지 덜컥 맡게돼요.
처음엔 그야말로 통제 불능이었죠.
귀는 어둡고 행동은 느릿느릿한 노인들이
제각각 자기 이야기만 퍼붓는 통에,
모임은 대화라기보다 뒤죽박죽 소음에 가까웠으니까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한 권의 책을 차례로 소리 내어 읽는
'낭독'이 시작되는 순간,
장내의 공기가 바뀌기 시작해요.
책 속 문장 하나가
까마득한 옛 사랑의 기억을 환하게 불러내고,
나지막한 목소리 사이로 가슴 깊이 묻어둔
후회나 두려움이 살며시 고개를 들어요.
이야기가 먼 길을 떠난 가족이나
젊은 날의 엉뚱한 선택으로 툭툭 새어나가도
누구 하나 잘난 척 훈수 두지 않아요.
그저 깔깔거리며 신나게 추임새를 넣고,
서로의 인생에 깊게 감응할 뿐이에요.
누군가의 부모나 배우자라는 계급장을 떼고
오롯이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시간.
실제 작가가 자신의 어머니가 독서모임만 가면
눈을 반짝이며 딴사람이 되는 모습에서
착안했다는 이 모임 안에서,
노년들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마음껏 자기 숨을 쉬어가요.
📖 보통 독서나 나이 듦을 다룬 책을 집어 들면
왠지 모르게 숙연해지거나
철학적인 생각에 빠져야 할 것 같잖아요.
그런데 이 책은 읽는 내내 시트론 카페 한구석에
슬쩍 앉아 노어르신들의 수다에 낄낄거리는 기분이 들어요.
매달 지병 고백으로 안부를 대신하고,
남의 말은 시원하게 씹으면서 자기 이야기 퍼붓기 바쁜
어르신들을 보고 있으면
"나이 들어서도 저렇게 해맑게 뻔뻔하고 즐거울 수 있구나!"
싶어서 절로 웃음이 터져요.
슬럼프에 팍 찌들어 있던 야스다가
이 고집스럽고 다정한 할매, 할배들 페이스에
휘말려 들어가는 과정이 진짜 별미에요.
혼자 골방에 갇혀 고민할 땐
세상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진 것 같았을 텐데,
인생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르신들이 낭독 한 줄에
울고 웃으며 덤덤하게 옛날이야기를 풀어놓는 걸 보면서
자기 마음의 문도 슬그머니 열게 되거든요.
타인의 삶을 가만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내 안의 막힌 혈이 뻥 뚫릴 수 있다는 걸 시원하게 보여줘요.
내년엔 어떻게 될지, 당장 내일은 또 어떨지
장담할 수 없는 85세의 삶이지만,
"다음 달 첫 번째 금요일에 카페에서 만나!"라는
이 약속 하나로
매일을 눈부시게 살아내는 모습이 정겨웠어요.
완벽하게 준비된 삶 같은 건 없으니,
그저 좋아하는 책 한 권 들고 만날 사람만 있다면
인생은 얼마든지 재미있어질 수 있다는
유쾌한 용기를 얹어주는 이야기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