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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여행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50
로런스 스턴 지음, 김정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5월
평점 :
#협찬
📚 <감성 여행>
✨️ 여권도 없이 홧김에 떠난,
어느 찌질하고 다정한 인간의 좌충우돌 프랑스 표류기
"프랑스에 가 보신 적이 있나요?"
하인이 옆에서 던진 이 말 한마디에 갑자기 욱해가지고,
여권도 없이 훌쩍 프랑스행 배를 타버린 남자가 있어요.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 '요릭'인데요,
하는 짓을 옆에서 지켜보면 진짜 골 때리면서도
미워할 수가 없는 인간이에요 🤭
프랑스 땅에 도착하자마자 자기를 찾아온
가난한 탁발 수도승한테 "줄 돈 없다"면서
매몰차게 모욕을 주거든요?
그래놓고 돌아서자마자 가슴을 치며 후회해요.
게다가 자기가 길에서 보고 첫눈에 반한 예쁜 숙녀한테
혹시라도 '수도승이나 괴롭히는 못된 인간'으로 찍힐까 봐
혼자 발을 동동 구르고 전전긍긍해요.
그 수도승을 헐레벌떡 다시 찾아가서 미안하다며
자기 담뱃갑이랑 수도승의 담뱃갑을 맞교환하며
황급히 화해를 청하는 식이에요.
여권도 없이 국경을 넘은 탓에
프랑스 경찰관이 호텔까지 들이닥쳐서
추적당하는 일촉즉발의 위기도 겪는데요.
이것도 셰익스피어 덕후인 어느 백작을 만나서
엄청난 말빨과 유머로 위기를 은근슬쩍 넘겨버려요.
소설 마지막에는 처음 보는 숙녀 일행이랑
얼떨결에 같은 방을 쓰게 되면서
좁은 방 안에서 침대를 사이에 두고
황당한 말다툼을 벌이기까지 해요.
겉보기엔 진짜 대책 없고 유쾌한 시트콤 같은
시골 쥐의 대도시 유람기 같죠?
하지만 이 책이 쓰인 진짜 배경을 알고 나면
코끝이 찡해져요.
포스트모던 문학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거장
로런스 스턴이 폐결핵으로 죽음을 바로 눈앞에 두고,
유언처럼 영혼을 영끌해서 써 내려간
마지막 역작이거든요.
평생 지독한 가난과 병약한 목사라는 무거운 멍에를
짊어졌던 작가는, 이 소설을 집필하면서
친구들에게 "나의 구원의 작품"이라고 불렀어요.
아쉽게도 2권까지 딱 쓰고 얼마 안 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미완성으로 남았지만,
그가 죽기 직전 세상에 꼭 남기고 싶었던
진짜 인간미가 여기 다 들어있어요.
당시 유럽 신사들 사이에서는 대륙 유람을 하고 와서
'내가 이런 멋진 유적지를 봤고, 이런 지식을 배웠다'며
엣지 있게 자랑하는 여행기를 쓰는 게 유행이었는데요.
이 책은 완전히 딴판이에요.
요릭은 여행지에서 만나는 낯선 타자들과 부딪히며
시시각각 찌질하게 흔들리는 자기 감정을
날것 그대로 솔직하게 보여줘요.
슬피 우는 여인을 만나면 손수건을 꺼내
같이 눈물을 번갈아 닦아주고,
극장에서 누군가 난처한 상황에 처한 걸 보면
자기 일도 아닌데 혼자 안절부절못해요.
도덕적으로 완벽한 척 폼 잡는 위선자들 사이에서,
실수투성이에 엉뚱하지만 양심이 따끈하게 살아있는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정직하게 묘사한 거죠.
니체는 이 책을 쓴 로런스 스턴을 두고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세상이 정해놓은 무거운 편견과 규칙에서 벗어나,
그저 사람과 사람이 가슴으로 부딪히며 마음을 나누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보여주니까요.
팍팍하고 계산적인 세상 속에서 시들어가는 내 양심을
기분 좋게 깨우고, 타인을 향해 뾰족하게 세우고 있던
마음의 벽을 말랑하게 녹여줄
유쾌한 희극 정신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을 때
긴 여운을 느끼며 읽기 딱 좋은 클래식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