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구독해주세요
정태화 지음 / 더블북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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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더블북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아버지를 구독해주세요>


세상은 때로 한 사람의 유튜브로 요동친다.
무대조명 대신 햇볕이 쏟아지는 시골 마당
카메라 앞에 선 노인의 얼굴은
화려하지 않지만 눈을 붙든다.
한때 아버지였던 사람, 이제는 조회수를 가진 사람.
아들은 그 숫자 속에서 벗어날 길을 찾고
딸은 부양의 무게를 덜 궁리한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찾아 헤매는 건
돈도, 명예도 아닌 오래전 흩어진 ‘우리’라는 이름이다.
아버지의 몸짓이 웃음을 주고
그 웃음이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그 틈에서 가족이 다시 얼굴을 맞댄다.
서툴고 어색한 재회, 그러나 그 속에 남은 따뜻함.
이 책은 유튜브라는 낯선 무대 위에서
가족이라는 가장 낡은 무대가 다시 살아나는 장면을 보여준다.


📖 책을 읽고 나서


늙은 남자가 있었다.
세상의 뒷면으로 미끄러져 내려간 사람
이름보다 주름이 먼저 보이는 얼굴
하루의 무게가 밥 한 끼에 고스란히 실리는 삶
그렇게 사라져가던 그가 어느 날 화면 속에서 다시 깨어났다.
우연처럼 찍힌 영상 하나가 그를 세상 앞으로 밀어올렸고
사람들은 웃었고
그 웃음 속에서 낡은 인생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낯선 수천 명의 눈이 그를 본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좋아하고 좋아하면서도 비웃는 시선들.
그는 그 시선의 뜻을 끝내 알지 못한 채
그저 카메라를 향해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도시의 실패 속에 웅크린 아들이 있었다.
삶이 뒤집히고 자존심이 바닥에 닿은 채
다시 일어날 이유를 찾지 못하던 사람.
그러나 화면 속에서 춤추는 아버지를 보고 생기가 돌았다.
그것은 희망이라기보다 한탕의 냄새였고
사랑이라기보다 거래의 욕망이었다.
자신이 이용하려는 사람을 동시에 동경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아버지의 웃음을 팔아서라도
세상에 다시 이름을 올리고 싶었지만
그 웃음이 진짜였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닫는다.
사람의 욕망은 늘 그렇게 늦게 뒤늦게 자신을 따라잡는다.

딸은 현실에 갇혀 있었다.
손끝까지 피로한 사람
아버지를 향한 마음보다 숫자와 청구서가 먼저 떠오르는 삶
부양이라는 말이 사랑의 반대말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그녀는 자신이 나쁜 딸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아버지를 재혼시키려 했고 스스로의 짐을 덜려 했다.
어느 날 낯선 화면 속에서 웃는 그의 얼굴을 보고 멈춰섰다.
자신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 얼굴
생의 막다른 길에서 스스로 다시 일어나는 사람의 얼굴
그 얼굴을 보고서야 그녀는 알았다.
오래 미뤄둔 사랑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무대는 시골의 마당.
땅의 냄새와 먼지가 어우러진 곳
조명 대신 햇빛이 쏟아지고 박수 대신 닭 울음이 배경이 되는 곳
거기서 그는 춤을 배웠다.
아이돌의 리듬에 맞춰 손발을 어설프게 맞추며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아무도 원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세상에 증명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우스꽝스럽기도 했지만 경건했다.
스스로를 다시 세우는 일은
언제나 그렇게 어색하고 불완전한 법이다.

시간이 지나 구독자 수가 늘고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짧게 기억했다.
하지만 그의 하루는 전과 다르지 않았다.
밥을 짓고 문을 닫고 밤이 오면 불을 끈다.
그 모든 단조로움 속에서 그는 평온했다.
유명해진 것도, 잊히는 것도 이제는 그에게 같은 일이었다.
그는 그저 살아 있었다.
살아 있다는 건 여전히 누군가를 기다리고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뜻이니까.

이야기의 끝은 어떤 화해도 눈물도 없다.
다만 한 가족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한순간이 있다.
말없이 함께 앉아 있고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서로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것이 이해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라는 것을 안다.
인생이란 언제나 그렇게 늦게야 닿는다.
미안하다는 말이 입을 떠나기도 전에 시간이 지나가고
사랑한다는 말은 늘 그보다 한 박자 느리게 도착한다.
하지만 늦게 도착한 말도 여전히 말이 된다.
사람은 그런 식으로 서로를 배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사람들은 잊혀지고
모든 것이 사라져도 남는 건 미세한 움직임이다.
누군가의 어깨가 조금 들썩이는 것
오래된 웃음이 다시 입술에 걸리는 것
그 작고 하찮은 순간들이 인생을 다시 움직인다.
그는 그 움직임으로 살아 있었다.
구경거리가 아닌 존재로, 실패가 아닌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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