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쳐가고 있는 기후과학자입니다 - 기후 붕괴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
케이트 마블 지음, 송섬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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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웅진지식하우스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나는 미쳐가고 있는 기후과학자입니다>


세상이 천천히 타들어간다.
하늘이 붉게 변하고 바다는 숨을 고른다.
그 장면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그는 연구자가 아니라 지구라는 생명을 지켜보는 증인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재난의 미래를 계산하면서도
그 안에서 사랑을 잃지 않는 사람.

숫자와 데이터가 아니라 마음으로 쓴 보고서.
기후를 연구하던 과학자가 어느 날 펜을 들고
그래프 대신 문장을 그리기 시작했다.
냉정해야 하는 직업 속에서 울어버린 사람의 기록
세계가 무너지는 장면을 버티며 남긴 감정의 잔해.

그는 분노했다. 울었다. 또다시 사랑했다.
그리고 말했다.
“지구는 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변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저는 미친 과학자니까요.”

망하는 세상에서 사랑을 말하는 법.
그것이 이 책이다.


📖 책을 읽고 나서


세상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무너지고 있었다.
거대한 폭발음이나 경고도 없었다.
그저 하늘의 색이 조금씩 바래고
바다의 밀도가 느리게 변하며
대기의 흐름이 예전과 다르게 움직였다.
사람들은 그 변화를 눈으로 보았지만 쉽게 믿지 않았다.
그것이 재난인지 순환인지, 인간의 탓인지 자연의 일인지
아무도 명확히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느린 파괴의 한가운데에서
여전히 누군가는 기록하고 있었다.
매일같이 숫자를 세고, 변화를 계산하고
그 결과를 문장으로 옮기는 사람.
세계가 기울어 가는 동안에도
냉정한 눈으로 남아 있으려 했던 사람.
그리고 마침내
그 냉정함마저 무너지는 순간을 정직하게 받아들인 사람.

기후를 다루는 일은 언제나 예측과 오차의 경계에 있었다.
과학자들은 데이터를 다루면서도
그 데이터 안에 인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걸 안다.
연구는 객관을 향하지만
연구자 자신은 그 객관 속에서 가장 인간적인 감정에 휩쓸린다.
케이트 마블은 그 모순을 외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자신이 매일 시뮬레이션하던 지구의 붕괴를
더 이상 ‘현상’으로 보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의 선택이었고 우리가 만들어낸 운명이었다.
그는 그래프의 선들이 울고 있다는 걸 보았다.
불타는 숲, 잠긴 도시, 사라진 종의 흔적이 숫자로 남아 있었다.
그 냉정한 숫자들을 직면하는 일은
곧 죄책감과 마주하는 일이었다.

그의 분노는 세상에 대한 절규이기보다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에 가까웠다.
연구를 계속한다는 것은 파괴의 현장을 지켜보면서도
그 안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 일이다.
그는 말없이 분노했고 묵묵히 죄책감을 기록했다.
거짓말로 시간을 벌어온 기업들, 무책임한 정치
그리고 그 안에서 침묵해온 자신까지.
그러나 분노는 그를 마비시키지 않았다.
분노는 행동으로 바뀌었다.
그는 글을 썼고 그 글 속에서 세상을 잃어가는 감정을 정리했다.

세상이 망해간다는 생각은
그에게 포기의 이유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끝을 본다는 것은 시작을
새로 쓰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걸 그는 알았다.
불타는 땅에서도 싹은 돋고
침수된 도시에서도 새들이 날아왔다.
인간이 만든 재앙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사랑을 했다.
그는 그 사실을 믿었다.
그것이 과학보다 확실한 진실이라고 믿었다.

그는 희망이란 살아 있는 증거라고 말한다.
불가능을 알면서도 행동하는 사람들
실패를 예감하면서도 손을 내미는 사람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
그 느리고 불완전한 반복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실험이다.
기후를 되돌리는 일도, 세상을 다시 만드는 일도
누군가의 구원이 아니라
모두의 버팀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걸 그는 안다.

그래서 그는 계산을 멈추지 않았다.
그 계산은 세계의 잔해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움직임을 찾아내기 위한 일이었다.
그는 과학자로 남았지만 동시에 증언자로 서 있었다.
지구의 종말을 시뮬레이션하면서도
여전히 사랑을 기록하는 사람
파괴의 현장을 분석하면서도
끝내 인간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
세계가 꺼져가더라도
그 안에서 한 문장이라도 남길 수 있다면
그 문장이 곧 생존이라고 믿은 사람.

망할 세상이라 해도
인간은 여전히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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