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들녘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노년이란 무엇인가>한 사람의 생에는 몇 번의 저녁이 있다.하루의 끝이 아닌 삶의 저녁.그곳엔 소음이 가라앉은 대지처럼아직 덜 식은 체온과 오래 쌓인 그림자가 공존한다.<노년이란 무엇인가>는 그 저녁을 바라보는 시선의 기록이다.누군가의 끝이 아니라 다시 걷기 시작한 발자국처럼.힘을 덜어낸 문장들이 묵묵히 이어지고그 안에서 노년은 병의 이름도, 약속의 형태도 아니다.그저 한 생이 남긴 여백처럼 존재 그 자체로 놓인다.시간이 사람을 낡게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을저자는 삶의 이면에서 오래 증명해온 듯하다.‘잘 늙는 법’을 말하지 않고 ‘그저 살아 있는 법’을 적는다.노년을 다루면서도 젊음보다 더 젊은 문장으로.그 반전이 이 책의 가장 따뜻한 진심처럼 느껴진다.📖 책을 읽고 나서 노년이라는 단어는 오래된 벽지처럼 낡았지만그 위에 새로 덧칠된 시대의 색은 유난히 번쩍인다. ‘건강한 노인’, ‘성공하는 노년’, ‘멋진 시니어’ 같은 말들이 여기저기서 반짝이며 삶의 끝을 또 하나의 경쟁의 무대로 바꾸어놓았다. 그 말들은 오래된 주름에 새 생명을 불어넣겠다고 하지만정작 그 주름이 품은 시간의 향기를 지워버린다. 이 책은 그 지워진 자리에 다시 사람의 얼굴을 가져다 놓는다. 누구의 삶도 수치로만 재단될 수 없고늙음은 결코 어떤 형용사로 완성될 수 없다는 걸 일러준다.우리가 늙는다는 건 단지 나이를 더하는 일이 아니라점점 ‘인간’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젊음의 시간에는 사회가 정한 이름들을 받아들이느라 정신이 없다. 학생, 직장인, 부모, 구성원 같은 말들 속에서 자신을 찾으려다 길을 잃는다. 그러나 노년은 그 모든 이름이 하나씩 벗겨지는 시기다. 세상이 요구한 역할이 사라지고 나면남는 것은 더 단순한 존재의 형태다.이름 없이도 살아 있을 수 있는 사람꾸미지 않아도 괜찮은 얼굴침묵 속에서도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는 마음. 그런 사람에게서 나는 빛을 본다. 그것은 젊음의 빛보다 훨씬 은은하다.책 속의 사상가들은 저마다 다른 언어로 같은 말을 건넨다.“잘 산 사람이 잘 죽는다.”그 문장은 처음엔 지나치게 당연해 보여서 아무 감흥이 없었다.페이지를 덮을 무렵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잘 산다는 건 무엇일까.아마도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않는 일일 것이다.노년은 그 거짓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기다.젊을 때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늘 줄다리기를 했다면노년에는 하고 싶었던 일조차 잊은 채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그때 ‘잘 산다’는 말은 외부의 평가가 아니라내가 나를 납득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남는다.노년을 생각하면 늘 회색빛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다.쇠락, 병, 고독 같은 단어들이 뒤엉켜 있었다.노년은 멈춤이 아니라 전환의 시간이다.삶이 가진 방향이 바깥이 아니라 안으로 향하는 시간.젊음이 세상과 부딪치며 자기를 세웠다면노년은 세상을 끌어안으며 자신을 허문다.살아온 모든 계절이 한 사람 안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머무는 순간 그것을 우리는 늙음이라 부른다.이 책을 읽고 나면 노년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삶을 오늘로 압축해 보면노년은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다.후회와 망설임, 작은 기쁨과 느린 체념이 공존하는 그 마음의 시간 속에서우리는 조금씩 늙고 있다.그 늙음이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하루를 온전히 사는 또 하나의 이름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