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던 색
추설 지음 / 모모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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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를 통해 모모북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세상에 없던 색>


두 사람 사이에는 색이 있었다.
그 색은 이름을 가질 수 없었고
어떤 언어로도 완전히 닿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서로의 눈을 마주한 순간
그 색이 자신들의 것임을 알았다.

이틀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낯선 도시, 다른 언어, 어색한 공기 속에서
두 사람은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그 길 위에서 세상은 잠시 멈춰 있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동안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를 잊었다.
남은 것은 서로의 존재뿐이었다.

<세상에 없던 색>은 그런 만남의 기록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묻지 않아도
그들은 이미 대답 안에 있었다.


📖 책을 읽고 나서


사람과 사람이 마주 보는 순간에는
언제나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말보다 먼저 다가오고
이름조차 없이 마음의 표면을 스쳐 지나간다.
시간은 그때부터 조금씩 비틀리고
존재들은 서로를 향해 자신이 가진 빛을 다르게 쏟아낸다.
그렇게 어떤 감정은 이름 붙이기도 전에 시작되고
또 다 말하기도 전에 사라진다.

사람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사소한 진동이 일어난다.
그 누구도 그 떨림을 정확히 짚어낼 수 없다.
그 진동이 한 사람의 하루를 바꾸고
어떤 이는 그 하루를 평생 기억한다.
모든 관계의 시작에는 그런 짧은 순간이 숨어 있다.
거리의 불빛이 바람에 흔들리듯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이의 존재에 닿는다.

세상은 그런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언어가 닿지 않는 순간
마음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
우리는 삶을 새로 배운다.
흘러가는 사람들 속에서
한 사람만이 특별해지는 그 찰나의 구조는
언제나 불합리하고 그래서 더욱 인간적이다.
사람은 계산되지 않은 일들 앞에서만 진심이 된다.
마음이란 본래 방향을 갖지 않고 흩어지는 것인데
그 흩어짐이 한 점으로 모이는 순간이 있다.
그것이 사랑이라 불리기도 하고 운명이라 불리기도 한다.

만남이란 서로의 다름을 견디는 일에 더 가깝다.
상대의 언어에 자신을 억지로 맞추기보다
그 언어를 이해하려는 쪽이 먼저 변한다.
그렇게 세계는 조금씩 섞이고
그 사이에서 전혀 다른 색이 태어난다.
그것은 누구의 것도 아니며 한쪽이 주도하지도 않는다.
두 존재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로서 남는다.
그렇게 한 사람의 세계가 조금씩 넓어진다.

사람은 늘 같은 이유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어떤 사랑은 익숙함에서 자라나고
어떤 사랑은 낯섦에서 시작된다.
때로는 그 낯섦이 사람을 안전하게 만든다.
이해되지 않는 말투나 전혀 다른 습관이
서로를 향한 다리를 놓는다.
같은 언어보다 더 강한 연결은
종종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만들어진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미완의 존재인지 깨닫는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감정은 형태를 잃는다.
그러나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형태 없는 감정은 오히려 깊숙한 곳으로 스며들어
살아가는 방식이 되고, 말투가 되고, 시선의 방향이 된다.
사랑이 끝난 뒤에도 남아 있는 그 잔여의 세계는
사랑이 지속되었다는 증거다.
사람은 흔히 이별을 잃음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변화에 가깝다.
어떤 관계는 멀어지면서 완성된다.
서로가 사라져도 그때의 마음이
한 사람의 생에 구조를 남긴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사람이 사람을 떠올릴 때 그 기억은 늘 빛을 달리한다.
어떤 날에는 뿌연 유리처럼 희미하고
또 어떤 날에는 창문을 열면 바로 앞에 있는 듯 선명하다.
그러나 그 차이는 지금의 나와
그때의 나 사이의 거리일 뿐이다.
그 거리가 멀어질수록 사람은 더 타인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리움은 목소리가 아니라 그림자에 가깝다.
말을 걸지 않아도 존재하는 언젠가의 잔상 같은 것.

사랑은 완결되지 않는다.
하나의 시작이자 끝나지 않는 문장처럼 남는다.
말로는 다 표현되지 않고 설명할수록 멀어지는 세계다.
그렇기에 사람은 여전히 사랑을 쓴다.
끝나지 않은 문장을 완성하려는 듯
혹은 이미 완성된 문장을 지우지 못하는 듯.
그 쓰기의 반복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자신을 알아간다.

사랑이란 기억이 아니라 문체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그 변형을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한때의 감정이 지금의 자신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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