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다 - 걷지 않는 인간은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가
이케다 미쓰후미 지음, 하진수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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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더퀘스트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걷는다>


걷는다는 건 오래된 언어 같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끝까지 말하지 못한 말.
몸이 기억하고, 땅이 받아들이고 마음이 따라가는 문장.

이 책은 그런 언어를 다시 꺼내는 시도다.
도시의 아스팔트 위에서
회사의 회의실에서
혹은 아무 생각 없는 하루의 오후에
걷는다는 행위가 우리를 얼마나 인간답게 만들었는지,
그 사실을 잊고 살아온 이들에게 건네는 이야기다.

발끝의 움직임이 곧 뇌의 언어가 되고
걷는 자의 리듬이 도시의 맥박이 되며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생으로 이어진다.
이 책은 그 단순한 사실을 잊지 않으려는 한 사람의 기록이다.


📖 책을 읽고 나서


길에는 이름이 없다.
그저 이어질 뿐이다.
나는 그 길 위를 걸으며 오래된 리듬을 배웠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알고
그 몸보다 마음이 더 앞서 있었다.
걸음마다 남는 자국은 흙 위의 흔적이 아니라
나라는 생의 맥박이었다.

처음엔 그냥 나아가는 일이었다.
그저 어딘가로 향한다는 감각이 좋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발이 나를 이끌고 있다는 걸 알았다.
머리는 멈춰 있었고 몸은 계속 나아갔다.
멈추려 하면 바람이 등을 밀었고
그 바람 속에서 나는 방향을 잃은 채 방향을 얻었다.
걷는다는 건 그런 일이었다.
잃고 또 얻는 일.

도시의 골목을 지나며 나는 여러 번 멈춰 섰다.
빛이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양이 예뻐서
누군가 지나가다 남긴 발소리가 낯설어서
어쩐지 그 모든 게 나를 부르는 듯해서.
걷는 동안 나는 내 안의 수많은 나를 만났다.
서두르던 나, 잊힌 나, 돌아가고 싶은 나.
그들이 한 줄로 서서 나와 함께 걸었다.

걸음이 쌓이면 생각이 가벼워진다.
말로는 닿지 않던 마음이 길 위에서는 조금씩 풀린다.
그 느슨함 속에서 세상은 다정해지고
내 안의 소음도 차츰 잦아든다.
무엇이 옳은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런 건 걷는 동안엔 중요하지 않았다.
발이 닿는 곳이 곧 지금의 자리였다.

세상의 모든 답은 발의 높이쯤에 있다.
허리를 숙이면 보인다.
흙, 돌기, 풀잎, 그리고 그 위에 서 있는 나.
모두가 같은 대지 위에 있었다.
누구의 것도 아닌 누구에게나 열린 땅 위에서
나는 ‘살고 있다’는 감각을 되찾았다.

걷는다는 건 완전한 일이 아니다.
한쪽이 앞서면 다른 한쪽은 뒤에 남고
그 불균형 속에서 생이 만들어진다.
균형을 잡으려 애쓰면서
나는 내 안의 중심을 느꼈다.
존재의 중심이었다.

나는 걷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도착보다 과정에 귀 기울이는 사람
속도보다 방향을 믿는 사람.
걷는 동안 세상은 잠시 멈추고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다시 모든걸 배운다.

길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세상 끝에도 하루의 끝에도.
그저 내가 다시 발을 내딛기만 하면 된다.
그때마다 세계는 여전히 나를 맞이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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