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이 건넨 말들 - 신과 인간, 사막과 문명으로 이어지는 중동 인문 기행
백정순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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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초록비책공방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중동이 건넨 말들>


한 사람의 걸음이 하나의 문명과 맞닿는다는 것은
오래된 언어가 다시 깨어나는 일과도 같다.
바람이 불어오면 모래 위의 발자국이 사라지듯
인간이 남긴 흔적도 그렇게 사라져 간다.
하지만 그 사라짐 속에 남는 건
언제나 삶의 모양이었다.
사막 위를 걸으며 저자는 돌과 흙
빛과 어둠으로 쌓인 시간을 바라본다.
신의 언어가 깃든 유적과
그 언어를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문명은 여전히 살아 있다.
바벨탑의 욕망과 피라미드의 믿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두바이까지.
한 문명의 찬란함은 언제나
인간의 손에서 시작되었고
그 끝에는 늘 신의 그림자가 있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모래에 스며든 물소리처럼
느리게 이해되는 것들이 있다.
그 모든 장면을 따라 걸으며
저자는 한 가지 사실을 기록한다.
인간은 언제나 무언가를 향해
길을 내는 존재라는 것을.


📖 책을 읽고 나서


사막은 언제나 문명의 시작을 닮았다.
모래 위에 남은 발자국은 이내 바람에 지워지지만
그 자취 속에서 인간은 자신이 흘러온 길을 더듬는다.
뜨거운 낮과 차가운 밤 사이
무한한 시간의 숨결이 머무는 곳에서
문명은 스스로의 그림자를 마주한다.
신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가 처음 섞였던 자리
중동은 그 기억을 품고 있다.
그곳에서는 모든 질문이 너무 오래되어
오히려 새로운 답처럼 들린다.

바람은 신드바드의 항해를 따라 흐른다.
인간이 바다에 몸을 맡겼던 이유는
미지의 땅을 향한 욕망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알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바다는 언제나 인간을 시험했고
항해는 그 시험에 대한 오래된 대답이었다.
모험은 존재를 확인하는 의식이었다.

도시는 늘 문명의 욕망으로 빚어진다.
두바이의 하늘을 찌르는 빌딩들은
자본의 탑이자 인간의 기억이다.
바벨탑과 피라미드, 그 긴 역사 속에
사람들은 신에게 다가가려 애쓰며
동시에 자신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탑이 높아질수록 그림자는 길어졌다.
인간이 만든 탑은 하늘을 닮고 싶었던
인간의 마음 그 자체였다.
신을 향한 손짓이면서
자신을 잃어버릴까 두려운 이의 몸짓이었다.

문명은 서로의 경계를 넘어 피어난다.
하기아 소피아의 돔 아래엔
수천 년의 기도가 켜켜이 쌓여 있다.
비잔틴의 빛과 오스만의 그림자가
한 건축물 안에서 공존한다는 건
얼마나 고요한 기적인가.
정복은 흔히 파괴를 동반하지만
진짜 문명은 다름을 품을 때 살아남는다.
허물지 않고 받아들이는 일
그 안에서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일.
그것이야말로 문명이 인간에게 배운 예의였다.

비블로스의 항구에는
문자가 태어나던 바람이 아직 남아 있다.
자음들이 모여 세상을 움직였고
그 흔적이 오늘의 언어가 되었다.
문명의 민주화란 결국 말의 공유였을 것이다.
말은 지배의 수단이 아니라 연결의 증거였다.
이름을 붙이고, 남기고, 이어가며
인간은 세상과 자신을 동시에 기록했다.
그 모든 시작이 바다의 소금 냄새와
함께 있었다는 것이 위로처럼 느껴진다.

라마단의 시간은 절제의 시간이자 기다림의 시간이다.
먹지 않고 마시지 않으며
인간은 자신이 무엇으로 살아가는지를 묻는다.
금식은 존재의 회복이다.
멈춤 속에서 느껴지는 생명.
신과 인간이 서로를 닮게 만드는 순간이다.
사막의 낮처럼 뜨겁고
밤처럼 차가운 그 시간 속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비워내며 다시 태어난다.

중동의 풍경은 늘 역설로 이루어진다.
모래 위의 신전과 유리로 지어진 도시
절제와 욕망, 전쟁과 기도.
그 모든 대립이 뒤섞여
이곳은 여전히 살아 있는 문명으로 숨 쉰다.
신과 인간의 거리가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땅.
그 모순이야말로 인간의 조건이자 문명의 본질이다.

사막의 끝에서 떠오르는 해는
어제와 다르지 않지만
바라보는 이의 마음만은 매일 새로워진다.
그 빛 아래에서 문명은 다시 시작된다.
신의 언어가 바람에 스치고
인간의 말이 모래 위에 흩어진다.
모든 것은 지나가지만
지나간 자리마다 인간의 발자국이 남는다.
그 발자국이 문명이고 그 문명이 곧 인간의 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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