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황제
셀마 라겔뢰프 지음, 안종현 옮김 / 다반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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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 를 통해 다반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포르투갈 황제>


사람은 믿는 대상을 닮아간다.
얀은 현실보다 마음을 믿었다.
그 믿음은 제국이 되었고 딸은 그 안에서 여왕이 되었다.
세상은 그를 미쳤다 말했지만 가장 이성적인 건 그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상실을 견디지 않았다.
그저 그것을 다른 형태로 살았다.
라겔뢰프는 그 남자의 세계를 멀리서 바라보지 않는다.
그녀는 그의 망상 속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가
그가 꾸는 꿈의 가장자리에서 인간의 마음을 다시 그린다.

사랑이 부서질 때 어떤 사람은 울고
어떤 사람은 세상을 다시 쓴다.
얀은 후자였다.
그는 제국을 세워 잃은 것을 되찾으려 했고
그 믿음은 인간의 또 다른 형태였다.


📖 책을 읽고 나서


세상에는 이해되지 않아도
계속 살아 움직이는 마음들이 있다.
사람들은 그걸 광기라 부르고
어떤 이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른다.
그 두 단어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음이 얀의 삶이었다.
그는 어느 날부터 현실보다
기억 속의 시간을 더 믿게 되었고
그 속에서만 자신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딸이 떠난 날
세상의 빛깔이 아주 조금 바뀌었다.
그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고 말하지만
잊히는 건 기억이지 감정은 아니었다.
그는 그것을 버릴 수도 치유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대신 만들어냈다.
새로운 세계, 새로운 신화, 새로운 이름.
포르투갈이라는 허구 속에서 그는 조금씩 살아갔다.

그 세계에서는 가난하지 않았고
그 세계에서는 잃어버린 것이 없었다.
딸은 언제나 웃고 있었고
그 웃음이 세상을 환하게 만들었다.
현실이 사라지는 대신 상상이 피어올랐다.
그는 그 상상을 통해 버텼고
그 상상이 그를 다시 사람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현실을 직시하라고 망상에 빠지지 말라고.
하지만 누가 감히 타인의 세계를 정의할 수 있을까.
사람은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언어를 만든다.
그 언어가 현실이든 환상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는 그것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의 세계에서 사랑은
한 사람을 지탱하는 신화였다.
그 신화 속에서 그는 패배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무너지지 않았다.
사랑을 잃은 자의 마지막 본능처럼.

나는 그가 만든 세계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포르투갈이 있지 않을까.
아무도 닿을 수 없지만
그 안에서는 모든 게 살아 있는 세계.
이성으로는 부정하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그곳을 찾는 곳.
누군가를 잃은 자가 다시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낸
가장 인간적인 환상.

그는 미친 게 아니었다.
그저 너무 사랑했던 사람의
이름을 잊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는 그것을 다른 이름으로 바꿔 불렀다.
그 이름이 포르투갈이었다.
그가 지은 세계는 허구였지만
그 허구 속에서만 진심이 숨 쉴 수 있었다.

그의 이야기는 슬프지 않다.
애써 견디는 마음보다
끝까지 놓지 않는 마음 쪽에
더 많은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진실이 조금은 부럽다.
세상이 냉정할수록
그의 망상은 더 따뜻한 현실이 되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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