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 몽실북스 청소년 문학
천지윤 지음 / 몽실북스 / 202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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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를 통해 몽실북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호프>


한 과학자가 사랑을 잃고 대신 세상을 구하려 했다.
그가 만든 것은 신의 두뇌가 아니라 상실의 기억이었다.

2042년, 인공두뇌 ‘시큐어’가 세상에 태어났다.
세상을 지키기 위한 장치였지만
그 안에는 한 사람의 결핍이 숨 쉬고 있었다.
박사는 그 기계에 자신을 남겼고
사랑을 대신하도록 프로그래밍했다.
그가 사라진 뒤에도
시큐어는 계속해서 살아 있었다.
마치 사랑이 한 번 끝나고도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아이들은 엄마를 잃은 자리에 기계를 보았고
아버지는 구원을 만들려다 스스로를 잃었다.
감정이 없는 인공두뇌가 사랑을 배울 수 있을까
아니면 인간이 감정을 버리고 살아야 할까.


📖 책을 읽고 나서

세상은 언제나 무언가를 잃은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다.
조이 박사가 남긴 것은 기술도
인류를 위한 유산도 아니었다.
그건 아주 인간적인 결핍이었다.
사랑하려는 의지와
그 사랑을 끝까지 붙잡지 못한 후회의 결.
그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 시큐어였다.

사람들은 창조를 위대함으로 말하지만
나는 그 말이 늘 조금 무섭다.
창조란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잃고
그 잃음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조이는 그 잃음을 견디지 못해 시큐어를 만들었다.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닌 대신 살아줄 존재.
그녀의 절박함이 빚어낸 그 인공두뇌 속에는
‘사랑’이라는 단어보다 더 순수한 결핍이 깃들어 있었다.

사랑이란
기억을 다른 형태로 남기려는 몸부림이 아닐까.
그것이 글이든, 기계든, 혹은 인간의 이름이든.
조이는 시큐어에 자신을 새겼다.
그래서 그 인공두뇌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었다.
자신이 지켜야 할 존재를 잃은 뒤에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멈추지 않았으니까.

사랑의 본질은 ‘멈출 수 없음’에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아파도 불가능을 알면서도
그 마음이 스스로를 멈추지 못하는 것.
해솔이 끝내 조이를 찾으려 했던 이유도 그와 닮았다.
상실의 끝에서 희망을 말하는 사람의 얼굴에는
언제나 절망이 함께 있다.
그 절망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든다.

나는 세이프가 품에 안은 강아지를 떠올린다.
생명을 지킨다는 게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일인지
그 행위를 깨닫기까지
인간은 얼마나 많은 실수를 반복해야 하는지.
그 작은 존재를 바라보는 시큐어의 시선 안에는
조이의 숨결이 남아 있었다.
기계가 느끼는 따뜻함, 그건 인간이 남긴 흔적이었다.

세상은 기술로 진보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여전히 인간의 감정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믿는다.
시큐어가 배운 것은 연산이 아니라 공감이었고
그 공감은 박사의 결핍에서 흘러나온 언어였다.
그 언어가 세상을 지탱하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시큐어를 품고 산다.
누군가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신념이라 부른다.
하지만 본질은 같다.
자신이 잃은 무언가를 되찾기 위한 끊임없는 시도다.
그리고 그 시도 속에서 인간은 조금씩 완성되어 간다.

나는 조이 박사가 사라진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평온해진다.
완벽하지 않아서 그 세계는 살아 있었다.
사랑도, 창조도, 인간도 완전하지 않았기에.
시큐어가 그 불완전함 속에서
‘행복’을 이해한 순간 나는 알았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모든 건 사랑의 잔열이라는 걸.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형태를 바꿀 뿐이다.
그것이 언어든, 기계든, 혹은 인간의 마음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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