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이 차오르는 중입니다
서윤빈 지음 / 열림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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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열림원 @yolimwon 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종말이 차오르는 중입니다> - 끝은 이미 시작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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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에서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뉴스에서는 또 누가
열사병으로 쓰러졌다고 한다.
창밖을 보면 한밤중인데도
길에 물이 증발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이게
‘종말’ 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냥 덥다, 끈적하다, 숨이 막힌다
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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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빈의 인물들도 그랬다.
비정상적인 상황인데도
누구도 그걸 대놓고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는 관,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
정체불명의 물고기,
다들 그냥 그걸 받아들이고
또 하루를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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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이상하다고 말할 타이밍을
잃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울지 않지만 누군가를 애도하고,
당황하지 않지만
뭔가에 점점 잠식되어 간다.
기후위기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묻는 대신,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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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하다는 말조차 무색할 만큼
현실이 가깝다.
마치 이 소설 속 사건들이
뉴스 한 귀퉁이에 실려 있어도
‘그럴 수도 있겠네’ 하고
넘길 것 같은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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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구조 덕분에
서로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하나의 감각은 계속 이어진다.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부유하는 기분,
무언가 떠내려가는 걸 바라보는 감정.

누구는 아이의 이름을 끝없이 부르고,
누구는 더 이상
물이 닿지 않는 해변을 지켜본다.
누구는 그저 먹고살기 위해
물고기를 배달하고,
누구는 이상한
메모를 받아들고 당황한다.
그 모든 장면은 괴상한 듯 보이지만,
어느새 너무 익숙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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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왔다가 그친 다음,
모든 게 씻겨 내려간 자리에
남은 것들을 하나씩 주워보는 느낌.
마른 옷을 입고 있어도
안쪽 어딘가는 축축한 감촉이
남아 있는 것처럼.
이 소설은 그런 감정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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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이
끝나는 듯하면서도 끝나지 않고
서로 얽히고 흐려지다가
다시 선명해진다.
‘기억’ 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거기 있는 것 같다.
기억은 그 자체로 무기가 되기도 하고,
유일한 구조선이 되기도 하니까.
 
 
🫧
파국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지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나면 아마 그 단어가
좀 더 가까이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건 공포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
문을 닫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문틈을
다시 열게 만든다.
종말이라는 말이 그토록
낯설게만 느껴졌는데,
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냥 오늘 우리가 사는 풍경 같기도 하다.

누군가는 여전히 생선을 배달하고,
누군가는 해변을 지켜본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또 너무 말이 된다.
익숙한 불안과, 이해는 되지 않지만
공감은 되는 감정들.

읽고 나서 마음속 어딘가가 눅눅해졌다.
이건 슬픔도, 분노도 아닌 감각.

그냥… 계속 살아 있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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