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아
김필산 지음 / 허블 / 2025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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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허블 @hubble_books 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엔트로피아> - 시간을 거꾸로 걷는 자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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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꾸로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
이 설정만 듣고도 머릿속이
붕 뜨는 기분이었다.
보통의 SF가 미래를 향해 내달린다면,
이 소설은 반대로 과거를 향해 휘몰아친다.
그것도 아주 깊고 낯선 과거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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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 중세 동로마, 코르도바,
그리고 미래 서울.
모든 장소가 허공에 뜬 채
흘러가는 게 아니라
무게감 있는 시공간으로
다가오는 데엔 이유가 있다.
등장인물의 말투, 사상, 믿음,
대화 하나하나가
진짜 그 시대에 숨 쉬는 것처럼
살아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어떤 방식으로
리서치를 했을까 싶을 만큼
이야기의 결이 다층적이다.
고대 자연철학에서 양자컴퓨터까지
하나의 축으로 연결되면서도
어긋남 없이 흐른다.
그 자체가 이미
구조적 아름다움으로 느껴질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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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건,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이야기의 장치' 가 아니라
'이야기의 주체' 로
끌고 왔다는 점이다.

보통의 시간여행물처럼
이유를 설명하거나
목적을 뚜렷이 부여하지 않는다.
대신 시간 그 자체가
어떤 존재처럼 움직이고,
결정과 선택, 실수와 회한들이 그
흐름을 타고 떠내려간다.
그래서일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점점 인물보다는 시간에 더 집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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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통념 위에
우리 모두가 살아간다.
그런데 그 흐름이 뒤집혔을 때,
우리가 아는 원칙들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어떤 사건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미 알고 있고,
지금 겪고 있는 일이
실은 누군가에겐 과거라면.
그 세계에서 '기억' 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후회' 는 어떻게 작동할까.
'사랑' 은 어떤 결말을 향해 나아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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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 인물은 2천 년을 거슬러 산다.
그 시간은
세계관의 수직적 밀도이기도 하다.

단편적인 사건이 쌓여
긴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선형적 사고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완전히 다른 프레임을 제시한다.

수많은 역사선 위에서,
어떤 사건은 서로 충돌하고
어떤 순간은 거울처럼 닮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지켜보는
이야기 바깥의 독자만이
전체의 구조를 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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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이 이야기를 이끄는 방식이 아니라
이야기가 지식을 흡수하고 스며드는 방식.
그래서 읽는 동안
과잉도 부족도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걸 ‘설정 과다’ 라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야기 자체가
‘과잉’ 과 ‘무질서’ 를 품고 있는 주제라
오히려 그 과잉이 미학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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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죽음, 영생,
그리고 기원의 질문들까지.
소설 속 시공간을 따라가다 보면
정신이 한두 번쯤 붕 뜨는 기분이 든다.
그때마다 다시 잡아주는 건
생각보다 단순한 문장 하나,
인물의 짧은 대사 하나다.

그 작은 문장들이,
복잡하게 얽힌 시간의 실타래에서
지금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
시간이라는 건
정확한 계산보다
더 본능적인
감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감각이 문장을 따라 흘러가면서
어떤 형태로든 독자에게 남는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희귀한 경험이다.
🫧
어느 방향에서든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그 안을 어떻게든 헤엄친다.
그걸 소설 한 권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건,
근사한 일이다.

시간은 반드시
앞을 향해 흐를 필요가 없다.
때로는 그 반대편에서
훨씬 더 크고 놀라운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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